본문 바로가기
여성인권 이슈/칼럼

물고기 두마리

by kwhotline 2012. 3. 4.

우리 집 어항에는 물고기가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한 마리는 병어를 닮았고 다른 한 마리는 줄무늬가 선명합니다. 원래는 어항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물고기가 있었지만 열대어의 수명이 짧은 탓에 하나 둘 죽고 두 마리만 남았습니다. 커다란 어항에 겨우 물고기 두 마리이니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법도 한데, 크기가 조금 더 큰 줄무늬는 병어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습니다. 줄무늬가 어항 속의 지배자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어항이라는 작은 세계에서도 먹이 피라미드가 있다는 것에 신기했었지요, 수면 위로 밥을 주면 가장 먼저 올라오는 것은 그 중에서 가장 힘이 센 물고기들입니다. 이들의 영역은 아주 넓습니다. 먼저 위에서 제일 빨리 받아먹고는 먹이가 수면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아 힘이 약한 물고기의 영역에 당도할 때쯤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쏜살같이 내려와 날름 먹고는 감히 제 먹이를 넘봤다는 듯 항의의 표시로 툭툭 작은 물고기를 공격합니다. 인간세상 속에 존재하는 깡패나 다름이 없습니다. 사회의 부조리가 그 작은 어항 속에도 존재했습니다. 작은 물고기는 먹이를 잘 먹지 못해 점점 더 굶어 커지지 못하고, 큰 물고기들은 먹이를 넘치게 받아먹어 그 큰 덩치를 계속 불려나갔습니다. 덩치가 커지니 영역 다툼도 빈번했지요, 큰 덩치끼리도 서로 싸우는 통해 어항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줄무늬는 그 덩치 속에서도 제일 힘이 센 녀석이었습니다.

줄무늬도 이제 상대가 병어 하나 밖에 남지 않으니 먹이를 먹고 남은 힘을 모두 병어를 괴롭히는 데 쓰기 시작했습니다. 먹이를 먹는 데 방해한 것은 기본이요, 잠을 잘 때도 구석에 웅크리고 자는 병어를 주둥이로 툭툭 내쫓아 버리고는 그 자리를 차지하기 일 쑤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괴롭힘을 당하는 병어가 너무 애잔하여 병어가 밥을 먹을 때면 작은 망에 줄무늬를 가둬두고 잠시나마 맘 편히 먹게 두기도 하였습니다만, 이것은 미봉책에 불과하였습니다. 생각 끝에 작은 어항을 하나 더 사야겠다고 생각해서 가격을 알아보던 차에 그만 병어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시달리다 죽은 병어가 안쓰러워 줄무늬를 째려보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병어를 보냈습니다. 이제 바라던 너의 세상이 왔으니 어떠냐고, 혼자 어항을 독차지하니 좋으냐고 줄무늬에게 쏘아붙였습니다. 물고기라 들을 턱이 없을 테지만 괜히 분한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었습니다. 병어를 좀 더 일찍 구해주지 못한 죄책감에서 더 화가 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튼 그 큰 어항은 이제 줄무늬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일까요, 줄무늬 역시 갑자기 힘을 잃어버린 듯 보였습니다. 넓은 영역을 두고는 구석에 가만히 숨어 숨만 내쉴 뿐이었습니다. 어항 속의 제왕은 외톨이였습니다.

물고기들을 보며 가만히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주먹이 도를 넘어 남을 해치기 시작할 때, 걷잡을 수 없는 길로 빠진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피로 얼룩진 연결고리를 끊는 길은 무엇일까요?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더 이상 폭력이 필요치 않은 때조차 주먹을 휘두르기 전에, 더불어 사는 공존만이 모두가 살 길이라는 것을 빨리 알았다면 어항 속에는 더 일찍 평화가 찾아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1기 기자단 _양승혜 기자



2528754D58917F1B01D60A2405D04D58917F1B04061F2458754D58917F1B3874B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