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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폭력 없는 은평, 함께 만들어가요

by kwhotline 2012. 3. 12.

박은미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여성 인권 운동 20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정춘숙

1983년 모든 폭력으로부터 여성 인권을 보호하고 가정, 직장, 사회에서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줄곧 한 길을 걸어온 한국여성의전화가 2009년 녹번동에 새롭게 터전을 잡았다. 여성 인권 보호라는 한 길에서 이십 년 동안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온 정춘숙 상임대표를 만나 보았다.

은평에서 여성 운동 모델 만들고 싶어

우리 사회에서 폭력이란 단어는 여전히 불편하다. 특히나 가정폭력, 성폭력이란 단어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극복하고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추방하고 성평등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한국여성의전화 정춘숙 상임대표.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98년도에 가정폭력방지법을 제정하는 데 한국여성의전화가 큰 역할을 했고 그 후로도 계속 법제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절대 폭력이 근절되지 않아요.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운동이 꼭 필요하고요. 은평으로 이사 온 지 3년쯤 되니 이제 지역에 대해 조금 알 거 같네요. 은평이 지역 여성 운동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이십여 년 간 피해 여성을 상담하고 지원하고 폭력을 근절하는 활동을 하였지만 그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전국적으로 25개의 지부를 총괄하고 전국 단위의 정책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특히 은평구를 평화로운 마을로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2009년 독박골에 자리 잡고 지금까지 3년 동안 평화가게 사업, 찾아가는 폭력 예방 교육, 은평구 모니터링, 마을축제 참여 등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올해는 지난 3년간 은평에 뿌린 평화 씨앗을 바탕으로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한 지역 사회 모델 개발’을 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잡고 있다고 포부를 밝힌다.

▲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 박은미
폭력 근절은 지역 사회 모두가 고민해야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해서 지역 사회에서 각 기관 간에 어떻게 네트워크를 하고 그것이 실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만들어 보려고 해요. 아직까지 이런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인식만 있지 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도해 본 것이 별로 없거든요. 은평에서 이런 모델이 잘 만들어지면 서울시와 전국에서 아주 좋은 사례가 되겠지요.”

정 대표는 이런 네트워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있는 경찰서, 교육청, 구청, 구의회 등의 대표들이 모여서 우리 지역의 여성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각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하고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경찰은 피해 당사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상담소와 연결하면서 지원할 것인지, 학교에서 피해 아동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혹은 피해자를 보호하다가 협박을 당하거나 피해를 당할 때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등을 등을 함께 고민하고 피해자지원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채워나가면서 협력할 수 있는 실체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자치구에서 할 수 있는 폭력 예방 사업은 한계가 있고 상담소 몇 개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이런 네트워크 사업을 하면서 새롭게 여성 정책들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가정, 학교, 사회로 이어지는 폭력의 연결 고리

최근에는 학교 폭력 문제가 계속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고 이러저러한 대책들도 쏟아지고 있지만, 사실 모든 폭력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학교 폭력에 대한 대책을 쏟아내는데, 사실 학교 폭력도 가정 폭력과 아주 관계가 깊어요. 실제로 학교 폭력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들이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이 있고, 그래서 가정 폭력 문제를 다루지 않고서는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장기적으로는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교육 체계 안에서 인권과 폭력에 관한 문제들을 공부하고 이런 내용이 몸에 하나하나 쌓이고 체화되어야 우리 사회의 폭력을 없앨 수 있죠.”

모든 세대 하나로 묶는 여성 운동 하고파

집안의 맏딸로 태어난 정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남녀 차별에 민감했고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여학생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남학생만이 동아리 대표를 하는 당시의 관례를 깨고 당당히 여성 대표로 동아리를 이끌기도 하였고, 이후 현장 중심의 여성 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른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는 말에 그는 “아무래도 1998년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됐을 때.”라며 “한국사회에서 여성 운동이 굉장히 큰일을 해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이 법을 만들기 위해 4년 동안 거리 캠페인을 통해 당시 전국 8개 지부와 100여 개 시민단체가 힘을 합했고 8만 5천 명의 국민 서명을 받았다.

“어쩌다 보니 제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제일 오래된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한국의 여성 인권 운동에 대한 평가와 정리도 필요하고 그걸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지 고민도 해야 하고.”

지난 1월 총회에서 대표로 재신임되어 앞으로 3년간 다시 여성 인권 운동을 이끌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 그는, 모든 세대가 함께하는 여성 운동을 펼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한다.

서른 살 맞는 한국여성의전화, 더 새로운 도전할 것

특히 내년은 한국여성의전화가 30주년을 맞는 해라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30주년 기념행사로 여러 의미 있는 일을 해 보려고 준비 중이고, 특히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어서 여성 폭력 근절에 대한 제도적인 방안이 마련되도록 요구할 겁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하는 여성 운동을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10대 청소년들과는 ‘하루 인권 캠프’를 통해 여성의 인권에 대해 배우고 경험했고, 대학에서 ‘데이트 강좌’를 통해 젊은 세대들과 교감하려 하였다. 또 ‘데이트up데이트’는 어플리케이션를 개발하여 보급하고 가정 폭력 예방 공익광고를 제작해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에 지하철에서 송출하기도 하였다.

정춘숙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촛불단체로 찍혀서 정부 보조금도 못 받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우리를 믿고 지지하는 많은 회원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며  여성 인권 운동의 길에 시민들의 많은 지지와 후원을 부탁했다.

※ 이 글은 은평시민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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