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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내 안의 촛불소녀를 추억하다.

by kwhotline 2012. 3. 4.


“넌 시위 안가?”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온 나라가 여론으로 들끓었을 때, 친구가 제게 했던 말입니다. 친구는 제게 이렇게 물었고 저 질문과 표정에는 어째서 너는 시위를 가지 않느냐는 비난의 얼굴이 담겨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얼굴 때문이든, 제 의지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저는 그 친구를 따라 시위에 참가하였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저 또한 촛불소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또 다른 시위가 서울광장에서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 같이 갔던 친구에게 시위에 갈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 표정을 기억했던 저는 이번에도 역시 당연한 걸 묻는다는 답변을 들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표정은 전과는 달랐습니다.

지금 저는 4학년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대학 졸업반입니다. 저도 제 친구도 역시 취업을 준비하고,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불안한 상황에 있습니다. 모두가 방학 중에는 스펙을 올리는 데 열심이고 학기 중에는 그간 부족한 성적을 올리기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를 경쟁자 삼아 혹은 동료 삼아, 한시바삐 발판을 마련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심정입니다. 그런 때에 시위란 사치와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시위에 참여하는 그 시간동안 차라리 모두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모를까, 내가 이 레이스에서 멈춘다는 것은 정지가 아닙니다. 그 시간만큼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입니다. 사회에 나가기 전 무한 경쟁체제에 접어든 이때에는 친구와의 연락도 잠깐 접어둡니다.

그러나 달리기를 하며 문득 바라본 하늘이 더 새파랗게 느껴지듯이, 그날 열에 들뜬 듯, 참여했던 시위에 대한 기억이 생각납니다. 나 역시 한 사람의 촛불소녀였습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당위가 지배하였고 법학도인 친구와 저는 소고기 수입과 관련해 문제가 되었던 그 긴긴 조례 안을 읽어 내려가는 시늉이라도 하였습니다. 이에 관한 수많은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카페에서 같이 차를 마시다 다른 관점을 가진 친구들과 서로 싸워가며 열띤 토론을 이어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잠깐의 축제와 같았던 그 시간은 곧 끝났습니다. 여름의 열기와도 같았던 그 때는 추억으로 남은 채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왔습니다. 2학기가 시작하자 우리는 다시 학업에 매진하였고 성적에 목을 맸습니다.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의 순수함이 정치색으로 이용되는 것도 싫었고 무슨 일이든 촛불소녀를 부르고 시위를 하고, 뚜렷한 지향점이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계속하는 모습에 다들 신물이 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의 심드렁한 얼굴이 꼭 제 얼굴일 것 같은 생각에 더 묻지 않고 다가올 중간고사 공부를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은 직면한 문제에 힘을 쏟느라 꼭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리로 나선 다른 촛불소녀들을 보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괜히 저들의 스펙을 걱정해보며 나는 잘하고 있다고 애써 위로해보려고 합니다. 꺼져버린 촛불이 되어버린 우리는 스스로 변하진 않았는지 뒤돌아봅니다.

지금은 꺼져버린 촛불이지만 그날의 기억이 우리의 심지에 다시 불을 붙이리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 날 제게 촛불소녀의 기억은 무척 선명합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명의 투사였고 하나의 촛불이었습니다. 하나의 촛불이 될 수 있음을 알았기에 다시 불이 붙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은 비록 꺼져버린 촛불소녀이지만 안에 촛불 소녀를 추억하는 한 언제든 다시 탈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1기 기자단_양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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