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 후


백수연


‘아이들, 학생들, 미래 세대’, 그리고 ‘자라나는, 기특한, 내일의, 앞으로의’. 한 무리의 사람들을 부르고 꾸미는 말들에는 생각이 스며들어있다. 그 생각이 적절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바로 그 말들이 부르고 꾸미는 바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청소년이었으면서도 청소년들이 어떻게 불리길 원하는지, 어떻게 대해지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아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으로 일한 시간이 길어서라는 핑계로, 나는 내가 겪었고 그래서 또 내가 굳히게 된 ‘청소년’의 관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 그리고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공부하면서, 청소년 역시 이 사회의 또다른 소수자임을, 그들의 인권 역시 존중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후 청소년 관련 이슈를 맞닥뜨릴 때마다 매번 ‘지금 내가 ‘청소년 혐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떤 것이 ‘청소년 혐오’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를 정확히 구분하지는 못해서 답답했다. 더구나 이제 한 달 조금 넘게 남은 캠프에서 만나게 될 10대 여성들과는 ‘선생과 제자’가 아닌, 함께 공부하고 연대하는 동반자가 되어야했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차례 진행된 회의에서 나 뿐 아니라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다른 활동가분들도 청소년 인권 공부가 필요하다고 종종 건의했다. 그래서, 드디어, 6월 교육은 ‘청소년 인권’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번 강의에는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의 혜원님이 강사로 초청되었다. 청소년기를 이미 지난 여성인권활동가를 대상으로 진행된 교육이다 보니, 보다 이해가 쉽도록 혜원님은 여성 인권과 청소년 인권이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우선 짚어주셨다. 언제 어떻게 페미니즘을 접했고, 또 왜 여성 인권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했는지 서로 경험담을 나누면서, 비슷한 맥락으로 혜원님이 접하게 된 청소년 인권 운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청소년 인권 운동이 왜 필요한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내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나 말의 어떤 점들이 청소년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인지 여러 사례를 통해 배웠다. 특히 ‘보호주의’에서 말하는 보호는 ‘공부를 잘하는, 얌전한, 착한’ 등의 자격이 조건으로 상정되는 반면 진짜 '보호'는 자격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마땅하다는 차이점을 배운 것과, ‘완벽한 성숙함’은 없다는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 스스로가 맹목적으로 청소년을 미성숙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고, 보호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면서 나의 ‘청소년 혐오’를 보호주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청소년 인권 존중과 청소년 보호의 교집합과 여집합을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나를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기준을 갖게 해 준 교육이었다.




  실제로 청소년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각색한 고민들에 대해 각자 의견을 논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교육을 마치고, 이어진 시간에는 5월의 활동과제였던 사진이나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매번 ‘자신’을 주제로 하는 활동과제를 수행하기 때문에 나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사진이나 영상에 우리 각각의 진솔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서 끊임없이 웃기도, 전문적인 수준의 세련된 결과를 보며 감탄하기도 하면서,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어떤 역사를 품고 있는지 공유했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캠프가 목전이라 회의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열성적인 토의로 푸는 것 같기도 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가 된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돌아가는 길에서도 우리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곧 서로 살을 부대낄 2주가 다가오기에 우리는, 나는 모두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 남은 6월과 다가올 7월에는 얼마만큼 더 배우고 또 더 이해하게 될지. 날을 손꼽아 지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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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법률이 어떻게 여성을 도울 수 있을까?
- 한국법률구조공단 견학 후기
한국여성의전화 7기 기자단 이린

 

무더웠던 지난 2일, 한국여성의전화 전문 상담원 교육 프로그램으로 한국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에서 견학이 진행되었다. 견학은 한국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들의 강의로 구성되었다. 강의는 주로 법률구조에 대한 실무적 내용과 사례를 다뤘다. 이번 교육의 취지는 폭력 피해 여성들을 실무적으로 돕기 위한 절차를 알아보는 데 있었다.

 


 


 

오후 3시에 시작된 강의는 한국법률구조공단 소속 한유진 변호사가 진행하였다. 20명 남짓한 교육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강의를 들었다. 2시간 분량의 강의로, 긴 시간이었음에도 교육생들은 모두 진지하면서도 열의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강의 시작 전 한 변호사가 “한창 단 게 필요하실 시간이다”라며 교육생들에게 과자를 나눠 줘 교육생들 사이에 웃음이 퍼졌다. 밝아진 분위기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는 한국법률구조공단이 하는 일, 가정폭력 및 성폭력에 대한 법률 구조 안내, 대표적 지원 사례 소개, 사례 연구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국법률구조공단은 시민을 대상으로 법률 상담, 소송 구조, 법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거나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법률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 공단의 목표이다. 법률 상담의 경우 방문뿐만 아니라 웹 사이트(http://www.klac.or.kr/main.jsp)를 통해서도 이루어져,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한국법률구조공단 웹 사이트에서는 각종 법률 절차를 위한 서식을 내려받을 수 있어, 이러한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소송 구조의 경우, 형사 사건에 대해서는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고소 대리를 해주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충격이 큰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 과정을 직접 밟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후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률 구조가 더 자세하게 다루어졌다. 한국여성의전화 상담원의 경우 피해자를 한국법률구조공단과 연결해주고, 필요하면 동석하거나 구조 요청을 대리 접수하는 등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원인의 연락처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구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구조 대상자와 연락이 잘 안 되면, 구조 대상으로 선정되었음에도 통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구조 대상자의 자격은 건강보험료 기준 중위소득 125% 이내의 국민 또는 국내 거주 외국인이라고 한다. 한 변호사는 남편이 고소득자인데 가정폭력을 행사하며 경제권도 독점하고 있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소득 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즉, 가구 소득이 고소득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본인이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는 경우에는 구조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조 절차는 전부 무료로 진행되며, 소송 비용은 당장 내지 않고 납부를 유예할 수 있으니, 소송 구조에 드는 비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구조 요청을 위해서는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상담사실확인원, 2주 이상 상해 진단서, 고소장 사본 및 접수 증명서 등이 필요하다. 구비 서류를 잘 알지 못해 한국법률구조공단에 문의가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윽고 이어진 사례 연구에서, 한 변호사는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가며 민사 및 형사 소송에서 있을 수 있는 법적 절차에 관해 쉽게 설명하였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생각하는 소송과 달리, 훨씬 더 복잡한 세부 절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 같은 경우에 저는 ‘사전 처분’보다는 ‘보호 명령’을 자주 청구하는 편입니다. ‘사전 처분’은 어길 시에 과태료 처분을 받지만, ‘보호 명령’은 위반하면 처벌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한 변호사는 이혼 소송의 예를 들며 ‘사전 처분’과 ‘보호 명령’의 차이에 관해 설명했다. 또, 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경우 검찰이 장애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성폭력은 그 범죄가 발생했던 일시가 특정되어야 법을 적용할 수 있는데, 장애 여성은 일시를 특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소송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한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변호사에게 가능한 한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래야 변호사도 그에 맞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의 증거를 남기는 것이 소송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대화, 통화 내용 등, 가해자가 사과하거나 폭행을 인정하는 등의 내용은 중요한 증거로 남길 수 있다고 한다.

 

성폭력 사실이 거의 확실해 보였으나 가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경우나,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한 사건 등, 다양한 사례가 다뤄지면서 많은 교육생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한 변호사는 “안타까운 결과가 나온 사례를 많이 말씀드리게 되었지만, 이러한 사례를 통해 상담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주의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한 글이 떠올랐다. ‘성폭력을 당했을 시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불쾌하다는 이유로 섣불리 샤워하거나 옷을 버리지 말고, 얼른 상담소 등에 연락하고 옷도 잘 보존해 두어야 한다는 등, 실질적인 대처 과정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이러한 실용적 조언이 실제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강의 역시도, 앞으로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게 될 상담원들에게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상담원 교육생은 아니지만, 나와 주변 사람이 폭력 피해를 입은 긴급한 상황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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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용기에 용기를 더해서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6기 이윤희




어느새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의 1주기가 되었다. 사실 어느 새라는 단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삶과 주변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단어조차도 익숙하지 않았던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주변과 분노를 나눴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강남역 번화가에서 한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리고 남은 여성들은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지 1년이다.





젠더폭력에 대한 이해 없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해결될 수 없다

1주기를 기하여 한국여성의전화와 50여 개의 여성․인권․시민단체는 5월 17일 정오에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피해 여성을 추모하고 더 많은 말하기와 행동으로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현수막을 들었으며 순서대로 발언하는 시간을 가졌다. 총 9명의 발언자들은 젠더 불평등이 해소되어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여성단체 뿐만이 아니라 민주사회와 시민사회를 위한 단체들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시민사회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김미순 상임대표는 정부가 사건을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으로 한계 짓고, 대책으로 공중 화장실 앞의 폐쇄회로나 화장실 안에 비상벨을 설치하는 정책을 내놓은 태도는 여성혐오와 젠더폭력에 대한 고민 없는 결과라고 규탄하였다. 그리고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미례 대표는 지속가능한 사회는 젠더 폭력이 종식된 사회임을 강조하며, 그러한 사회로의 변화를 촉구하였다.


기자회견의 참가자들은 일 년 전 전국에 붙었던 포스트잇을 형상화한 현수막을 들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이 1시간 정도 이어진 후에는 신촌과 홍대로 이동하여 다시 한번 더 포스트잇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시민들과 함께 진행하였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1년 전에 분노와 두려움을 포스트잇을 통해 쏟아냈던 것처럼, 1년 후에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변하질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저녁 7시에는 서울 추모 문화제에 참여하여 신논현역에서 강남역으로 이제는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행진을 이어나갔다. 


1년 전의 나와 1년 후의 나, 우리

이날 기자회견을 취재기자로서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켜보는 것보다도 참가하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현수막을 들어 참가자들 사이에 섰다. 생각해보니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 올라가서 거리를 바라본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날씨는 매우 화창했고 차들은 쌩하니 지나갔다. 행인들은 호기심 있게 바라보거나 무심하게 지나쳤다. 큰 카메라들과 많은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그러한 장면을 바라보니, 1년이라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강남역에서 지금 여기 광화문까지 오게 된 사건들이 떠올랐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으로 내 기억에 가장 깊게 남은 것은 강남역 현장에 가서 들었던 말들이다. 우연히 그때쯤에 강남에서 술자리를 가질 일이 있었고, 다 함께 강남역 10번 출구로 가보자는 말이 나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부터 출구 벽에 빼곡하게 붙은 포스트잇이 보였다. 벌써 마음이 울렁거렸다. 가까이 다가가서 글을 읽으니 울렁거렸던 마음은 착잡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더 참혹한 마음이 들게 한 것은 주위 사람들 다 들으란 듯이 떠들고 있던 한 남성이었다. 그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흘겨보듯 서 있으면서 계속해서 옆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게서는 간간이 ‘이건 정말 아니지 않아?’, ‘과한 일이야’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또 어떤 커플은 팔짱을 끼고 와서는 웃으면서 괜한 일이라는 듯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런 일들은 많았다. 친구가 헬스 트레이너에게 ‘회원님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남자에게 잘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는 서로 ‘저는 예쁘니까 이제 일찍 다녀야겠어요.’ 라며 농담을 나눴다. 누군가는 정말 어이없다는 투로 ‘사람 하나 죽은 건데 여성 혐오 범죄라고 한다’고 말했다.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했지만, 주변의 반응에 혼란스러운 나는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여성이 살해당했다. 그리고 강남역에, 그 화장실에 가지 않아서 살해당하지 않은 여성들이 모였다. 어두운 밤 길이나 외진 곳이 아니어도 살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두려워했다. 그리고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러한 두려움과 분노를 모르거나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두려움에도 추모를 위해 모인 여성들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모욕했으며, 어떤 이는 인형 탈을 쓰고 나와서 모두 사이좋게 지내자며 여성들의 고통을 무시했다. 지금도 그때도 나는 타인의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드는 태도가 제일 비열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처럼 여기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가장 비열한 태도다.





용기가 되어준 모두, 이제는 스스로 용기를 내어

잠재적 아군이라는 말이 요즘에 종종 쓰인다. 페미니스트들이 친절하고 자상한 말투로 말하지 않고 거칠게 말해서 페미니즘의 편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아군’을 잃었다는 식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말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나는 정말로 그들의 아군이었다. ‘된장녀’나 ‘김치녀’가 아니라 ‘개념녀’가 되고자 노력했다. 항상 자기검열을 했고 그것이 왜 불편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남역 사건 이후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그만뒀다.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무가치하며 무의미한지를 안다. 그것을 알게 해준 것은 서로의 용기가 되어준 모두다. 모두의 덕분에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들을 모두 깨부술 수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얘기하지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나의 친절은 그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 아니다. 내 친절은 나와 여성들, 존재 자체가 지워지려는 시도를 당하고 있는 성 소수자와 단지 성별을 이유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1년 동안 용기를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시작은 슬픔과 두려움이었지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용기다. 이제 나는 더 많은 용기를 내고 싶다. 여기까지 이끌어 준 여성들과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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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 후기

박규현


  서울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아니다, 서울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에 더 자주 생각한다. 아니다, 서울에서 여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더욱 자주 생각한다. 아니다, 서울에서 여자로 죽지 않는 법에 대해 더더욱 자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을 기록하는 방법에 대해 문자 이외의 것을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지난 달 강의는 인터뷰였고, 이번 달 강의는 여성주의 미디어 제작과 활용이었다. 처음 미디어에 대해 배운다고 했을 때 겁부터 났다. 어렵겠구나, 싶었다. 내가 본 여성주의 미디어들을 세어봤다. 영화 <우리들>, <위로공단>, <소녀와 여자>……. 처음부터 끝까지 안심한 채 감상할 수 있던 작품들이었고,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토막들이었다.


  강유가람 감독님의 강의는 주로 다큐멘터리 영화와 관련해 진행되었다. 그때부터 긴장이 풀렸다. ‘내 이야기, 내 입장, 내 시선, 내 해석이 담긴 하나의 기록물을 제작한다니, 그건 어쩌면 다른 여성주의 작품들보다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세상에 쉬운 건 없고 분명 어렵겠지만, 내가 보던 세상을 남들도 똑같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흥미가 생겼다. 특히 강유가람 감독님이 짧게 보여주신 여러 다큐멘터리 영상들이 모두 좋은 이야기들이어서, 섣부를 수도 있지만 용기가 났다.




  이전부터 독립영화관들을 자주 돌아다니며 독립영화를 관람한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보여주시는 영상들을 보니 내가 놓쳤던 좋은 이야기가 참 많다고 느꼈다. 똑같이 한국에서 살고, 동시에 서울에서 먹고 자도 깜박하고 지나가버리는 것들이 있었다. 이건 영화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고, 이미 영화의 한 장면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 순간들을 눈으로 봤을 때 내 시선을 담아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작은 결심이 생겼다. 글로 기록해두는 것과는 다른 힘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강유가람 감독님의 강의가 곧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여성주의 미디어에 대해 설명해주는 감독과 우리들. 강의실 맨 뒤쪽에서 우리를 찍었다면, 그 공간은 단단해보일지도 모르겠다. 감독님은 “‘나’의 입장이 명확해야 ‘나’의 사적인 일을 담을 수 있다” 말씀해주셨으니까, 우리들의 확실한 입장들이 한데 모여 있다면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사적인 순간들은 얼마나 또렷하게 전달될 것인가? 




  회의에서는 지난달처럼 10대 캠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지난 4월 진행된 아카데미 중간평가 설문지 내용을 토대로 서로의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활동과제로 제출했던 서로의 과제(나 자신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인물 인터뷰하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인터뷰 과제의 감상을 말하면서, 인터뷰는 분명 끝난 것인데도 여전히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울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 상황이 편안했다. 서로에게 질문자와 인터뷰 대상자가 되어서 한 편의 이야기에 출연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각자가 겪고 있는 상황과 관계들을 들어주고, 나아가 이해해주는 일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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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新 여성인권운동 풍속도

 


은총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휴거’도 Y2K도 없이 평화롭게 21세기의 태양이 떠오른 지 17년이 지났다. 새천년은 세기말의 난리통이 무색할 정도로 고요히 찾아왔으나, 그 후 17년은 결코 무탈하지 않았다. 2015년에는 영화 <백 투더 퓨처 2>처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줄 알았는데, 우리는 여전히 54.4%의 남성이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가부장적 사고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각주:1]

 

그러나 2017년 현재, 여성인권운동에 신흥 기류가 불어 닥치고 있다. 온라인은 SNS를 중심으로 여성주의에 대한 게릴라성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여성주의 서적은 우후죽순 출간되고 있으며, 다양한 소규모 프로젝트와 여성의 삶 전반에 대해 여성이 스스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공론장이 활발히 생겨나고 있다. 이 기류의 시발점은 2015년 중반 일어났던 ‘메르스 갤러리’[각주:2]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여성들이 여성인권운동을 ‘언어유희’를 통한 ‘놀이문화’로 전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온라인 중심으로 시작된 여성인권운동의 新 조류는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기점으로 여성들이 오프라인에서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지금,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이러한 신흥 운동의 효과로 소비, 여가 생활, 삶의 태도 전반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본 글은 아주 가까운 일상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도발적인 변혁의 몇 가지 사례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작성되었다.

 


사랑한다, 공부해라


‘빠순이’라는 용어로 비하되곤 하는 연예인 팬 문화는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감정과 시간과 경제력을 ‘헌신’하는 문화로 여겨진다. 이 문화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러한 헌신을 바탕으로 마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쉴드’를 치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객관적 판단력이 부족한 여성적 문화’로 취급되기 일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팬으로 전제되는) 여성은 스타의 콘텐츠에 반응할 뿐인 수동적인 개체로 여겨진다.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신흥 여성인권운동을 이끌어가는 주체들은 자신의 취미인 ‘연예인 덕질’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나가고 있다. 이들은 스타의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즐긴’다. 성희롱 발언을 하거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스타에게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거나, 노래 가사 등 반여성인권적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에 시정을 요구하는 일은 이제 특별하지도 않다. 주목할 점은 연예인 팬 문화 중 가장 ‘비이성적’으로 여겨지던, 스타의 기쁨을 기대하며 선물을 보내는 ‘조공’ 문화의 변신이다. 이들은 더 한 발짝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에게 페미니즘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들은 스타를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을 직접 선택·기획하고 이를 위한 ‘즐거운’ 소비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성희롱 발언 이후 팬들의 요구에 따라 사과문을 작성하고, 

선물 받은 페미니즘 책을 인증한 배우 김윤석. 



아이돌 ‘오마이걸’ 팬의 페미니즘 서적 서포트 모금 프로젝트



 

내가 입는 패션이 여성의 패션이다


 


‘로리타 패션’은 서양 동화 주인공의 옷처럼 프릴과 레이스, 리본 등의 장식품이 달린 드레스를 입는 패션을 뜻한다. 언뜻 여성주의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패션을 추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로리타 여성주의자모임 <로리타 펀치>는 “로리타 패션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만들고 소비하며, 여성 주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로리타 펀치>는 “로리타 패션은 세상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패션이 아니”며 당사자인 여성의 말에 주목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남성의 시선으로 문화를 해석하는 것을 비판했다. <로리타 펀치>는 활동의 모토를 “로리타를 입고 뭐든지 한다 정도”라고 밝히며 여성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자신이 세운 기준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투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렇기에 “그런 것들을 더 지지하고, 더 재밌고, 더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로리타’를 위해 여성공동행동 집회에 참여하거나 정기 소모임을 열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로리타 옷을 입는 의미에 대해,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나가고 있는 것에 대해 로리타를 입고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해 정기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60년 페미니스트 나가신다!

 

전국디바협회 로고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송하나들과 미래의 송하나가 마음 놓고 게임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행동"합니다.[각주:3]

 

2016년 11월 26일, 박근혜 (前)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서 유쾌한 패러디로 화제에 올랐던 깃발들 중 <전국디바협회>의 깃발이 있었다. 2060년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 중 하나인 디바(송하나)는 천재 프로게이머이자 거대한 로봇을 조종하는 여성 영웅이다. <오버워치>를 이용하는 여성 게이머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국디바협회(이하 전디협)>는 “한국이 지금과 같이 성차별적인 국가라면 오버워치의 배경이 되는 2060년에는 디바와 같은 사람이 등장하는 일은 불가능 할 것”이라며, 성평등한 2060년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게임_내_성폭력’ 이슈를 공론화하는 발화점이 되었으며, 게임을 제작한 디렉터 제프리 캐플런이 게임 콘텐츠에 대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재해석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다.

 


전국디바협회에서 제작한 Feminism For Future Female 포스터

 


전디협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집회와 행진에 참여하거나, <페미니즘 도서 가이드북> 제작을 위한 독서모임을 격주로 진행하고 있다. 또 이들은 페미니즘 굿즈 스토어와 같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가장 중심적인 활동은 본 원고 작성자의 마음에 불을 지른 전디협배 오버워치 여성게이머대회 <여자 나가신다!>이다. 게이머뿐만 아니라 모든 스태프를 여성으로 기획하고 있으며, 2017년 4~5월 중 예선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대회 참여 인원파악을 위한 가신청을 받고 있으며, 신청은 forfuturefemale@gmail.com 으로 <팀명>, 팀원의 <닉네임#배틀태그>, <티어(게임 내 등급)>를 간단하게 적어서 보내면 된다.


  1. 여성가족부 「2016년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본문으로]
  2. 2015년 5월 말 메르스 사태가 심각해진 어느 날 홍콩에 여행을 간 두 여성이 메르스 의심환자로 진단받았음에도 당국의 격리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인터넷 게시판은 두 여성을 비난하는 게시글로 넘쳐났다. 그러나 이것이 의사소통의 오해에서 비롯된 와전된 소식이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그 동안 여성혐오적 악성댓글에 시달려왔던 여론의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인 ‘메르스 갤러리’에 그 동안의 여성혐오 발언을 남성 대상으로 미러링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남자도 신사처럼, 조신하게 미래의 배우자를 위해 동정을 지켜야 한다.” 같은 과거의 여성혐오발언에 대한 패러디 말이다. [본문으로]
  3. 출처 전국디바협회 트위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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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빚은 '모범 아동'의 세상, 뽀로로

 

갱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뽀로로

'뽀롱뽀롱 뽀로로' (출처 : 타임트리)



이제 벚꽃 피는 봄이 다가오는데, 내 입가에 착 달라붙은 건 벚꽃엔딩이 아니라 뽀로로송이다. 길을 가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하며 흥얼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제 20개월이 되어가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바로 <뽀롱뽀롱 뽀로로(이하 뽀로로)> 때문이다. 딴에는 여러 만화를 접하게 하고 싶어서 <겨울왕국>도 틀어주고 <메리다와 마법의 숲>도 보여줬지만, 아이는 아직 장편 만화의 긴 호흡보다 짧게 끊어지는 에피소드형 만화 시리즈를 좋아한다.

 

아이 때문에 옆에서 따라 <뽀로로>를 보게 된 지 두 달째, 처음에는 아이가 좋아하니 유료 시즌까지 결제해서 보여줬지만, 옆에서 함께 볼수록 여러 의문이 보글보글 솟아났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기존의 차별적인 성역할을 답습하는 캐릭터 설정이다. 주인공인 뽀로로는 남성인 데다가 파란색이고, 시즌1부터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루피는 완전히 분홍색이다. 특히 루피공주 놀이를 좋아하고, 운동 신경이 매우 둔하며, 요리를 좋아한다. 신나게 놀고 나면 친구들은 저녁에 루피의 집에 모여 앉아 루피가 만든 샌드위치, 파이 등을 먹으며 즐거워한다. ‘뽀로로는 늘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1등에 대한 경쟁심이 강한 데에 반해 루피는 한결같이 왕자님이 찾아오기를 꿈꾸며 남성 캐릭터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제작 기법은 최신식 3D인데, 캐릭터의 성역할은 성경보다도 고전적(?)이어서 아무래도 비판을 많이 받았는지, 시즌3에서 패티라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추가됐다. 운동을 못하고 요리만 잘하는 루피에 비해 패티는 운동을 잘하고 요리는 정말로 못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루피패티는 지붕이 새거나 물건이 부서지는 등의 일이 생기면 늘 남성 캐릭터들에게 수리를 부탁하고, 다른 친구들이 위험에 빠질 때 먼저 나서지 않는다. ‘패티는 다른 남성 캐릭터들에 비해 용감하다는 설정이지만, 모험에 나서거나 위험한 장난을 할 때만 용감함이 발휘된다. 간헐적으로 루피만 요리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친구들이 루피의 요리를 도와주고, ‘패티도 다른 친구들을 날렵한 몸동작으로 도와주는 일이 종종 생기지만, 기본적으로 캐릭터 설정을 뒤흔들지 않는 한 <뽀로로> 내의 근원적인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고전적인 여성성을 차용하여 여성 캐릭터들을 비하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성 캐릭터도 인간 군상의 다양함을 무시하여 억압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건 <뽀로로>의 캐릭터들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스토리텔링이다. 기본적으로 <뽀로로> 세계는 친구 우월주의라고 할 만큼 친구와의 관계를 최우선의 가치로 배치한다. 이 때문에 사건의 인과와는 무관하게, ‘친구들과 화해했으니문제가 쉽게 해결되어 버리는 에피소드가 많다. 예컨대 고릴라 에피소드가 있는데, 뽀로로와 친구들이 고릴라의 집에 멋대로 들어가 차려진 음식을 먹어버린다. 이에 화가 난 고릴라가 음식을 먹은 대신 누군가 한 명 남아서 일을 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누가 남을 것인지 선정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친구보다 자신이 남아 일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고릴라가 감동하여 모두를 풀어준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과정이 다소 뜬금없고 고릴라가 감동하는 포인트가 전혀 이어지지 않아 황당했던 에피소드였다.

 

세계의 가치관에 순응하고, 이를 깨지 않으려는 <뽀로로> 캐릭터들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에디는 자신의 발명품을 깨뜨린 뽀로로와 크롱을 너무 빨리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고(뽀로로와 크롱조차 이 갑작스러운 전개 때문에 어리둥절해 한다.) 친구들의 억측으로 억울한 상황에 내몰렸다가도 친구들이 다시 미안해한마디만 하면 곧 웃는 얼굴로 괜찮아하고 대답한다. 발명품이 깨져서 속상하거나 오해가 생겨 억울했던 것과 같이,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 분명 있을 텐데도 이 감정을 살펴보고 풀어내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된다. 그보다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정언명령만이 <뽀로로> 캐릭터들의 전반을 지배한다.

 

혹자는 유아용 만화에 뭘 그런 거까지 바라느냐고 타박할 수 있겠지만, 유아 그림책과 비교해봤을 때 유아 만화의 컨텐츠 발전 속도는 굉장히 느린 편이다. 유아 그림책은 이미 똥이나 방귀와 같은 생리적 현상을 자연스럽고 즐거운 과정으로 탐구하게 하지만, <뽀로로>에서 방귀는 더럽고 냄새 나며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으로 인식된다. 화가 나는 과정이나 화가 다시 풀어지는 과정들을 집중적으로 세밀하게 그려내는 유아 그림책들에 비해, <뽀로로>는 그 과정들을 비정상으로 치부하고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빨리 해소되어야 하는 일로 스토리텔링한다.

 

<뽀로로>가 그려내는 세계는 아름답고 즐겁지 않다.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다 뜯어보고 나면, 이들의 일상은 괴롭고 고단해 보인다. <겨울왕국>이나 <메리다와 마법의 숲>처럼 기존의 세계관에 도전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캐릭터 하나하나의 내면과 감정을 소중하게 여겨주었으면 한다. 문제가 해결되거나 봉합되지 않아도, 굳이 친구와 초스피드로화해하지 않아도, 고민하는 과정과 폭풍우 치는 감정의 결을 탐색할 수 있는 <뽀로로>라면, 그나마 전 시즌 유료 결제한 과거의 나를 덜 미워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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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잇 페미니스트 5탄

우당탕탕 독박골 출산기



정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일찍이 희한한 여성들이 모여 살았던 그 곳, 독박골[각주:1]의 라이프스타일을 전해드리는 겟 잇 페미니스트2017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번 호에는 한동안 다시 없을지도 모를, 독박골 내 출산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2016년 독박골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독박골의 합계 출생률은 단 0.35명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2015년 합계 출생률은 1.24명으로, ‘초저출산 국가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997년에 시민사회단체로는 처음으로 산전산후 휴가제를 도입한 바 있는데, 그 사용 빈도 또한 매우 드물었다. 이 제도의 최초의 수혜자가 출산한 아이가 벌써 20대 중반이 되었고, 2008년을 마지막으로 본 제도를 활용한 이가 없었다. 이쯤 되면 독박골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멸종(?)의 길로 접어드는가 싶었지만, 근 십여 년 만에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2016년 여름, 무려 두 명의 활동가, 희진과 혜경이 후대를 잉태했고 20173월에 무사히 출산한 것이다.


첫 잉태 소식이 전해졌던 순간부터, 임신 중인 이들의 모성 보호를 위한 갖가지 소동, 그리고 출산까지. 지면의 한계로 그 웃픈순간들을 모두 전해드릴 수 없어 아쉽지만, 고생 끝에 무사히 순산했던 그 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부터 이 낯설지만 기쁜 사건을 보고하고자 한다.



2017.02.10. 베이비샤워


베이비샤워 이렇게 해보려고 했으나... (출처 : 섹스앤더시티)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의 출산예정일이 한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들의 산전산후 휴가 돌입 또한 다가왔기에 독박골 사람들은 함께 베이비샤워를 하기로 했다. 210일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하고, 인근 식당에 모인 그들. 식사가 끝나고 나니 찾아온 머쓱한 순간. 왠지 두 사람을 떠나 보내기엔 섭섭했던 이들은 돌연 구호를 외쳤다.



“다 함께 구호 외쳐보겠습니다. 최희진은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라!”


“김혜경은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고 원샷해라!” “원샷해라! 원샷해라! 원샷해라!”



두 활동가의 건강을 염려한 이들의 외침은 식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평소 음주가무를 즐기던 이들이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특히 예전부터 집회를 좋아했던 임신부, 희진은 수줍게 웃으며 응원 감사하다는 답사를 했다. 그리고 이날의 구호는 영험한 것이었음이 밝혀지는데


 

두 사람이 잘 낳고 복귀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송별 짤 ⓒ나눔 활동가



2017.03.04. 첫 번째 출산일


이날은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여, ‘2017 페미니스트 광장이 열린 날이었다. 두 임신부는 이미 휴가에 돌입해 갖가지 출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보신각에서의 행사를 마친 후, 헌법재판소를 들러 광화문까지 행진 대열이 도착했을 즈음. 310분이 조금 지난 시각, 메신저에 희진의 순산 소식이 전해졌다.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이른 출산이었지만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출산 경험 여부에 따라 사뭇 다른 축하법


길거리에서 행사를 치르느라 정신없던 독박골 주민들 모두 아낌없는 축하를 보냈다. 행사 내내 외쳤던 구호가 복중의 태아를 불러낸 게 아니겠냐는 추측과 함께, 세계여성의날 행사 중에 아기가 태어나다니 큰 페미니스트가 되겠다며 모두 기뻐했다.



2017.03.05. 희진과 출산 축하 사절단


순산 소식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독박골 주민들은 이튿날 희진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경기도 모처까지 달려간 이들은 주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샀다. 특히 R나라면 아이 낳느라 열 냈으니 반드시 시원한 게 먹고 싶을 것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희진은 찬 것을 자제해야 한다며 마음만 받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결국 가져간 커피를 자기들끼리 나눠마시게 된 축하 사절들은, 돌아오는 동안 우리가 모자랐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 안에 담긴 축하의 마음만은 진심이었을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축하 사절들


아무튼 희진은 이들의 축하에 화답하며, 출산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희진은 아이를 한 달 일찍 낳았을 뿐 아니라, 진통이 시작되고도 매우 빨리 낳았다고 한다. 출산 전날, 캠핑을 즐기던 중 징조를 느껴 서둘러 돌아왔고, 당일 오전에 병원으로 서둘러 향했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담당의가 오기도 전부터 아기가 나올 뻔하여, 흡사 아기를 길바닥에서 낳을 뻔한 경우라고 평했다고 한다.

 

아프지 않았냐는 물음에 희진은 별로 아프지 않았다고 대답해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았다. 과연 그녀의 출산 과정은 술이 식기도 전에 적장의 목을 베는, 흡사 관우의 모습과도 같았다. 늘 선봉으로 나섰던 희진의 강인한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났다고도 하겠다. 이에 축하 사절들은 안 아파도 아픈 시늉을 하고, 가만히 누워서 몸을 잘 보신해야 한다는 당부를 전했다.


용건이 끝나고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던 축하 사절들은 산모의 식사가 들어왔을 때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면회에는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겠냐는 물음에, 희진은 굳이 안 와도 좋을 것 같다는 답을 주었다고 한다.

 

 

2017.03.07. 두 번째 출산일

 

첫 순산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출산 소식이 날아들었다. 37, 젠더폭력 근절 정책토론회 후 기자회견이 진행 중이던 120분경, 역시나 여성폭력을 근절하자는 구호를 한창 외치고 있던 시간이었다. 활동가들은 저마다 축하 인사와 함께 “38둥이들이다!”, “역시 베이비샤워가 효과적이었다란 메시지를 전했다. 혜경은 이에 나는 똥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기가 나왔다는 위트 있는 멘트로 응했다.

 

 

복중의 태아를 호출하는 마법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남다른 산모의 남다른 출산 소감

 



2017.03.08. 혜경에게 배달의 장미를!

 

역시나 독박골 주민들은 출산 다음 날에 산모가 있는 병원을 찾았다. 이번 축하 사절들은 앞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혜경이 먹고 싶다는 티라미수 케이크를 사서 방문하였다. 비록 케이크를 방바닥에 흘리고, 종일 야외 캠페인을 해서 발 냄새가 나는 등 여러모로 불결한 방문객들이기는 했으나밝은 얼굴의 혜경은 모두를 따뜻하게 맞아 주어 더욱 진한 감동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혜경과 그녀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조금 불결한 방문객들


아무튼 3.8 세계여성의날이었던 당일의 의미를 더한 축하에 화답하며, 혜경은 파란만장했던 출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혜경은 전날 새벽부터 진통을 시작했는데, 얼마나 아프던지 비명을 멈출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남편의 팔을 꺾고, 택시 기사를 패닉에 빠뜨리며 병원에 도착했는데 그뿐이 아니었단다. 너무 고통이 커서 매 순간 위기를 느꼈던 혜경은 비상벨을 난타했고, 간호사가 이러시면 안된다며 그녀를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아기를 낳았다는 혜경은 이제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고통을 참을 수는 없다”, “남은 인내심을 모두 다 쓴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자연 분만을 하기 위해 부러 제왕절개율이 낮은 병원을 찾았던 혜경은, 먼저 의사를 붙들고 당장 제왕절개를 해달라”, “무통 주사를 놔달라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25년 전 출산을 경험한 바 있는 E는 이에 크게 웃으며, “보통 산모들이 아이 생각하느라고 아파도 진통제도 안 맞겠다고 하는데 정말 남다르다는 말을 보탰다.

 

 

4월 현재 두 활동가는 육아에 바쁜 나날을 보내며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해왔다용감하게 첫발을 뗀 혜경과 희진이 앞으로도 건강히 잘 해내길 바라며자매애를 담아 응원을 보낸다이상 두 여성을 지지하는 마음만큼은 진정성 넘치는 독박골 내 출산기를 마친다.

 


  1. 이제야 설명을 하자면, 독박골은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이 위치한 마을로,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을 이르는 말이다. 서울지명사전에 따르면 독바윗굴, 독박굴, 독바윗골이라고도 하나 사무실 인근 버스정류장의 표기를 따라 통상 독박골이라 칭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 여성인권회관을 완공하여 장충동에서 현 위치로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모 활동가는 이사 후, 단체의 비운(?)을 암시하는 듯한 본 지명을 듣고 탄식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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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제33회 한국여성대회 후기


유진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백여 년 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외침은 세계여성의날의 시초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효한 그 메시지들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매년 3월 8일에 맞춰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는 올해로 33번째를 맞았다. 올해 대회의 첫 번째 행사인 <페미니스트 광장>은 지난 3월 4일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가 열린 보신각 앞 광장은 성차별과 여성폭력을 근절하고 성평등을 촉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한국여성의전화 서민정 회원의 낙태죄 폐지 촉구 발언도 그중 하나였다. 서민정 회원은 태아의 생명만을 중시하고, 여성의 생명과 직결되는 재생산권은 존중하지 않는 이중적인 시선과 장애를 가진 여성의 임신에는 낙태를 권하는 우생학적 관점이 동시에 존재함을 비판하였다. 여성의 몸이 법적으로도 온전히 여성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낙태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외에도 동일노동 동일 임금, 차별금지법 제정 등 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이 날 광장에는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단체들과 함께 동국대학교 대학여성주의실천단 쿵쾅,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성소수자 부모모임, 정의당 여성위원회 등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문제에 의식을 가진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이 모였다. 총 천여 명의 참가자들은 부스와 발언 행사 이후 성평등 및 여성인권 신장에 대한 요구를 담은 구호들을 외치며 다 함께 행진하였다.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와 회원들은 '우리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없는 국가를 원한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에 함께했다. 또 대회 참가자들과 행진 중에 만난 시민들에게 '한국여성의전화가 제안하는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핵심과제' 유인물을 나눠주며 여성폭력 의제에 대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였다.




 이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당일에는 서울시청에서 <2017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3회 한국여성대회> 기념식이 열렸다. 모든 여성이 더욱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종, 국가, 성별, 성 정체성, 지역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한 주권자로서 존중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기치 아래,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는 슬로건으로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제19대 대선 주자들의 성평등 정책 공약을 듣는 '성평등 마이크'와 더불어 성평등 실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상하는 '성평등 디딤돌'상의 수상식도 치러졌다.


 특히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2년 8개월간의 법정싸움 끝에, 성폭력 가해자로부터 역고소 당한 무고죄의 무죄 판결을 받아내고 이후 성폭력 무고죄 적용의 문제점을 알려온 차진숙(가명) 씨가 '성평등 디딤돌'상을 수상하였다. 성폭력과 그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부추기고,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을 방해하는 무고죄의 문제점을 알려낸 차진숙 씨의 공로를 치하하는 상이었다. 


 차진숙 씨는 뜻깊은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며, 그동안 애써온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는 말로 인사를 전했다. 또한 "이 상을 받으려고 그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나 싶다. 상 이름만큼 제가 겪은 일이 디딤돌이 되어서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더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라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한국여성의전화 회원과 활동가들은 차진숙 씨의 수상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했다. 또한 모든 ‘성평등 디딤돌’상 수상자들에게 ‘빵과 장미’ 캠페인의 보라색 장미와 함께 축하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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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여성의날 자원활동 참여 후기


김인태 (前 장미공장 참여자, 現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평등문화를가꾸는남성모임 참여 중)


군 복무 중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여성의전화>라는 단체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었는데, 3.8 세계여성의날에 배포할 장미제작에 참여할 자원활동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먼 길을 찾아 도착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장미를 만들었는데 제 걱정과는 달리 어느 분도 제가 남자라서 당황한 기색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나이나 직업 등 ‘보통’ 물어보는 정보도 하나도 묻지 않으셔서 놀랄 정도였습니다.


복무 기간 동안 갈고닦은 단순반복노동능력을 한껏 뽐내며, 저를 포함해 모든 분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이틀 치 작업량을 하루 만에 끝내는 위용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가자마자 점심을 주셔서 맛있게 먹고 장미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두 시간마다 활동가분들이 오셔서 간식을 먹고 해야 된다며 계속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결국, 저는 점심, 간식, 저녁까지 먹고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자원활동을 하러 간 건데 먹고만 온 것 같아 죄송했고, 전역일 일정을 계산해보니 장미 배포에도 잠시나마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 3월 8일 활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전역식을 마친 후 짐을 챙겨 들고 장미를 나눠드리기 위해 바로 광화문으로 향해 장미를 나누었습니다. 아마 제 평생에 살면서 가장 단시간에 가장 많은 웃음과 감사의 말을 들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가게 점원분들도 나와서 받아 가시고, 동료가 받는 걸 본 남성분들이 “여성의날? 그런 날도 있었어? 오늘이야?” 하면서 관심을 가지시고, 세상 한가득 걱정을 짊어진 것 같은 분들조차도 장미를 받고 활짝 웃는 걸 보면 너무나 뿌듯했습니다. 점심과 간식도 먹고, -이곳은 정말 자원활동가들에게 마음의 빚을 남겨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결국 회원이 되었습니다.- 신촌으로 자리를 옮겨서 장미를 배포했습니다. 


광화문과 신촌 모두 장미가 생각보다 빨리 동나서 정말 더 주고 싶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지나다니는 모든 분에게 더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가족과의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 강남역까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전역일이었어도 절대로 아쉽지 않은 행복을 선물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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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3.8 세계여성의날, 당신에게 빵과 장미를


은총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1만 개의 장미는 무엇을 남겼을까

1908년 3월 8일 미국에서 2만여 명의 여성 노동자 시위대가 생존권을 의미하는 ‘빵’과 참정권을 의미하는 ‘장미’를 달라고 외친 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집계해도 남편이나 애인 등에 살해당한 여성이 1.9일에 1명(2015년). 성별임금격차 OECD 국가 중 1위(2014년). 한 세기가 지나도록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여전하다. 


2017년 3월 8일. 한국여성의전화는 모든 여성의 삶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한 세기 전 여성들의 외침은 지금 우리의 외침이기도 하다는 뜻을 전달하고자 서울 방방곡곡에서 여성들에게 장미를 나눴다. 아침 일찍 광화문 광장에서, 오후 무렵 신촌 대학가에서, 그리고 눈이 오는 저녁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보라색 장미가 뿌려졌다. 뜻하지 않은 선물에 즐거워하는 여성들. 의미와 선물을 함께 나누며 힘을 얻은 활동가, 자원활동가, 회원의 행동으로 다양한 기쁨이 서울 곳곳에 가득했다. 




장미와 함께 당신을 향한 응원을!

올해는 2016년보다 한층 진화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연을 접수해 3.8 세계여성의날에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가 사연 대상자에게 직접 장미를 전하는 <배달의 장미>가 바로 그것이다. 원래 장미 배포 지역 인근에 한해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삶이 녹아든 각양각색의 이야기에, 넘치는 의욕을 충전해 은평구에서부터 영등포구까지 퀵서비스를 방불케 하는 속도와 일정으로 장미를 배달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이 침해됐을 때 당당하게 맞섰으면 좋겠다.”


아직 새벽바람이 쌀쌀한 아침 1교시 수업에 깜짝 선물이 나타났다. 학생들의 탄성과 비누 장미의 향기가 교실에 퍼졌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이진현 한국여성의전화 회원이 스물 일곱 명의 학생에게 장미를 선물했다. 이진현 회원은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이날을 떠올리며 자신의 권리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렇게 놀기 좋아하던 네가 워킹맘이 되어 열심히 일하는 걸 보니 기특하기도, 짠하기도 하네.”

동생과 공동육아 중인 언니가 혼자만의 시간이 ‘판타지’가 되어버린 동생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배달의 장미>를 신청한 사람이 언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일하는 여성으로 살며 공동육아를 맡은 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연신 눈가를 훔쳤다. “오늘만큼은 여성들이 행복할 권리가 있지 않겠니?”라는 언니의 말에 사연의 주인공은 “우리 행복해지자.”라는 대답을 전했다. 




“지금은 비록 각자의 자리에서 투쟁하고 있지만, 우리는 틈틈이 여성폭력이 없는 세상으로 바꾸어 나가는 점으로 나타나 함께 선을 긋고, 도형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페미니즘 활동을 시작한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도 <배달의 장미> 주인공이 되었다. “함께 공부하고, 설치고, 떠들고, 소리치고, 싸웠던” 동료로부터 멀리서도 불꽃의 장작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받은 활동가들은, 신촌 길거리에서 “너무 행복하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배달받은 장미를 나누어주는 참된 활동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축하해!”


이 외에도 힘든 나날들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축하하고 같이 성장해나가길 기원하는 각기 다른 두 신청자의 사연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상의 작은 기쁨에 이들은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소중한 우정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또 6개의 시민단체와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의 ‘성평등 디딤돌’상 수상자들께 장미를 배달했다. 한국여성민우회에는 깜짝 선물을 주기 위해 예고 없이 방문했다. 그러나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가 아무도 없어 텅 빈 사무실의 책상에게 대신 장미를 배달하고 오기도 하였다.


“저 또한 가정폭력피해 생존자로서, 피해자가 두 발로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오랜 시간동안 활동해 온 한국여성의전화에 감사드립니다.”


<배달의 장미> 종료 직전, 마침 근방에서 모임을 하고 있던 여성주의자 모임 <로리타펀치>에서 트위터를 통해 장미 배달을 신청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홍대입구역 인근에 거주하는 활동가의 방에서 누워있던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은 부랴부랴 남은 장미를 챙겨 마지막 장미를 배달하기 위해 다시 신발을 신었다. <로리타펀치>의 활동가는 장미를 받은 후 모임 구성원들이 함께 마련한 후원금을 한국여성의전화에 깜짝 선물해주었다. 감사를 전하는 활동가들에게 <로리타펀치> 활동가는 “오히려 자신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해 온 한국여성의전화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하며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 외에도 응원의 문자를 보내면 1건당 3천 원이 후원되는 #2540-1983번을 통해 3.8 세계여성의날을 지지하는 메시지로 힘을 실어 주신 많은 분들이 계셨다. 


2016년 1,500송이에서, 2017년 1만 송이의 장미를 준비해 더 많은 여성들과 3.8 세계여성의날의 의미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직접 전하진 못했더라도, 이 땅의 모든 여성에게 온 마음을 담아 ‘빵’과 ‘장미’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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