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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소녀들, 성에 대해 입을 열다!

by kwhotline 2012. 3. 4.

소녀들, 성에 대해 입을 열다!


“헐, 쩌러! 완전 야해!”

“다 벗었어. 야, 너 왜 그렇게 진지하게 보는데?ㅋㅋ”

시끄러운 고3교실. 입시로 바쁜 우리들이지만, 언제나 수다는 필수다. 친구들 서넛이 모여있는 2분단 중간쯤 자리에 나도 앉아 어느새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꺼내든 PMP에는 19세가 아니라면, 부모님께 들킬까 집에서도 마음대로 볼 수 없었던 그 영화가 담겨져 있었다. 어떻게 구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랄까? 이미 어린 나이에 19금 영화를 접한 친구들은 ‘별로 야하지도 않네, 뭘. 그 뭐지? ***이 더 야할껄?’이라며 자신이 보았던 야한영화 리스트를 쭉 뽑아준다. 이런 영화를 처음 접한 나와 몇몇 친구들에게 그 친구가 보았던 영화는 그동안 ‘금지된’ 영화였다. 문득 어쩌면 그 금지된 영화가 그냥 명목상 금지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PMP속 19금 영화, 친구들이 보았다던 야한 영화가 우리들 사이에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분명 ‘19세 이상’이라는 규정은 단지 어른과 학생을 규정짓는 억지스런 조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19금? 쳇, 웃기고들 있네!

우리들은 PMP에 담긴 영화를 보며 저마다 탄성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누구하나 동영상을 멈추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기도 했지만, 남녀의 성관계가 그토록 무섭고 충격적인 일인지 처음 알았다, 이 영상을 본 뒤 난 며칠 동안 계속 그 장면들이 떠올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TV에서 그 연기를 했던 배우가 나오기만 해도, 친구들과 성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나오기만 해도 자꾸 트라우마처럼 장면들이 떠올라 곤욕을 겪었다. 알고 보니, 그 때 함께 보았던 친구들도 이런 현상을 겪었다고 한다. 19금 영화의 마력이란 참 대단한 듯 보였다.

나는 내가 야한 19금 영화에 동참했다는 사실보다는 왜 우리에게 그 영화는 금지된 영화인지 궁금해졌다. 아직 성적 가치관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우리들에겐 어려운 영화다? 너무 선정적이다? 이런 어른들의 대답에 콧방귀를 끼며 웃을 수 있는 우리기에, 난 ‘19금딱지’에 반대표를 던진다. 알 것 다 아는데, 괜히 감추려고 하고 19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라고 이름만 거창하게 붙여버리면, 우리가 포기해버리고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공부만하며 살아갈 줄 알았을까?

문득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하겠지. ‘여고생도 다 보는구나?’와 같은 생각 말이다. 여학생만 있다고 하면 흔히들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남학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성에 관심을 곤두세운 발칙한 학생들에 불과하다. 여학생들도 이정도인데 남학생들은 어떨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우리도 성적으로 성숙한, 19살 일 뿐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우리보고 ‘순결’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는지…….

어두운 골목에 깊숙이 들어가 보면 ‘성’에 의해 고립된 소녀들을 만날 수 있다. 같은 10대지만, 조금은 다른 행보를 걷고 있는 소녀들을 보면 무척 안타깝다. 그러나 오히려 그 소녀들은 사회의 이러한 시선을 더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다. 한번 성매매의 현장에 들어서게 되면 10대들은 조금만 일해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성매매에 뛰어들게 된다. 그들에게 성매매는 직업이며 성매매업소는 직장이다. 최근의 성매매 업소의 여성들이 벌인 생존권시위만 보아도, 그들에게는 성매매가 사회에서 생각하는 부정적이고 탈선적인 요소가 아닌, 그들의 생존이 달린 직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0대들을 유혹하는 수많은 성적요소들 속에서 소녀들은 예전처럼 갈 곳 없이 방황하고 있지만은 않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생각이 있고, 성적관념을 가지고 있다. 10대 여성의 성은 지켜져야 하고, 만에 하나 10대가 성에관한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면, 마치 생각이 없는 사람인 양 그들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는다. ‘순결’, 이것이 사회가 원하는 10대 여성의 성이다. 그러나 10대청소년의 한 명인 나는 왜 굳이 10대 여성에게만 이 단어를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소녀들에게도 그들의 성에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성문화를 표출할 권리가 있다. 더 이상 여성들에게 순결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은 그들의 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얼마 전 산부인과에 다녀온 적이 있다. 교복 입은 내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어른들을 보며 난 한숨지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올 수 있는 병원을 10대라는 이유로, 금지된 영화를 볼 수 없는 나이라는 이유로, 여고생이라는 이유로 눈치 보며 와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19세라는 규정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하필 그 나이인지, 여고생에 상응되는 이른바 ‘풋풋한’ 이미지는 어디서 근거했는지 궁금해진다. 19세 금지조항을 없애라는 것도, 18세로 내리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단지 우리도 사회가 강제로 규정지었던 ‘어른’들처럼 우리도 성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고, 알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제1기 기자단_이지연기자

*비하인드스토리

이 글을 쓰기로 결정했을 때 처음에 많은 퇴고작업을 거쳤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원래 쓰고자했던 ‘숨기지 말고 10대를 드러내자’는 방향을 다시 찾았고 솔직한 10대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어쩌면 10대였던 나에게 가장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웠던 글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광범위했기 때문에 무엇부터 건드려야할지 조심스러웠지만 학교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상을 소재로 10대들의 이야기를 마인드맵 그리듯이 나열하면서 기사를 완성해나갔다. 기사가 계속 수정작업을 거치고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꺼내고 싶은 강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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