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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가족 내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기획 기사] <원 데이 앳 어 타임>, 우리에겐 이런 가족이 필요하다

by kwhotline 2019. 6. 4.

[가족 내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기획 기사]


- <원 데이 앳 어 타임>, 우리에겐 이런 가족이 필요하다

지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우리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성애 부부와 그 사이에서 혈연으로 연결된 자녀()의 구성으로 상상되는 정상가족 모델은 국가적으로 장려되어 왔다. 본 기획기사에서는 단단하게만 보이는 이러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고 있는, 진정한 공동체에 가까운 모습의 가족을 그리고 있는 미디어 콘텐츠에 대해 분석해보려고 한다. 해당 주제를 다룬 여러 작품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중에서도 최근 흥미롭게 보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원 데이 앳 어 타임>(One Day At A Time)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원 데이 앳 어 타임> 시즌 1-3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부장 없는 가족

<원 데이 앳 어 타임>은 쿠바계 미국인인 알바레스(Alvarez) 가족이 주인공인 미국 시트콤이다. 가족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의 가장 표면적인 특징은, ‘가부장,’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 가족의 공식적인 구성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할머니 리디아 엄마 페넬로페 딸 엘레나, 아들 알렉스로 이루어져 있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상당히 의도적인 구성이다. 생계 부양을 하는 아버지의 존재를 삭제한 것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를 없앤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알바레스 가족의 주생계부양자는 싱글맘인 페넬로페이다. 군인이었던 남편 빅터가 전후(戰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알코올 및 약물 중독에 시달리고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자, 힘겹지만 과감히 별거를 선택한 그녀였다. 이후 페넬로페는 한 동네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물론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고, 그래서인지 시즌1 후반에 남편이 재결합을 은근하게 제안할 때 약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이 진짜로 중독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자 다시 한 번 과감히 재결합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남편 빅터와의 서사 외에 페넬로페가 가지는 이성애 관계 서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데이트하는 남성 캐릭터들은 중년 여성도 성적 욕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는 것이 전부이며, 페넬로페가 그들에게 완전히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는 볼 수 없다. 특히 시즌3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그 어떤 남자도 선택하지 않고 홀로서기를 택한다.

<원 데이 앳 어 타임>아버지가 없는 가족이라는 것이 무언가 부족하고 결함있는 형태로 그려내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많은 미디어 콘텐츠들이 정상가족형태에서 벗어난 가족들을 순전히 불행하기만 한 존재들로 재현하는 태도와 상반되기에 더욱 흥미롭다. 이러한 측면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엘레나의 킨세녜라(쿠바 전통 성년식)가 그려지는 시즌1의 마지막 에피소드이다. 별거 중인 아버지 빅터는 아빠와 딸의 춤이 예정되었던 그녀의 킨세녜라에 왔다가, 엘레나의 커밍아웃을 듣고 춤 직전에 몰래 도망쳐버린다. 페넬로페를 비롯한 가족들은 상처받은 엘레나를 끌어안고 아빠와 딸의 춤노래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춘다. ‘아버지는 딸을 이해하지 못해 도망쳤지만 그 빈자리를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넘치도록 채워주는 이 장면은, 아버지 없는 가족 역시 너무나 당연하게도 평범한 가족의 한 형태임을 보여준다.

 

대화변화가 가능한 공동체

알바레스 가족은 매우 다른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리디아는 항상 흥이 많고 춤추기를 좋아하지만, 가부장적인 사고를 내면화하고 있는 노년의 여성이다. 리디아의 딸인 페넬로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군인 출신으로, 강한 여성상(‘bad ass soldier’)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페미니즘의 이슈나 이론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딸인 엘레나 같은 활동가는 아니다. 반면 페넬로페의 딸인 엘레나는 온갖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으며 실제로 페미니스트 집회나 교내 성 소수자 동아리를 조직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이렇게 동질적이지 않은 관점을 가진 이들은 여성, 성 소수자, 이주민 등 다양하고 민감한 이슈에 대해 항상 부딪히고, 언쟁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이 가족 구성원들이 그냥 싸우고 끝난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대화하고, 그 대화를 통해 캐릭터들이 변화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리디아와 엘레나는 화장을 할지 말지, 리디아와 페넬로페는 성당을 다닐지 말지, PTSD 집단 상담을 받을지 말지, 페넬로페와 엘레나는 킨세녜라를 할지 말지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한다. 각자의 의견을 솔직하게 내뱉는 그 과정이 완벽하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서로의 의견에 대해 숙고한 뒤, 어떻게든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한다.

페넬로페의 아들 알렉스도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한 캐릭터이다. 그는 시즌이 진행될수록 유해한 남성성에 물드는 10대 남성이다. 하지만 엘레나와 페넬로페는 그런 알렉스에 대해서 그냥 포기하거나 면박만 주고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의 행동이 왜 여성혐오적이었는지, 그것이 왜 잘못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알렉스의 사과와 변화를 이끌어낸다.

대부분의 한국 사회의 가족들이 익숙하지 않고, 잘하지 못하는 것은 대화라고 생각한다. 한국 가족의 정치학은 강력한 가부장이 아내와 자식들을 휘어잡으려고 하는 방식으로밖에 상상되지 못하며, 그것이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대화가 불가능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공동체가 정말로 바람직하고 정상적인가? 알바레스 가족은 이러한 통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가족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가족 내의 권력 관계가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서로 교차하는 입장을 나눈 다음 옳은 방향으로 변화해나가는, 이상적인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모습 말이다.

 

혈연 중심의 가족을 넘어서

<원 데이 앳 어 타임>의 주연 캐릭터들은 혈연으로 묶인 가족이며, 혈연에 기반한 애착이 매우 강한 쿠바 문화를 보여준다. 전통적인 대가족이 등장하는 한국의 주말·가족 드라마들도 상당히 유사한 관점을 견지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정말 독특한 점은 이러한 혈연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하고 유일한가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기성 구조를 넘어 더욱 확장된형태의 가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알바레스 가족이 사는 건물의 건물주 슈나이더가 그려지는 방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슈나이더는 특권층, 부자, 캐나다 국적의 백인 남성이고, 그래서 소수자 이슈에 대해서 나이브한 태도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동시에 슈나이더는 원 가족, 특히 가부장적이고 제멋대로 굴며 바람둥이인 아버지에게 크게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는 그래서인지 알바레스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계속해서 아래층인 알바레스 가족의 집을 방문하고, 저녁식사에도 거의 매일 함께 한다. 알바레스 가족의 사진을 퍼즐로 주문제작해서 직접 맞추기도 하고, 그들의 모형이 들어가 있는 스노우볼을 만들 정도이다.

하지만 알바레스 가족은 이렇듯 조금은 유난이다 싶은 슈나이더를 진정으로 확장된 형태의 가족으로서 품고, 서로가 서로에게 더 의지하게 된다. 페넬로페가 전후(戰後) PTSD로 인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을 때, 옆에서 이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진심으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은 슈나이더이다. 또한 슈나이더가 8년간의 금주에 실패하고 다시 알코올 중독의 길을 걸을 때, 손을 잡아주는 것 역시 알바레스 가족이다. 서로 아끼고 돌봐주는 마음은 결코 혈연에 묶인 가족 관계에만 종속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슈나이더 외에 엘레나를 통해서도 이러한 혈연 중심의, 이성애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상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엘레나는 커밍아웃 한 10대 성 소수자 여성이며, 자신은 미래에 남성과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대신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고양이를 키우며 살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엘레나의 말을 통해 우리는 이성애 중심적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획일적인 상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원 데이 앳 어 타임>은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가족이라는 것이 과연 혈연이나 이성애 관계에만 얽매여 있는 것일까? 라는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가족상을 제시하는 미디어 콘텐츠가 필요하다

영화와 드라마 같은 미디어 콘텐츠는 현실의 사람들을 구현하고, 재현하고, 인간에 대해 탐구한다는 목적을 가진다. 현실의 사람들이 다양하고 복잡한 만큼, 미디어 콘텐츠에도 더욱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모습 역시 그러하다. 사회가 강요하는 가족에 대한 유일한 상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실의 다양한 가족과 공동체를 포착하는 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글에서 살펴본 드라마 <원 데이 앳 어 타임>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하나의 흠도 없이 완벽하고 이상적인가족을 이룬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개개인을 존중하고 혈연 공동체로서의 가족 개념을 확장해 나가는 알바레스 가족의 특성과, 이를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그리려는 작품의 태도 등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이렇게 현실에 발붙이는 동시에 더욱 지향할 만한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는 미디어 콘텐츠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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