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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한녀X한녀: 엄마와 딸의 가부장제 부수기 2탄

by kwhotline 2019. 5. 28.

한녀X한녀: 엄마와 딸의 가부장제 부수기 2

한국여성의전화 페미니스트 모녀 회원 인터뷰

 

인터뷰어: 중헌, 선영, 수현

인터뷰이: 종숙, 나눔


 

 5,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을 맞아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소모임 회원 인터뷰단은 성평등한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두 명의 페미니스트를 만났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활동가로 회원들을 맞이해왔던 활동가 나눔과 한국여성의전화 회원이자 나눔의 어머니인 종숙님이 소중한 이야기를 내어주신 것. 먼 지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상통화를 통해 이루어진 21세기형 인터뷰! 엄마이자 딸로, 가장 친한 친구로, 연대하는 페미니스트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개인으로 관계 맺고 있는 두 모녀 회원의 서로도 몰랐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화상통화가 연결되고 반가우면서 신기해하는 사람들]


Talk. 페미니스트 모녀가 말하다 연애 경험

Q. 지금의 남편분과 결혼을 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종숙 : 친구 중에 내가 제일 일찍 결혼했어, 26살에 했어요. 그때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지. 남편은 항상 돈 워리 비 해피”, 이 말을 읊으면서 다니는 사람이에요. “걱정하지 마. 내가 다 해결해줄게.” 기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제가 7남매 중 막내거든요. 결혼 아니고는 독립할 여지가 없는 거예요. 대학 다닐 때나 회사 다닐 때도 집에서 다녔으니까. 본가가 성남이고 회사가 안국동인데, 새벽 5, 6시부터 깜깜할 때 출발한대도 집에서 다녔어요. 그때는 너무너무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어요.


나눔 : 이 나이대 여성들이 독립이나 삶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Q. 나눔쌤은 어때요? 지난 연애들을 생각해 봤을 때?

 

나눔 : 사실 저는 되게 특이한 경우긴 한데, 제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친구를 엄마 아빠한테 소개했어요. 그리고 저는 엄마랑 제일 친해서 엄마한테 모든 이야기를 다 했기 때문에 엄마가 제 연애사를 다 알아요. 엄마는 그럴 때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늘 말씀해주셨거든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하기보다는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듣고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게 맞는 거다라고 늘 말씀해주셨어요. 그것이 제가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폭력적인 상황이 아닌지를 더 빨리 인지할 수 있게 도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제가 여자를 만났을 때도 이분(종숙)이 굉장히 담담하게 받아주셨거든요. “여자 만날 수 있다.” 그 때 심경이 어떠셨나요?

 

종숙 : 우리 애한테도 이럴 수 있구나.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잖아요? 미디어에서 나는 동성애자에요라고 아이가 커밍아웃 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해서 굉장히 고통 받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애가 저러면 나는 어떻게 하지 생각할 때,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는데 너 호적에서 파내겠다하고 오늘부터 집에 들어오지 마라부모가 내치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거예요. 머릿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눔이가 그렇게 말해서어 그래. 우리 아이한테도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나눔 : 이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요.

 

Q. 애인이 생기자마자 바로 어머니께 이야기 하셨어요?

 

나눔 : 생기기 전에 마음 끌리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어요. 여자가 좋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군요?

 

종숙 : 어디가 좋냐 이랬더니, 멋있고(웃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눔과 종숙]


Talk. 페미니스트 모녀가 말하다 젠더불평등

Q. 각자의 나이대에서 마주치는 가장 대표적인 젠더 불평등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불평등에 어떻게 대처하실까요?

 

나눔 : 저는 느끼기가 어려운 게, 주변에 너무 페미니스트들만 있어요. 그렇지만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은 있는 것 같아요. 일하는 관계 등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제가 여성스러운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여성스럽지도 않고 단정하지도 않고 어려 보이고 실제로 나이도 어리고. 그러다 보니 일하는 사람하고의 관계에서 많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지점이 있어요.

그거 말고 에어컨 기사 같은 수리 기사들 만날 때 무섭거나 어려운 것이 있죠. 기본적으로 무시하는 것도 있고. 제가 오토바이가 있는데, 수리를 맡길 때 여자라고 무시하거나 네가 뭘 알겠니?’ 이런 태도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사실 극복하기가 어려워서 훨씬 더 많이 알아보고 발품을 팔고 이럴 수밖에 없어요. 똑 부러지게 말하려고 하고 노력하고요.

 

종숙 : 저도 똑같이 겪는 거 같아요, 나이가 들어도. 우리 집이 통나무집이거든요. 통나무집이 보수할 일이 많아요. 내가 웬만한 거는 나무를 사다가 자르고 수리도 하고 건축도 하고 그러는데, 나무를 사러 갔을 때 보면 왜 왔냐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불친절하게 하는 일이 있어요. 네가 뭘 알겠냐는 둥. 그럴 때마다 한군데 정해놓고 계속 가요. 그런 말들은 무시하고 나는 내가 살 걸 사러 갔으니까, 계속하는 거야. 안면을 터놓고 요구할 것도 요구하고. 나무를 어느 정도 사이즈로 차에 실리게 잘라 달라 그런 거는 여자라서 나약하게 봤는지 잘 잘라주더라고요.

제가 요즘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야기를 할 때 유머를 다크로 만들어 버리는 여자라고 하는 거예요. 저도 재밌는 여자이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네가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문제제기하면 저한테만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예민해서 가까이할 수 없는 여자, 이런 식으로 낙인을 찍어 버리는 거죠. 그리고 자기는 개념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싫으니까 조용히 침묵하고 있으면서 밴드나 카톡에 내가 글을 올렸다 하면 빨리빨리 다른 글을 올려서 화제를 덮어 버리는 거예요. 제가 말을 해서 그 사람들이 뭔가를 느끼는 게 아니라, 건드리지는 말자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느낄 수가 있어요. 이런 거는 그냥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나눔 : 이런 상황 페미니스트는 다 겪는 일인 것 같아요. 나이대와 상관없이.

 

Talk. 페미니스트 모녀가 말하다 우먼파워

Q. 각자 경험한 우먼파워, 인상 깊었거나 영향을 받았던 여성, 혹은 여성의 연대를 이야기해볼까요?


종숙 : 최근에는 녹색당 신지예, 은하선 두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고요. 당당하게 페미니스트라고 밝히잖아요. 신지예 씨가 페미니스트는 성폭력 성차별하지 말자는 얘기다. 이건 여성들만의 문제 아니다, 남성들도 같은 문제 아니냐.’ 이런 얘기를 당당하게 언론에서 말하는 것이 좋아요. 이미지도 굉장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예전에 영향을 받았던 건 현경 씨에요. 아세요? <현경과 앨리스의 신나는 연애> 이런 책을 쓴 사람이에요. <현경과 앨리스의 신나는 연애>에는 레즈비언의 연애라거나 다양한 형태의 연애 이야기가 나와요. 막 결혼했을 때 그 책을 봤는데 당시에는 내가 이성의 사랑만 생각을 했지 다른 유형의 사랑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랬다가 그 책을 보면서 충격과 함께 깨달음이 왔죠. 내가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오랜만에 책을 들춰봤더니 밑줄을 그어둔 게 있더라고요.

 

[2004년도에 출판된 파격적인 표지를 가진 책]


우리는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머리를 빗겨주고 서로 씻겨주고 함께 먹고 영화 보고 캠핑을 떠났다. 별나라에서 사는 것만 같았다.’

희망은 하되 상대방이 그것을 꼭 해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을 때 삶의 경이가 유지된다.’

언제나 출발하기에 가장 적당한 자리는 우리 자신의 자아와 더불어 시작되는 곳이다.’

우리를 죽이고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 이것이 생존의 기본 조건이다.’

 

이렇게 좋은 말들이 있어서 그때는 잘 이해를 못 하면서도 내가 이제 막 애들 낳아서 독박육아에 지쳐있었을 때 위로가 됐어요. 저도 조금 내려놓 주변 사람들도 내려놓게 됐어요. 책임감에 눌려 열심히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니깐 힘든 거잖아요. 육아에 대한 책임이라거나, 시댁에 잘해야 된다거나 남편에 대한 기대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 내려놓으면서, ‘내가 뭐 때문에 화가 나는지, 우리가 왜 화가 나는지 좀 더 알아봐야 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잘 모르잖아요. 차별을 받아서 화가 나는 건데.

 

나눔 : 저는 어떤 특별한 여성 한 명이 임파워링을 줬던 것 같지는 않고, 일상에서 자신의 목소리나 의견을 내는 여성들, 그리고 내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공감해준 여성들, 미디어에서도 김새롬이 고조선이야 뭐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모여서 저에게 큰 힘을 줬던 것 같아요.

 

[웃음과 속 시원함을 모두 잡은 유행어. 표정이 적절하다.]


Talk. 페미니스트 모녀가 말하다 자랑스러웠던 순간

Q. 페미니스트로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던 순간, 서로가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있을까요?

 

종숙 : 전에는 내가 페미니스트라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소개를 안 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페미니스트 이종숙입니다.’ 이렇게 소개해요. 그래서 페미니스트인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것 같아요.

나눔이가 자랑스러웠을 때는, 나눔이가 대학교 4학년 때 교내 성폭력을 겪으면서 온몸으로 대응하고 폭로했던 때에요. 그때는 우리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도 전이거든요. 지금은 미투 운동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일어나도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걸 느끼고, 폭로 이후에 보복이나 크게는 여성 살해사건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서 당시를 생각하면 참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런 생각이 한편으로 들면서, 그래도 자신이 당한 일에 당당하고 용기 있게 대응하고 주변 사람들한테까지도 영향을 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고등학교 선생님들한테까지 파장이 가면서, 교사 여성주의 워크숍도 진행되었어요.


나눔 : 가해자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나와서. 피해 폭로자가 저뿐만은 아니었어요. 피해자들이 모여서 같이 폭로를 했고,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그 소식을 접하고 워크숍을 열기도 하시고 그러셨는데, 자랑스러웠군요? (웃음) 그때는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할 정신이 없었어요. 처음 들어요. 아무튼 감회가 새롭네요.

저는 엄마, 이종숙 씨가 자랑스러웠던 때는제가 페미니즘을 배우고 나서는 계속 쭉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페미니즘을 배우기 전에 그냥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는 집안의 가부장인 아버지가 엄마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그 자식들이 엄마를 대하는 태도들이 달라진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에릭남 가족도 그렇잖아요. 전에는 엄마가 그냥 엄마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별로 존중하지 않았는데, 지금 제가 돌이켜보니까 제가 막 뛰어다니고 5살 때부터 치마 입는 걸 거부했는데 엄마가 그것을 존중하고 그냥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게 키운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런 훌륭한 교육관을 가지신 분이라서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 이렇게 얘기한 에피소드 있잖아요. 저도 처음 들었어요. 처음 듣는 얘긴데, 이 얘기뿐만 아니라 웃긴 얘기들이 훨씬 많거든요? 가족 내에서 고군분투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너무 자랑스럽고. 그래서 성소수자면서 페미니스트인 지금의 제가, 가족 내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어주신 분이 저희 어머니라고 생각해서 그게 너무 자랑스럽고. 제 경험에 대해서도 굉장히 잘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인정해주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좋고, 갑자기 칭찬하는 시간 됐는데 아무튼 제가 이렇게 있는 것은 저희 어머니 덕분이라고 생각해서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때는 되게 어려운 질문인 것 같은데, 내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다른 여성의 경험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고 지지할 수 있고 힘을 주고받을 수 있고 이런 제 모습을 볼 때 좀 괜찮다 이런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부끄럽구먼.

 

[열심히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회원 인터뷰단]


Talk. 페미니스트 모녀가 말하다 마지막으로


종숙 : 요즘 굳이 고민이라면 고민인 게, 이게 큰 고민인데 남편을 어떻게 페미니스트로 만들어볼까가 고민이에요. 가부장제를 버리게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에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국여성의전화 지금까지도 고생 많으신데 앞으로도 많이 애써주세요!

 

나눔 : 저는 사실 제가 여성의 전화 활동가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어머니를 인터뷰 대상으로 같이 한다는 게 많이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렇지만 사실은 엄마를 되게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게 다른 회원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저희 가족이 너무 이상적이거나 특별하게 그려지진 않을지 좀 걱정스럽긴 해요.

저희 가족이 좀 특별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거든요. 그냥 일상 살아가는 건 다 비슷한데. 크게 부자인 것도 아니고 가난한 농민으로서 그냥 소소하게 살아가고 있거든요, 자랑스러운 어머니 덕분에 이렇게 된 건데다른 분들도 저런 사람이 내 옆에 없어서 내가 못 하는 거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하는 한마디 말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를 키워냈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가족 내 불평등 속에서 엄마의 위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자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익히고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을 어떻게 페미니스트로 만들어 볼까?’라는 마지막 고민 역시 인상적이고꼭 성공하시리라 믿는다.

엄마든딸이든 여자라면 겪는 흔한 일상이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던 순간질문과 대답 사이에 있던 잡음과 버퍼링자연스럽게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 놓게 되었던 순간인터뷰 준비와 진행편집과 홍보를 준비한 시간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잘 쌓고또 비우면서 다음 인터뷰 준비를 해야겠다가정폭력에 관한 다음 인터뷰도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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