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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한녀X한녀: 엄마와 딸의 가부장제 부시기 1탄

by kwhotline 2019. 5. 10.

한녀X한녀: 엄마와 딸의 가부장제 부시기 1탄

한국여성의전화 페미니스트 모녀 회원 인터뷰

 

인터뷰어: 중헌, 선영, 수현

인터뷰이: 종숙, 나눔


  

5,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을 맞아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소모임 회원 인터뷰단은 성평등한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두 명의 페미니스트를 만났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활동가로 회원들을 맞이해왔던 활동가 나눔과 한국여성의전화 회원이자 나눔의 어머니인 종숙님이 소중한 이야기를 내어주신 것. 먼 지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상통화를 통해 이루어진 21세기형 인터뷰! 엄마이자 딸로, 가장 친한 친구로, 연대하는 페미니스트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개인으로 관계 맺고 있는 두 모녀 회원의 서로도 몰랐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ntro. 자기소개 한국여성의전화 회원이 된 계기

종숙 안녕하세요저는 산청에 살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이종숙입니다요즘 여성운동가들이 가장 애를 많이 쓰잖아요그래서 여성 운동하는 단체에 힘을 보태려고 회원이 되었습니다.

나눔 : 저는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나눔입니다저도 마찬가지로여성단체에 많은 힘이 되고자 활동가가 되면서 회원이 되었습니다.

Talk. 페미니스트 모녀가 말하다 최근 관심사 

나눔 : 저는 아무래도 20대이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까 친구들하고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적 문화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게 돼요. 친구들은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데, 임원이나 높은 직위의 사람들 중에서 여성이 많이 없다는 얘기를 하죠. 직위가 올라갈수록 결혼이나 여러 이유 때문에 일을 하는 것 자체에도 부담을 많이 느끼게 되고, 결혼/육아휴직 같은 부분에 대해서 여성에게 알게 모르게 압박을 주는 사내 분위기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앞으로 회사에서 오래 일을 하더라도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하는 하소연을 듣고 있어요. 하지만 비혼으로서 이 문제를 극복하자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종숙 : 저랑 친구들은 우리 나이가 나이다 보니까 부모님을 돌보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거든요. 우리 시어머니 같은 경우도 혼자 사신지 8년 정도 되었거든요? 시댁이 집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인데, 남편이 처음에 시어머니가 혼자가 되신지 얼마 안돼서 너 혼자서 엄마한테 갈 일이 앞으로 많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때 남편이 어머니 돌봄을 나한테 떠맡기려고 하는구나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 기회로 자기 부모는 자기가 돌보는 것으로 하자. 아들이 보고 싶지, 며느리가 보고 싶겠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시어머니께서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을 가시는데 남편이 1시간 거리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점심 외식을 하고 다시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있어요. 처음에는 힘들어하더니 요즘에는 적응이 되어서 갔다 오면 우리 엄마가 한 달에 한 번 아들 만나서 점심 사먹는 재미로 병원 다니는 것 같다고 하면서 좋아하셨다고 하더라구요. 남편이 전적으로 안부를 묻고 혼자 가기도 잘 하고, 저 같은 경우는 명절 때나 나눔이가 집에 왔을 때, 생신 때 이럴 때만 같이 가서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Talk. 페미니스트 모녀가 말하다 가족 내 성평등

Q. 돌봄노동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 내 성평등 이야기로 넘어온 것 같은데요, 돌봄노동 뿐 아니라, 가사노동, 감정적 부분까지도 가족 내에서 차별을 경험했거나, 혹은 성차별을 변화/개선한 경험이 있으신지?

 

종숙 : 초기에는 남편과 많이 싸웠어요.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2개 정도 있는데, 하나는 남편이 대학 다닐 때는 하숙하면서 자기 운동화를 자기가 빨았는데, 결혼을 하니까 출근하면서 운동화 좀 빨아줄래?” 이러고 가는 거예요. 맨날 자기가 빨아 신던 걸 별안간 왜 나보고 빨아 달라 그러냐고 그러면서 빨아 신기 싫으면 랜드로바(가죽신발)를 사서 신어라 그랬어요. 그래서 한 번인가 랜드로바를 사서 신더니 자기는 역시 운동화가 좋다면서 운동화를 신는데, 해지면 버리고 그냥 새로 사더라고요. 한 번도 안 빨고. 뭐 그렇게 신든 저렇게 신든 저는 운동화 한 번도 안 빨아봤어요.

 

다른 하나는 아기 낳았을 땐데 나눔이가 아주 어렸을 때, 한두 살 즈음이었을 거예요. 저는 한 달에 한 번씩은 남편한테 아이들을 맡기고 혼자서 여행도 가고, 친구도 만나러 갔다 오고 했어요. 한 달에 한 번이 그렇게 자주가 아니잖아요. 30일에 한 번인 거잖아요. 그러다 동네 사람들 부추겨서 다 같이 애들 맡기고 볼링 치러가자 한 적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남편한테 맡기는 게 불안해서 못하겠다는 거예요. 아니 그래서 내가 남편도 아빠인데 아빠가 애를 굶기겠냐, 애를 다치게 하겠냐’, 그러면서 한 번 가보자.’ 이래가지고 가서 저녁 때 볼링치고 술 마시고 나이트클럽 갔다가 새벽 두시에 들어온 적이 있는데. 집에 돌아오니까 애아빠가 집을 싹 치우고 애들 재우고 쇼파에 혼자 앉아 있더라구요. 덩그러니. 내가 술이 약간 취해서 들어갔더니, “그래도 열두시에는 들어 와야 되는 거 아니냐.” 라고 하면서 내가 맨날 술 마시고 늦게 왔을 때 이런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었겠구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다행이었죠.

나눔 : 싸우기도 엄청 싸우셨어요.

 

종숙 : 그 전에 많이 싸웠죠. 조금만 뭐 해도 싸우고. 그래도 시댁과의 갈등은 주로 남편이 막아줬어요. 지금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런데 시아버지 계셨을 때는 시아버지가 진짜 막강한 권력이었거든요. 가부장제가 진짜 심한 경상도라.

 

나눔 : 저희 집은 엄마랑 아빠랑 저랑 오빠가 있거든요. 그런데 오빠는 되게 내성적이고 저는 엄청 활달한 아이여서, 부모님은 저를 그냥 내버려 두는 스타일로 키우셨고 제가 뭘 하고 다니든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이 관계들에서는 트러블이나 불평등을 느낀 적은 없는데,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빠는, 아버지가 첫째고 첫째의 큰아들이니깐 중요한 정자잖아요. 아니, 정자가 아니라 존재잖아요. (웃음)

 

그러니까 오빠한테만 용돈을 더 주고 저는 안 주려고 하고 그랬는데, 엄마가 워낙 이런 식으로 저희를 키우다 보니까 저도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요구하고. 왜 나는 안주냐 싸우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오빠보다는 제가 할아버지 할머니랑 친해서 친밀함으로 불평등을 극복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는 그냥 남자라는 이유로 당연히 얻었던 것들을 저는 그만큼 감정노동을 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거잖아요. 불평등하다고 생각해요.

 

Q. 오빠는 나눔의 한국여성의전화 활동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눔 : 제가 활동 시작했을 때 오빠랑 같이 살았거든요. 사실 엄마는 잘 모르지만 그 때 되게 많이 싸웠어요. 오빠는 여성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건 맞지만 자기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정도 수준의 남성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혈연가족이 중요하다고 한국 사회는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엄마를 사랑하지만, 저한테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빠랑 내가 어느 순간에는 의지하겠지만, 삶을 매 순간 함께할 것도 아니고, 사람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데 에너지를 많이 써야지 불필요한데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굳이 설득하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게 됐어요.

 

Q. 우리 아버지 우리 오빠는 그래도 좀 한남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눔 : , 그렇지 않아요. 그냥 한남입니다! 한남이에요 그냥. 근데 되게 좋은 게 엄마랑 저랑 가치관이 비슷하니까. 둘 다 페미니스트니까. 저희를 못 이겨요.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고 응, , 이러고 말지. 대들지 않아요. (웃음)

Talk. 페미니스트 모녀가 말하다 연애문화

Q. 데이트 폭력과 클럽 강간문화 등의 현주소 안에서 생각해봤을 때 각자 어떤 연애와 연애문화를 거쳐왔는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어떤 연애를 하는지, 혹은 하지 않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종숙 : 우리 시대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남녀는 다른 반으로 배정되고, 여중 여고를 거치면서 여고 졸업식 딱 미팅부터 했어요. 그게 제일 갈망이었던 거지, 여고 여중을 나오면서. 그러면서 대학 내내는 연애는 필수다 이러면서 미팅 열심히 하고 그런 문화에 살았는데. 그러다가 졸업하고 나서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회식문화가 회식 후에 나이트클럽을 가는 문화였어요. 나이트를 가면 옛날에 디스코 타임이 한 서너 번 있다가 블루스타임 있다가

 

중헌 : 우리 어머니 나이트 많이 가셨네.

 

나눔 : 저도 몰랐어요.

 

종숙 : 그때 문화가 그랬어요. 요즘 노래방 가듯이 그때는 그랬어요. 블루스타임 때 여직원들은 도망가고 남직원들은 잡아가지고 한 번 추자. 이러면서 자기 마음대로 성추행 같은 것도 하고.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도망가지 않으면 잡혔어요. 연애할 때도 보면 대학 쌍쌍파티 이런 거 할 때

 

나눔 : 쌍쌍파티가 뭐죠?

 

종숙: 축제. 축제. 대학축제 때 쌍쌍파티가 있었지. 자기 애인 데리고 와서 광장에 모이는 거. 그럴 때 항상 동기들끼리 나이트를 가요. 좋은 기회다 이러면서 블루스를 추는 거야. 그 때는 그런 것을 그냥 문화거니 하고 지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슬아슬한 지뢰밭을 건너왔다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러면서 장미여관 봉숙이 그 가사가 공감이 많이 됐어요

(가사 : 오빠 술 다 깨면 집에다 태워줄게 저기서 술만 깨고 가자 딱 30분만 쉬었다 가자)

 

이게 진짜 공감 가서 우리 시대 사람들이 재밌어 하고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이게 보면 딱 남자들의 속마음이고, 한 번 자보겠다는 거잖아요. 가사 내용이. 다른 의도는 없이 한 번 자보겠다, 그거에만 꽂혀있는 거고. 그런데 남자 말을 그대로만 듣고 여관에 따라갔다가는 뭐 너도 한 번 할 마음이 있어서 따라온 거 아니냐, 암묵적인 동의 아니냐, 이러면서 강간이 아니라고 합리화시킬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는 거죠.

근데 그 가사를 사람들은 재밌어하고. 굉장한 인기였잖아요, 장미여관. 그런 문화 속에 살았던 거죠. 남편하고 보면서도 엄청 웃는 게 똑같이 그랬어 우리도.

 

나눔 : 레퍼토리 너무 똑같죠. 지금도 이게 통용되고,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 엄마와 딸의 가부장제 부시기 2탄은 연애 이야기, 중년 여성과 20대 여성이 겪는 성차별 이야기 등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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