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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말로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성폭력 피해 생존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한국여성의전화 14기 전문상담원교육생들의 숙박교육

by kwhotline 2011. 7. 20.

첫 대사는 상담가의 “어떤 일로 오셨어요?” 대답으로 “말로는 도저히 못하겠어요.”가 나왔다. 이에 몇몇은 말로 안하면 어떡하느냐 했지만 생존자였던 교육생은 정말 그 상황에 가면 말로 하기가 쉽지 않아서 오히려 그 대사가 나오는 게 현실적이고, 상담가가 말로 해야 도움도 얻고 치유를 얻을 수 있다고 다독여 주어야 하며 끊임없는 지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지난 7월 8일 9일 양일간 불광동 팀비전센터에서 한국여성의전화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생들의 숙박 교육에서 역할극을 준비하던 한 모둠의 준비과정이다.

역할극/영화감상/뇌구조 talk로 이루어진 다채로운 교육 Program

<뇌그림을 가지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교육생들 >

성폭력 상담 교육은 1년에 한 번씩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하는 교육으로써 10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면 성폭력 전화 상담원으로 활동할 수 자격이 주어진다. 이 100시간에 교육 안에 포함된 것이 숙박교육이다. 
첫 순서는 <몸 up 마음 up>, 교육생들이 뇌구조그림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고민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20대~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교육생들에게서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숙박교육을 오면서 집에 있는 자녀와 남편에 대한 걱정이나, 애완동물에 대한 걱정, 즐거운 술 이야기와 자꾸만 다짐하지만 실천이 힘든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딸에게 지금까지 "너는 여자라서~" 라고 말하고 있었던 생활 속에 있었지만 눈치 채지 못했던 여성주의에 대한 이야기들도 튀어나왔다.

 

<교육생들이 직접 그리고 발표한 뇌그림, 아름답게 꾸며진 것도 있다.>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어디까지가 생존자이고, 어떻게 바라보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까?

<조세영 감독의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를 보고있는 교육생들>

이어진 시간에서는 영화 감상이 이어졌다.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는 성폭력 피해 생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성폭력 피해 생존 여성들의 모임인 ‘작은말하기’에 참여할 수 있는 범주를 정하는 과정과 생존 여성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영화였다. 감상 뒤 막간의 토론시간에는 성폭력이 여성들의 잘못이나 일부의 일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제라는 걸 알리려면 드러내놓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과연 그게 언제나 가능할지와, 중년여성들에겐 보수적인 교육의 영향으로 말하기 더 힘들다며 결국은 이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말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얘기들이 오고 갔다. 

영화 안에서 주된 주인공 중에 한명인 메이는 씩씩하고 용감하게 자신의 피해사실을 당당히 얘기하고 인터뷰에도 응했지만, 결국 재판과정에서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합의가 되버리자 무너져버리고 만다. 이런 메이를 상담한다면 과연 교육생들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는지를 질문해 보았다.

교육생들은 공통적으로 “네 옆에 있다.” 혹은 “많이 힘들겠다.” 라는 식으로 먼저 지지와 공감을 표현해주는 것을 우선으로 꼽았다. 그리고 극복해나가는 중에 부딪힌 것이 더 힘들어 보이겠지만 더 희망적인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심어주는 상담을 진행하겠다고 했고, 끝없이 자매애로 함께해 줄 여성들 그리고 여성의 전화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상담하겠다고 대답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성폭력 생존자와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지금처럼 당당하게>를 힘차게 부르고 나서 여성의 전화 공익광고가 이어졌다. 여성의 전화가  가정폭력을 세상에 알린 이야기와, 여성주의 상담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줄지 않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도 잠시 비췄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여성의 전화의 활동이 필요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성의전화 활동에 동참하자고 했다. 필리핀에서는 여성폭력을 지원하는 단체 활동가가 가해자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여성폭력을 지원하는 단체 활동가 얼마나 위험한데 그럼에도 그들이 활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니 “ Way of life!"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함께 한 우리 모두도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Way of life!" 


<다같이 부르는 '지금처럼 당당하게'>

그리고 대망의 역할극 시간! 모둠을 4모둠으로 나누어서 성폭력 상담 사례를 가지고 5분 정도의 역할극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한 모둠에서는 놀랍게도 역할극 사례와  비슷한 경험을 한 교육생도 있었다. 다시 한 번 성폭력이 이 사회에 얼마나 만연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른 모둠은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상담을 요청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이유가 뭔지 주변상황을 다 점검하고 어떤 방식으로 상담해야할지 그 상담하는 과정을 극에 담으려 하고 있었다.

또 다른 모둠은 상담가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내담자가 생각지도 않았던 법적 효력이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상담원이 신뢰를 얻고 내담자에게 용기를 주는 과정을 극에 담으로 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담자가 어느 정도로 처벌하고 싶은지 등등 내담자를 고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역할극을 준비중이 교육생들>

교육생들은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공감하고, 영화를 보고 느끼고, 실제 사례를 역할극으로써 간접 체험하며 한층 더 여성주의 상담원로서의 면모를 갖춰 갔다. 교육생 중의 몇몇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였는데 아무데서도 얘기하지 못하고 모둠으로 모였을 때 겨우 얘기하고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역할극을 발표 후에 뒤풀이가 이어졌고, 다음 날은 전쟁과 여성인권에 대한 주제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모둠으로 수요시위에 들고 갈 피켓작업 및 <Dancing Queen>을 개사하고 율동을 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긴 장마로 굵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13일, 978차 정기 수요시위에 참가하여 준비한 퍼포먼스 공연과 자유발언으로 함께 했다. 다시는 전쟁에 의한 여성들에 대한 폭력이 없어야 함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이라고 하니 좀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일거라 생각했다.그런데 다들 밝으시고 다른분야에서 상담을 하던, 가정주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학위 중에 교육을 받는 교육생들 등 다양한 분들이 서로 밝게 이야기를 나누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다들 교육을 받으며 성폭력에 대해 간과하던 부분까지 더 자세히 알게되고 자신의 생활 속에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던 일들이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고 있었다는 점에 놀라며, 성폭력 생존자를 지지하고 어떤식으로 상담을 할지 고민하던 모습을 보니, 내담자들도 이 열정의 영향으로 마음의상처가 조금씩이라도 회복될거라 믿는다.

한국여성의전화 14기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은 이달 22일까지 진행되며 교육을 마친 교육생들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전화 상담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고갱이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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