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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상상을 나누다

by kwhotline 2011. 6. 30.

선배 활동가와의 대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상상을 나누다

-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 신하영옥

여성의전화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시작을 학생운동에서 출발하였지만 아주 열렬한, 혹은 철저한 학생운동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손앞에 잡히는 관계들 속에서 내 개인이 느끼는 갑갑함과 일상의 문제가 사회구조적인 문제, 즉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설득하는 선배를 통해 조금씩 운동을 접해가고, 운동권의 관계와 고민 속으로 흡수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방법, 상상하는 소수들의 끈끈한 연대와 희망 등을 체득해갔습니다.

그러한 경험은 이후에 제가 다시 잠시 떠나있던 운동으로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그리움이자 추억이 되었고, 운동이 아닌 삶을 살던 저에게 지역에서 여성운동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그 자체로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앞뒤 생각지 않고 바로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의전화 활동이 주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여성의전화는 제가 살아있고 뭔가 사회적인 존재로 서있을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가정이란 여성에게 때로 고립된 섬이자 체바퀴 같은 일상은 무력함에 빠지게 할 수도 있음을 경험한 저로서는 여성의전화 활동을 통해서 저란 인간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사회생활, 즉 돈을 벌기위한 노동이 주는 희망 없음,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도 경험했기에 이러한 노동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꿈을 꾸고 실천할 수 있는 장으로서 여성의전화는 제게 일터가 아닌 일터이고, 가정이 아닌 가정이면서 내가 아닌 나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저는 여성의전화 활동을 통해 나자신을 성찰하고 변화하며, 더 많은 나를 만나고 외로움을 치유하며, 분노를 소멸시키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나 자신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 확장해가는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여성의전화가 여성운동을 하는 단체였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운동이란 모름지기 새로움을 꿈꾸고, 운동하는 사람들 간의 관계조차 새롭게 꿈꾸고 실천할 수 있기에 사람을 가슴 뛰게 할 뿐만 아니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운동하는 단체의 매력이자 의미이고 여성인 제게 여성운동은 더욱 친밀한 의미와 매력일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선생님께서 이번에 쓰셨다는 논문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내용을 짧게 요약해서 설명 부탁드려요~

지역여성운동의 담론 성격에 대한 분석입니다. 여성의전화의 지역여성운동을 중심으로 지역여성운동을 표현하는 언설들 혹은 말들 혹은 개념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분석하는 것이고 그 목적은 전개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지역여성운동이 뭔지를 밝혀내는 것에 있었습니다. 제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여성의전화의 지역여성운동의 담론들 혹은 개념들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먼저, 제1담론으로서 의식화/조직화/세력화 담론, 둘째, 제2담론으로 생활정치/참여자치 담론, 셋째, 제3의 담론으로 풀뿌리조직화담론 입니다. 그리고 그 3가지 담론의 중심적인 개념은 <주체>와 <정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안의 주체형성>과 <대안의 정치>형성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의전화가 새로운 여성주의 사회를 형성해갈 수 있는 <새로운 여성들> 혹은<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과정을 중요시 한다는 것(의식화, 조직화, 세력화, 풀뿌리조직화), 그리고 새로운 정치의 개념과 내용을 만드는 것(참여자치, 생활정치)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 분야에 눈을 뜨게 한 계기가 있었나요?

지역 여성의전화 활동경험 10년을 접으면서, 지역과 국제가 제 관심의 화두였습니다. 지역은 지리적 공간이라기보다 제게는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 사람들의 생각을 만나고, 상상을 만나고 그 상상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모종의 꿈을 설계하는 곳입니다. 즉, 사람이 곧 지역이고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운동/활동의 현장이라는 의미입니다. 호흡과 호흡을 느끼고, 눈을 읽고 표정의 변화를 보는 만남이 있는 곳에서 꿈과 상상을 나누고 변화를 함께 호흡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렇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상상을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직접 실천해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연대, 즉 국제적인 여성운동/활동을 지역여성운동과 연결짓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주체들(여성들 및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아지면 세상은 건강하게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벌써 작은 단위이지만 몇몇 지역에서는 새로운 마을공동체, 일터공동체 등을 통해 마을과 일터를 바꾸어내는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운동은 희망입니다. 이러한 작은 공동체들이 많이 생겨나고 이 공동체와 공동체의 가치들이 국제연대를 이루어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여성운동은 그 과정에 여성들이 지역공동체와 국제연대의 주체로 나서게 되고 여성들의 경험과 가치들이 새로운 세상의 주요한 가치와 질서로 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인터뷰에 응하게 된 배경이자, 저의 활동의 소신입니다.

여성의전화 활동가들 중에는 공부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활동하면서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느 순간 제가 낡아졌고 닳아져가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를 기름치고 닦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여성활동가들에게 주는 장학금 혜택이 그것이었습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꿈꾸던 제게 공부는 새로운 눈을 틔워줬습니다. 물론 힘이 안든 건 아니지만, 새로운 동료들과 새로운 지식은 그 자체로 삶을 충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저의 눈으로, 여성주의에 근접한 눈으로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세상의 사건들과 흐름을 보면서 관통하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삶과 사회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합니다. 자유란 자기의 이유로 걸어가는 것이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자유란 자기의 이유, 관점, 철학을 가질 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제게 다른 자유로움을 줍니다.

여성의전화 회원들에게, 혹은 활동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며?

다만, 꿈이 뭔지를 찾고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한 상상을 하시라는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여전에서, 학업, 개인적으로 ...)

지속적으로 꿈을 찾아나가는 겁니다. 40하고도 중반을 넘은 요즘에서야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알아나가는 것 같습니다. 여성의전화의 시작이 일에 대한 불같은 열정과 조급함-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갈급함-,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일을 놓칠 것 같은 불안함 보다는 언제고 어느 때고 무엇이건 시작할 수 있을듯합니다.

맑은 정신과 맑은 몸으로 맑은 일상을 살아내는 것, 그럼으로써 평온한 느낌으로 저 자신과 남들과 사물을 대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여성주의가 바라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살아낼 수 있는 사람, 즉 저 자신 스스로 대안의 주체로 만들어져 갔으면 합니다. 그게 어떤 사람인지는 살아보면 알아지겠지요.

꿈과 상상을 이야기하는 신하영옥 선생님을 보며 박제된 세상에 필요한 순수한 활동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있다는 말에는 멋쩍게 웃으며 부끄럽다고 하셨지만 내면의 열정과 신념이 표면으로 드러나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하영옥 선생님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다 많은 꿈들이 생겨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꿈을 나이 들어서도 계속 꿀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 안양여성의전화  편집부

★ 이 글은 안양여성의전화 123호 소식지 ‘여자, 날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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