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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by kwhotline 2016. 2. 17.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지난 5,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20대를 위한 실용연애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를 진행했다. ‘밀당잘하는 법과 같은 연애의 심리나 기술을 가르쳐준다고 생각하면 오산! 2009년부터 진행해 온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연애강좌는 사랑과 연애관계 속에 들어 있는 사회적 권력과 문화적 시선, 차별적 규범과 폭력을 살펴보며, 정형화된 방식이 아닌 다른연애를 상상하게 하는 강좌이다. 올해는 신자유주의’, ‘연애각본’, ‘외모관리’, ‘성적자기결정권’, ‘데이트폭력을 키워드로, 516일부터 63일까지 총 4강으로 진행되었다. 안다는 것의 힘과 실천의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시간! 그 뜨거웠던 현장을 만나보자.






[ 1관계의 제도화를 넘어 사랑하기 : 관계 중독과 관계 빈곤사이에 선 사랑의 낭만성, 실망, 아픔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 연애의 방식이 너무나 정형화 되어 있고 이것 자체가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의 파트너가 사회가 만든 정형화된 관계의 상에 매우 집착 하는데, 나는 그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제도적인 틀에 의해 내가 얼마나 인지노동을 하고 있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감당할 의무가 나에게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 내가 욕망하고 있는 관계의 풍부함에서 그 관계의 성격이 어떤 것이고, 그러한 나의 욕망은 어떤 것인지 반성해보게 되었다. ‘관계에서 존중받고 있는가?’ 라는 그 날의 질문을 계속 던지는 나 자신이 되길 바란다.”


강의 내내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닌 힐링을 받는 기분이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술이나 불규칙한 생활 등으로 인해 급격히 살이 찐 후 다이어트와 요요를 반복하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던 내게 이 강연은 분명 힐링이었다. 학점, 연애, 스펙 등에 치이면서 남들은 다들 잘 해내는데 왜 나만 이렇게 벅차고 힘들까라는 고민을 하면서도 오히려 점점 무기력해지는 나를 치유해주는 시간이었다.이 강의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불확실성이라는 시대의 흐름이 더 이상 아름다움의 범주가 아닌 개인을 지배하는 공포의 영역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아니라 평생 함께할 것이라는 공포가 나를,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벼랑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이 불확실성 안에서 서로 유대하지 못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많은 공감이 되었다. 지금 이 시대를 접속의 시대라고 칭하며 이 접속에서 외로움과 고독이 발생하기 때문에 접속이 아닌 결속을 해야 한다는 내용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공감했다. “밥 먹자.”, “언제 한 번 만나자.”라고 하지만 정작 말뿐이며 만난다고 해도 서로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요즘이니까. 옆에 누군가 있어도 외로운 것이 이 시대니까.


-윤서



[ 2강 몸의 제자리 찾기 : 외모, 자기표현과 대상화 사이.


남성이 외모 평가를 하는 주체였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결국 중요한건 나 자신이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추고, 가치 있어 하는가라는 걸 느꼈다.“


연애 과정에서 소통과 조율이 중요한데, 일대일 연애가 갖는 배타적인 점들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 혹은 특수성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항상 외모관리의 주범과 기준이 남자친구였는데, 결국에 타인의 인정은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것이 아니고, 끝은 찾으려고 할수록 나 자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존감과 자기애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강의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참으로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 신화는 늘 우리에게 얘기한다.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다시 말하면 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열심히 투자해서 상품가치를 높이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 명제를 실현하고자 할 때 나는 자주 벽에 부딪히고 만다. 이번 강의의 주제였던 외모 꾸미기만 봐도 그렇다. 신자유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대로 나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특징을 가져야 하는데 동시에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매우 일률적이고 협소하다. 말 그대로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거기에 맞추라는 식이다.


자기만족을 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이 정말 와 닿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굴하지 않고 나만의 매력으로 승부하겠어라고 늘 생각해오고 그렇게 살다가도 막상 이성애 관계에서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그러지 못하는 게 나의 현실이었다. 나에게 의미 있는 타인한테 인정받는 것이 결국은 자기만족의 충분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족하게나마 오늘 강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은 나를 어떤 것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을 나의 중요한 타자로 삼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나의 존재를 외모로 평가하고, 그로 인해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을 계속해서 중요한 타인으로 곁에 둘 것인가 하는 것은 최소한 내 선택범위 안에 있었다. 단지 연애를 지속하고 싶다는 이유로 나는 정작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애를 하는 이유는 평등, 소통, 이해, 인정, 자존감, 자신감 등을 추구하기 위함인데 자기만족의 허울을 쓴 자기관리는 결국 자기혐오로 이어질 뿐이었다.


1:99로 이루어진, 1등 이외에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고 1등 또한 언제 자리를 뺏길지 모르는 이 경주에서 나는 차라리 트랙을 벗어나 천천히 산책하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애초에 그 대회에 뛰어들지 않으면 1등도 99등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와 함께 걸어 줄 사람을 찾아 곁에 두면 그만이다. 나부터 외모관리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선택하고 꾸준히 이 자세를 이어 나간다면 곧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오로르



[ 3강 성적 자기 결정권을 넘어서 : 성적 자기 결정권은 나와 너사이에 있다.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 단어별로 끊어서 설명해 주신 것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내가 행동하는 것과 알고 있는 것 사이에 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나니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성이 잡혔다.”


내가 yes라고 말한다고 성적자기결정권이 잘 발휘되는 건지 찝찝했는데 고민이 잘 해결되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거나 느끼던 관계 속에서의 유쾌하지 않았던 감정과 기억들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오랜 시간을 분노하고 슬퍼했다. 그게 다 내 탓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강의가 너무 좋았다.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저는 9살 연상인 남자사람이랑 연애중이에요. 일부러 오빠라는 말 안 쓰기도 하고 애인이랑 평등한 관계가 되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그래도 내심 내가 더 어리고 소위 나는 얼굴도 좀 되는 그런 사람인데 너무 하는 거 아냐? 챙김 받고 싶다. 나도 명품 선물 받고 싶다. 누구는 뭐 받았다는데 데이트 코스도 한 번쯤은 직접 짜 와서 리드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의 연애는 낭만이 없어.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강의가 저한테는 크리티컬 히트 빵빵 맞은 것처럼 찔리는 그런 시간이었네요. 제 연애에 대해 성찰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우리의 관계는 여성적 자원과 남성적 자원을 교환하는 그런 관계를 지향해서는 안 되는 건데.. 에고 찔려라.. 크으 왜 이성애 연애는 약간 불균형해야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연애각본 자체가 불평등하게 짜여 있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로맨스 따위라 치부하고 던져버리기엔 그게 참 커서... 강의 한 번 들었다고 아 교육을 받았으니 앞으로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위하여 실천해야지! 라며 쉽게 저녁 메뉴 선택하듯 바꿀 수 있는 그런 건 아닐 테죠. 들은 내용 전부 다 소화는 못하더라도 내가 언젠가는 바뀔 수 있도록 안에서 뭔가 차곡차곡 쌓이길 바라고 노력할 거예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계속 더 많이 듣고 공부하고 생각해서 삶이 여성주의로 물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라



[4F언니의 상담실. ‘레드라이트를 켜줘’] : 데이트폭력. 친밀한, 그러나 치명적인.


데이트폭력 피해자로서 자신을 규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드문 일이고 그 일이 일어난 것도 내 탓이라고 생각해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웠는데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 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덕에 큰 위로를 받았다. 좋은 분들을 만나서 행복하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들을 보면서 불편한(?) 안심과 이런 일들이 왜 이렇게 흔할 수밖에 없는 걸까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때문에 앞으로 만나게 될 인연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런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기쁘다. 마지막까지 남는 말은 '변화를 수용하는 관계'에 대한 고민인데, 강의 내내 연애각본에 나름 충실했던 나를 반성하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이 고민을 일상적 실천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에 대해 더 많은 성찰을 하고 싶다.”


사랑과 관계 맺기에 대한 나름의 치열한 고민의 답을 찾고자 발을 디딘 <20대를 위한 실용연애 특강>의 마지막 시간은 요즘 20대 이성연애 지침서로 급부상 중인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의 일부를 차용한 F언니의 상담실 레드라이트를 켜줘로 진행됐다. ‘레드라이트를 켜줘는 강의 참가자가 익명으로 보내준 연애관계 안에서 겪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하지만 흔한갈등과 고민을 담은 사연으로, 특히 데이트 성폭력이란 주제로 앞서 다루었던 성역할고정관념, 성적자기결정권, 몸 이미지, 연애 안에서의 성별자원의 교환과 존재론적 불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개인이 인지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데이트폭력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나 역시 친밀한 타자와의 경험에 폭력이라 이름붙이는 것에 여전히 주저하고 주관적 감정과 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 이후 만나는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배움을 통해 내게 조금 힘이 생겼을 때, 이것이 자기합리화가 되어 벽을 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는 불행을 겪지 않기 위해 다독거리는 일도 잊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혼자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싸움이어야 했다. 사랑과 폭력, 사랑과 집착, 폭력과 장난, 이라는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사연속의 연애장면을 단순히 제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없던 것은 이렇듯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TV나 영화에서 보는 로맨틱한 연애보다 달달함 따위 쫙 뺀 해도 불안 안 해도 불안한 날것의 연애 안에 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연애는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며, 20대 사이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으로 까지 등극했지만, 그 누구도 연애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세계와의 만남과 이별 그로인한 변화 앞에 내가 어떤 나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너무나 열심히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 외모 가꾸기와 물질 교환 이외의 것 이를테면, 나와 너의 시간과 주변 관계들을 관리하는 것, 성관계 안에서 나의 원함을 말하고 너의 원함을 듣는 것, 임신에 대한 불안함을 파트너와 함께 나누고 준비하는 것, 치사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데이트 하는 것, 이별 앞에 비겁하고 찌질해지지 않는 것에는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서툰 우리들의 모습에서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을 무겁게 실감하게 했다.


덕분에 실용연애특강이라는 제목에 낚여서 왔다는 우리 수강생들은 마지막 수료를 하면서 어떻게 연애할 것인가에 명쾌한 답이 아닌 그보다 더 복잡하고 답답한 고민들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나 혼자가 아닌 내 파트너와 함께 나누고 이러한 성찰을 나눌 수 있는 타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친밀한 관계 안에서의 언어를 개발하고 창의적인 관계 맺기에 대한 상상력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여성주의라 쓰고 인본주의라 읽고 싶은 페미니스트로서, 4강을 통해 까발려지는 이성애 연애 안에서의 불평등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지만, 최근까지 몸담았던 내 지난 연애 안에서 나 역시 충실히 여성성을 실천하고, 다름 앞에 이기적이었던 자신을 발견하곤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하여 앞으로 만날 파트너와 우리의 사랑이 구속이 아닌 참여가 될 수 있는 수칙들을 강의를 듣는 동안 생각날 때마다 하나하나 적으며 이전과는 다른 연애를 위한 한 발짝을 내딛었다.


앞선 3강이 연애와 사랑을 포장하고 있던 낭만성과 그간 까칠해 보일까 말 못했던 연애각본을 공개적으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답답했던 마음을 다소 살벌하게 긁어주었다면 마지막엔 자 이쯤 했으니 네 생각을 말해줘하며 내 연애를 대놓고 성찰하는 판을 벌려주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에서 나 혼자 들은 것이 미안할 정도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소감을 나누며 자신의 파트너와 배운 내용들을 함께 공유하겠다며 실천의 의지를 불태웠던 한 수강생을 떠올리며, 앞으로 이런 강의들이 대학교 필독 도서만큼이나 중요하고, 자발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을 함께 지지고 볶고 하는 쾌감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 이후 이름값 하기 위한 후속모임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또래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모임으로 승승장구 했으면 좋겠다


-다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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