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한국여성의전화 로스쿨 실무수습을 마치며

by kwhotline 2016. 2. 17.

한국여성의전화 로스쿨 실무수습을 마치며


문선경|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인권법학회 지인을 통해 한국여성의전화를 알게 된 것은 3. 늘 적극적이고 인권감수성이 풍부한 친구들의 소개로 나 역시 여성인권의 현장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624일부터 77일까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약 2주간의 실무수습이 시작되었다.


실무수습 처음으로 한 일은 가정폭력 피해자 여성 2분의 이혼소송을 위한 진술서를 작성해드리는 것이었다. 처음엔 실제 피해자분들을 직접 대면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칫 3자의 무딘 감성으로 피해자분들의 상처를 건드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 상담가 선생님의 친절한 지도와 설명으로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 여성분들의 심리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내담이 진행되는 동안 그분들 역시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이 느껴져 감사함을 느꼈다.


로스쿨생이 된 후 처음으로 법정에도 가 보았다. 처음 보는 법정의 풍경, 판사와 피고인 및 참관인들의 얽혀있는 시선들이 색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피고인은 무고죄 유죄판결을 선고받았고, 우리 일행은 무고죄의 불합리한 측면과 관련하여 짧지 않은 시간동안 토론을 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입증책임이 과중할 뿐 아니라, 그것이 오히려 무고죄 가해자에게 불리한 증거로 역할용 되는 구조가 다소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시민운동가, 변호사님들의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무고죄 기소 예외조항 마련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1인 시위를 했던 것도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전에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에서 잠시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실제로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려는 주체가 되어 짧은 순간이나마 행인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묘한 책임의식이 생겼다. 무고죄와 관련하여 법무법인 지평과 공익소송을 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해외 판례와 논물을 간단히 리서치하는 작업도 수행했다. 외국판례문구와 형식에 익숙하지 않았고, 논문주제 역시 무고죄와 딱 들어맞는 것을 찾기 어려워 리서치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영미권의 강간피해자 보호법(Rape Sheild Law)’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작은 수확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많지 않은 구성원들로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알차게 일궈나가는 곳이었다. 작게는 피켓문구를 만들고 인권을 위한 연극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여성인권영화제, 쉼터운영, 상담, 공익소송, 입법까지 망라하는, 그야말로 저력 있는 단체였다. 이곳에 계신 선생님들 한분한분 모두 특전사처럼 여성인권의 신장을 위해 애쓰고 계셨다. 그 열정을, 상냥하고 감사한 웃음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한국여성의전화 파이팅!








이채형|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



예로부터 남편이 도박, 바람, 폭력 중 한 가지를 한 번이라도 저지른다면 바로 이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그 남편의 개인적 특성의 발현으로서 가족관계에서 고착화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이해했었다. 결혼을 해 보지 않은 내게는 일종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이 생각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에서의 첫날은 많은 의문을 던져주었다. 절반가량의 대한민국 가정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은 분명 가정폭력이 어떤 개별 가정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임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의 교육을 통해 가정폭력은 가부장적인 사고로 일어나는 집단적 문제임을 인식하게 된 후, 당장 미래의 나 자신부터도 이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느끼고는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내 앞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 그 고통을 견뎌 오신 두 분의 내담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고 계셨다.


나는 주로 쉼터에 와 계시는 가정폭력 피해자 두 분의 이혼 진술서 작성을 돕는 일을 하였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갓 한 학기를 보낸 나에게는 막중한 부담감을 주는 임무였다. 내담자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약자의 시선에서 진행되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경제적으로 방치당하고, 남편의 외도를 홀로 견뎌야 하는 아내의 모습은 참으로 약한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약하다고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대편의 강한자는 자신의 힘으로 강해진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사고, 그리고 가정폭력을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개별 가정의 문제로 인식하는 사회 통념으로 인해 약한자신의 아내를 폭행할 명분을 얻은 것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닌 것에 기대어 괴물이 되는 것과 그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느끼게 되면서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편견이나 사회적 통념이 개입되면 놀랍게도 그저 누가 잘못했겠지.’와 같이 결론이 쉽게 나버리는 것에 대해 새삼스럽게 경계를 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깨어있는사람들의 강인함과 연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이혼을 전쟁이라고 묘사하는 활동가들은 삶이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의해 전쟁터가 될 수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에 대해 함께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의 실무수습은 우리 하나하나의 삶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경험이었다. 또한 그 함께함은 한 사회 속의 구성원이라면 너무도 사로잡히기 쉬운 편견 속에서부터 탈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