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신고하지 마십시오. 성폭력을 당한 것 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by kwhotline 2016. 2. 17.

신고하지 마십시오.

성폭력을 당한 것 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분별한 무고죄 적용,

침묵하는 성폭력 피해자, 멀어지는 성폭력 근절 -


고미경(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소장)



무고죄로 법정에서 구속되는 성폭력 피해자


20135A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가해자에 의해 성폭력피해를 당해 고소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검사는 피해 후 상당시간이 지났다, 진술의 일관성이 없다등을 이유로 A씨를 무고죄로 기소하였다. ‘성폭력피해자였던 A씨는 졸지에 무고의 피의자되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2014514, A씨는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무고죄 피고인이 되어 재판을 받았다. 판사는 강간죄는 매우 위중한 범죄이다.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음에도 무고한 사람을 고소하였기에 무고죄로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했다. A씨는 외국생활로 한국 상황을 잘 알지 못해 고소절차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몰랐고,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해야만 하는 모순된 현실을 알지 못했다. ‘의 정의를 믿고 용기를 내어 성폭력을 고소했던 피해자 A씨는 그 법에 의해 무고죄로 1심 재판을 받고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25개지부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단체들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성폭력사건의 본질과 특성을 간과한 채, 무분별하고 관행적으로 적용되는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무고죄 적용 문제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판결 다음날인 515,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32개 여성단체는 성폭력피해자의 무고죄 적용 법정구속 규탄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이 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단체의 활동가는 성폭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은 국가가 성폭력피해생존자에게 신고하고 고소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입 다물라고 자갈을 물리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라고 외쳤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내세요, 가해자를 처벌하고 다시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 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성폭력피해자는 왜 무고로 기소되나?


형법상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수사기관이나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하여 성립되는 범죄이다. 죄 없는 사람이 허위 고소에 의해 피해를 입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당연히 지켜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앞의 사례와 같이 성폭력피해로 고소한 건을 무고로 인지하고, 재판하는 것을 일반적인 무고사건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위험한 처사다. 실제 본회가 지원하고 있는 무고죄 피소 사건들의 기소 이유를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검찰 수사단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친밀한 관계에 있었거나 평소 아는 사이었을 때는 합의한 성관계꽃뱀으로, 피해자가 저항을 중단하거나 포기한 정황이 있을 때는 동의한 성관계, 적극적으로 피해사실을 주장하면 피해자답지 못한 것으로 피해자의 과거 이력이나 행실을 비난하며 보호받을 자격이 없는 피해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성폭력피해자 중 1.1%만 경찰에 도움 요청


성폭력에 대한 통념이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법에 호소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여성가족부의 2013년 전국성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27.1%의 여성이 성폭력피해상황에서 그냥 있었다고 응답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51.3%)’, ‘남이 알까봐 창피해서(40.7%)’를 들고 있다. 성폭력피해를 경험한 조사대상자 중 단 1.1%만이 경찰에 직접 도움을 요청하였다.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100명의 피해자 중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과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뚫은 단 한 명만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폭력 피해에 대한 신고조차 결단용기를 요하는 사회에서 성폭력범죄를 고소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넘지 못 하는 수사 과정을 경험하면서 그 1.1%의 피해자들은 다시금 불신과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


무고 다툼 속에 희석되는 성폭력 사건



누가 억울한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니냐?”

이 말은 A씨가 성폭력사건에 대한 검찰 대질신문 중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본인의 피해사실에 대해 충분히 진술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그녀는 심지어 가해자 앞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성폭력에 대한 수사 중, 피해자가 무고로 의심받거나 기소되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피해를 호소한 피해자가 자신이 성폭력피해자라는 것과 무고의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입증해야 하는 모순된 입장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 사건을 희석시킬뿐더러, 공식적인 절차인 고소를 통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피해자를 좌절하게 하고 무력화시키며, 결국 피해자 스스로 자신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침묵하게 만든다.


무고로 기소되어 본 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한 또 다른 성폭력피해자 B씨는 나는 성폭력은 범죄이고 신고하면 된다고 배워서 신고를 했는데, 가해자 처벌은커녕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성폭력을 당한 것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나는 이제 내 가족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더라도 절대 신고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법은 가해자의 편이고 나는 너무 고통스럽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사법은 범죄의 처벌 뿐 아니라, 범죄의 예방을 위해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성폭력 고소인에 대한 무고죄 적용은 위의 사례처럼 궁극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사법기능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간 성폭력 근절을 위한 사회적 노력과 성과를 후퇴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최협의설을 넘어서야


현행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은 폭행 또는 협박이다. 문제는 이 폭행과 협박의 정도를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으로, 즉 최협의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대법원의 판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강간죄에 있어서 폭행과 협박의 정도는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고 당시 행사한 유형력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면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간죄의 보호법익이 성적자기결정권이라고 한다면 강간죄의 성립 여부를 가해자에 의한 폭행과 협박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느 정도 있었는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한 성행위가 있었느냐라는 피해자 의사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성폭력은 다른 범죄와 달리 성폭력범죄사실이 인지되고 인정되는 과정자체에서부터 성차가 존재한다. 이에 각국에서는 통념이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세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영국 검찰청 수사지침은 일반적으로 강간 피해자에 대해 평소 행실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여러 건의 강간 피해자가 된 경우에 더욱 무고죄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강간 피해자는 외관상 약해보이는 경향이 있으므로 다른 사람에 비해 강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과거 강간 신고 사실은 현재 강간 신고 사실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자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미국의 성폭력피해자보호법(Rape Shield Law) 또한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과거 성관계 이력과 성향이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되는 것을 제한하고 있고, 과거 고소전력을 문제 삼는 것 또한 판례를 통해 금지하고 있다.


성폭력사건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수사재판과정의 문제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하게 무고죄의 적용을 받아 체포되고 구속되는 상황에서 사법정의의 실현은 기대할 수 없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무고 적용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서부터 법률상 성폭력에 대한 전향적 해석, 관련 법률의 개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2528754D58917F1B01D60A2405D04D58917F1B04061F2458754D58917F1B3874B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