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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무고에 걸리면 어떡하죠?”

by kwhotline 2016. 2. 23.

무고에 걸리면 어떡하죠?”

- 성폭력 피해자의 무고죄 재판을 지원하며

 

정은경|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치소라는 곳에 면회를 갔다. 함께 손을 잡고 끌어안고 토론을 하던 나의 첫 피해지원자. 그녀가 성폭력 고소 재판을 진행하던 중 무고죄로 재판정에서 바로 구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난 후 그녀를 본 순간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전문상담원의 역할로 그녀를 위로하고 상태를 살피라는 성폭력상담소 소장님의 부탁이 있었지만 면회시간 20분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나의 죄책감만 커지는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햇수로 5년째 상담 및 다양한 자원 활동을 하면서 소소한 보람을 느끼며, 일상을 유지하던 나에게는 더욱 말이다. 지난해 6월 성폭력상담소 소장님께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내일모레 대질심문을 받는 성폭력피해자가 신뢰인 동석을 요청해왔다며 오후 반나절 정도 시간이 되면 함께 해달라는 전화였다. 사명감과 의욕(?)을 넘어 현장에 함께 하고픈 욕심에 두려움을 떨치고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 이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앉아 피해자의 편이 되어 반나절을 보내며 수사현실을 경험하였다. 이후 다시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형사의 전화를 받고 경찰서에 가서 심문내용을 확인하고 피해자와 밥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과로와 겹친 스트레스로 몸이 아파 상담을 쉬게 되었고 그 일을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성폭력 재판을 진행하면서 너무 속상하고 우울해서 죽을 것 같다는 문자였다. 혼란스러웠다. ‘확실한 성폭력피해가 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 후 피해자가 두 건의 무고에 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뭔가 잘못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사가 '피해 후 상당시간이 지났다, 진술의 일관성이 업삳' 등의 이유로 그녀를 무고죄로 기소한 것이다. '성폭력피해자'였던 그녀가 졸지에 무고의 '피의자'가 되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3년 성폭력 관련법이 엄하게 개정되면서 무고죄를 강력 처벌한다는 법원의 발표가 있었고, 성폭력 피해자들이 무고죄의 누명을 쓰게 될까 두려워 고소를 주저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 신고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꽃뱀(?)에 엄정하게 대처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제 성폭력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는 상담실에서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성폭력사건이 분명함에도 무고에 걸리면 어떡하죠?”,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당황스러운 상담전화들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경찰과의 상담을 거쳐 고소를 결정했음에도 무고에 걸리게 되어 실형을 받을 처지에 놓인 성폭력무고죄사건도 속속 발생했다. 경찰의 판단을 믿고 고소했는데 검찰 측에서는 경찰은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단지 경찰이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일축하고 마는 것이다. 경찰의 말을 믿고 고소했다는 정황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별로 없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검찰 측의 입장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사권의 유무와는 별개로 최초로 만나는 공권력의 판단에 많은 의지를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들이 무고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안심하고 고소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공신력이 있는 기관- 가령 경찰 혹은 공인된 상담센터 등-에서 조언을 받아 피고인이 고소에 이르렀다면 그의 무고의 고의를 판단하는 데 있어 그 정황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폭력 범죄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 또한 이렇게 법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성범죄의 경우에는 무고죄와 관련, 법에 특별조항을 신설하는 등 강력한 입법 조치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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