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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거짓말투성이들의 삶

by kwhotline 2013. 8. 30.

거짓말 투성이들의 삶 

 10대 레즈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반 검열 두 번째 이야기 : OUT’ 을 보고 나서

 

 

 

 

 "새카만 밤 하늘에 별도 하나 없는 여기에 나 혼자 있는 것만 같아"

 

  호모포비아 사회에서 성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일은 아주 고통스럽고 험난하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는 10대 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들이 겪는 상처의 수준은 생각보다도 훨씬 심각하고 쓰라리다. 자신을 자해하면서도 너무나 화가 나서 신체의 아픔을 느낄 수가 없다고 말할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는 그들. 10대이자, 여성이자, 동성애자라는 소수자의 삼중고를 겪는 10대 레즈비언들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부정당하고 인권을 침해 받는다. 무수한 폭력 속에서 자기 긍정을 찾아나가는 세 명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바로 ‘이반 검열 두 번 째 이야기 : OUT’ 이다.

 

  제목이 Out인 이유는 Coming out과 Outing, Outsider라는 소제목들이 주인공인 세명의 삶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심한 처벌을 받았던 경험을 지닌 ‘천재’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하지만 천재를 변화시키려는 남자친구 곁에서 천재는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처음으로 사귄 여자 친구와 이별을 겪게 되는 ‘초이’는 학교에서 아웃팅을 당하게 되고, 자신을 미워하며 스스로에 대해 고민한다. ‘꼬마’는 평범한 모범생이자 이성애자인척 살아가지만, 사실은 아웃팅의 상처와 고독함을 간직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규정’되기를 강요받는 곤욕스러움에 놓여있다. 천재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레즈비언인 자신을 이상하게 여긴다. 남자친구를 사귀는 건‘동성애자’로 규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초이는 사랑했던 여자친구에 대해, 단지 우정은 아니었는지 계속 자신의 감정을 규정짓고자 한다. 꼬마 역시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한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성 정체성이 단순히 사랑의 영역에만 국한하여 작용하지 않고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이들 모두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또한 타인과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성애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탈정상의 탈을 써야만 하는 ‘노력’과 비정상으로의 ‘규정’을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하다.


  OUT에서는 세 주인공들이 셀프카메라 형식을 통해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펼친다. 여성주의 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비가시화되던 소수자 여성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펼치기때문에 안전한 시공간을 제공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 중요하다. 셀프 카메라 방식은 감독이 배우를 촬영하는 방식을 해체하고 공동체적인 협업을 함으로써 배우들이 이미지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주인공들은 영화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며,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이성애우월주의와 동성애혐오로 상처투성이가 된 10대 레즈비언들은 상처를 스스로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상처와 고통의 원인을 발견하게 된다. 감독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면서 주인공들은 점차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레즈비언 정체성과 레즈비언으로서의 자기 긍정성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주인공들이 보여지는 방식은 유리에 비친 모습이나, 가면을 쓴 모습, 혹은 얼굴이 아닌 몸의 일부 등에 그친다. 심지어 카메라 앵글은 나무와 같은 자연물을 비추곤 한다. 결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가 없다. 반쪽짜리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그들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일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은 늘 온전한 자신을 드러낼 수가 없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에게도, 의지하고 싶은 친구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마저 스스로를 숨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10대 성 소수자들은 이러한 일을 대부분 혼자서 감내해내야한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큰 외로움과 고통이 수반되고, 때로는 자기 혐오나 사회 부적응과 같은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그들에게 제대로 된 소통구가 되어줄 곳은 많지 않다. 학창 시절 크게 염원하던 두발 자유화나 교복의 자율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성인들은 별로 없다. 10대 성소수자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예전보다는 상담소와 같은 창구가 확대되고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과거를 겪었던 성인들은 더 큰 권리를 주장하는 와중에 10대들의 문제에는 소홀해지기 쉽다. 하지만 건강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10대 성 소수자들의 문제를 그들이 스스로 극복해나갈 사안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


  이전에 한 커뮤니티에서 ‘왜 성 소수자 중에서는 비정상적으로 하고 다니는 애들이 많은 것이냐.’는 질문을 본 적 있다. 실제로 학교를 자퇴하거나 밝은 염색 머리를 하고 피어싱을 많이 한 레즈비언들은 꽤 많다. 하지만 그들을 먼저 비정상적으로 규정짓고 바라보았던 건 누구였는지, 더불어 애초에 정상적인 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답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찾아나가 준다면, OUT의 주인공과 같은 친구들이 ‘거짓말 투성이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여성의전화 대학생기자단 3기 신영민

(blizzard2424@nva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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