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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보살핌의 공공화를 꿈꾼다

by kwhotline 2012. 5. 25.

본 기사는 은평시민신문 재53호에 다향(한국여성의전화 상담회원)이 기고한 기사 입니다.

 

 

 

보살핌의 공공화를 꿈꾼다 

 

지난 4월 한국여성의전화 주최 <여성주의 강좌 춘하추動>이 여세대학교 나임윤경 교수의 <모성, 공공성, 사교육> 강연으로 막을 열었다. 한국 사회에서 모성이 자녀 교육의 성과와 맞물려 설명되는 현실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으며 이것에 대한 대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자녀 성적으로 평가 받는 모성, 그리고 부인성

최근 우리 사회에서 좋은 어머니, 성공한 어머니는 자녀 성적이나 들어간 대학으로 평가받는 분위기다. 나임윤경 교수는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여성들이 자녀 사교육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데에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아버지는 교육에는 무관심하면서도 아이 성적을 부인에게 노골적으로 떠맡기고 그 성적으로 모성과 부인성을 평가한다."고 세태를 꼬집었다. 나임윤경 교수는 '본인들의 계층을 대를 이어 유지하고자 하는 재력 있는 시부모는 손주들이 드러어간 대학의 순위에 따라 며느리를 차등 대우'하는 현실 속에 숨어 있는 기제들에 대하여 직접 인터뷰했던 대치동 엄마들 이야기와,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을 분석해 청중들에게 쉽게 전달하였다.

 

아버지의 욕망은 여성의 의무인가

근대 이후 한국 사회는 연줄과 배경, 학력에 대한 신뢰를 공고히 해 왔고, IMF사태 이후 사회안전망 부재의 사회적 조건이 더해지면서, 이 세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은 적어도 추락할 염려는 없을 것이라는 신화가 생겨났다. 나임윤경 교수는 "그 중 학력은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조건이기에 한국 사회는 거기에 '꽂히게' 되었고, 그에 대한 담당자로 고학력 여성이 호명되었다."고 말했다.

나임윤경 교수는 이것은 자발적인 치맛바람이라기보다 "여성들에게 엄마라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공적 정체성도 기대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자녀교육이) 사회와 관계 맺을 수 있는 그녀들의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라며, "대학에서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다는 허위 이데올로기를 교육받은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적대적익 폄하적인 사회의 시선으로 인해 공적 존재로서 성장할 기회를 차단당하게 되고, 발휘하지 못한 에너지를 사적인 공간에서 자녀들의 교육에 쏟아내게 되었다."고 해석했다.

나임윤경 교수는 "여성의 에너지가 가정으로 제한된 마초 나라에서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며, 소(少)자녀에게 집중 투자함으로써 정지되었던 시간과 억합된 에너지를 많은 수의 자녀에게 분산 시키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처럼 자신의 모성과 부인성이 자녀의 학업성취도와 연결되는 맥락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분석했다.

<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에서 언급되었듯이 한국 사회는 자녀의 성적이 만족할 만하지 못하면 남편이 자녀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폭행하고 '체벌'할 수 있는 사회이며, 소위 특목고나 SKY 대학에 자녀를 보낸 며느리와 그렇지 못한 며느리를 차등 대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가부장적이고 경쟁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이다.

사회의 욕망, 가부장의 욕망이 마치 여성의 욕망이자 의무이며, 더 나아가 권리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상위 1%가 되기 위한 경쟁과 집중 때문에 하위문화는 존재하지 않는 지금의 사회구조 속에서, 그렇다면 무엇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까?

 

보살핌이 정의가 되는 사회

나임윤경 교수는 보살핌의 공공화와 하위문화 만들기를 해결방안 중 하나로 제시한다. 상위 1%의 문화만을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하위문화를 발달시키고, 직업의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 상위 1%의 경쟁이 '그들만의 경쟁'이 되게끔 값을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윤임경 교수는 "최근 들어 몇몇 여성학자들은 관계지향성에 녹아 있는 '타인에 대한 보살핌'의 윤리야말로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해 줄 정의(justice)라고 새롭게 개념화하고 있다."며 "확장된 정의 개념 안에 포함된 보살핌의 윤리는 공/사의 분리된 영역에서 '공(公)'이 '공'답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보살핌의 윤리를 실천해 온 '사(私)' 역시도 혈연에 기반하지 않은 존재로서의 타인에 대한 보살핌을 실천할 때 정의롭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풀어 이야기하면, 사회가 제대로 된 안정망을 제시하며 제 역할을 다하고, 내 자녀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돌보는 사회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 비전의 하나로 마을 공동체의 돌봄의 장면을 상상해보면서, "지금까지 가정에서 내 아이만을 돌보도록 기대 받은" 여성들이, 모성으로서의 능력만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능력을 공적 영역의 돌봄 장면에서 발휘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나임윤경 교수는 여성들에게는 타인을 돌보아 온 역사가 있고, 이제 그 역사는 새로운 정의(justice)를 요구하는 새 세상을 맞고 있다고 언급했다.

강연이 끝난 뒤, 보살핌을 강요받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또 다시 보살핌의영역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냐는 질문도 있었다. 그러나 비록 이 사회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해결책 전체를 제시하지는 못하였더라도, 우리가 간과하였던 지점을 짚은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앞으로도 한국여성의전화는 다양한 여성주의 대중강좌를 통해 현실을 바로 알고 이러한 현실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글_다향(한국여성의전화 상담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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