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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지역사회 네트워킹 모델 만들기 프로젝트’ 스타트

by kwhotline 2012. 5. 23.

 

 

가정폭력 물렀거라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지역사회 네트워킹 모델 만들기 프로젝트’ 스타트!

 

"벙벙한 정책보다는 쫀쫀한 지역사회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가정폭력 정책을 연구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황정임 박사의 말이다.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었고 많은 부분이 제도로 흡수됐지만, 지역사회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제도는 제도일 뿐이라는 것.

잘 생각해보면 수원의 토막살인사건은 정책은 있으나 집행되지 않았던 전형적인 사례다. 부부싸움인 줄 알고 신고하지 않았던 목격자들, 부부싸움인 줄 알고 느슨히 대응한 경찰의 모습에서 움직이지 않는 제도는 한낱 문서에 불과함을 실감한다.

수원사건만이 아니다. 지난달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를 찾아온 은평구의 한 여성도 남편의 폭력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가정사니 어쩔 수 없다”, “일이 생기면 다시 신고 바란다”며 돌아갔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경찰의 긴급임시조치가 가능해짐에 따라 접근금지명령 등 가해자에 대한 분리 조치가 가능하지만 일선 경찰에서는 잘 집행되지 않고 있다.
 
적어도 은평구만은 가정폭력 없다-움직이는 네트워크 기획팀
 
한국여성의전화는 올해 서울시 여성발전기금을 후원받아 가정폭력 없는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은평구에서 가정폭력 없는 지역사회 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적이다.

그 시작으로 4월 25일 은평구의 가정폭력 현장전문가, 정책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움직이는 네트워크’가 꾸려졌다. 이날 회의에는 은평경찰서 송택호 형사지원팀장, 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문승민형사, 은평구 참여구정담당관 김지영 주무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황정임 박사, 가정폭력 2차피해 사례연구팀이자 가정폭력전문상담원인 박은미 상담원, 은평구여성정책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한 신경희 단장, 갈현초등학교 황지영 교사, 한국여성의전화 정춘숙 상임대표가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각 기관에서 보는 가정폭력 현황을 공유하고, 기관별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이 지역사회의 안전과 폭력예방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은평구청과 은평경찰서가 자살방지 MOU를 맺고 지역주민의 자살예방을 위해 자료 분석 등을 함께하는 것처럼, 가정폭력 사건도 구청과 경찰서 간의 연계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동사무소의 사회복지담당자의 경우 직접 주민이 찾아와서 ‘나 있는 곳을 (폭력 남편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호소하는 등 가정폭력 피해를 밝히고 도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상 동사무소에서 가정폭력과 관련한 특별한 지원을 하긴 어렵다는 점도 이후 풀어야 할 과제로 드러났다. 이것은 주민의 정보를 밖으로 노출해서는 안 되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경찰서나 상담소 등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표1>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모델만들기 사업의 물음

 

미시적인 정보 제공만으로도 마을은 달라진다

동사무소에서 보유한 가정폭력 피해자 정보를 관할 지구대와 공유할 수 있다면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등의 대책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은평경찰서 송택호 팀장은 정보를 공유하기보다 피해자가 직접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고 알렸다. 지금 당장은 정보를 공유하기 어려운 조건이므로 이후 ‘경찰서에 순찰을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 같은 관련 정보를 동주민센터에서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서부경찰서 문승민 형사는 구체적인 정보를 피해자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은 매번 했던 사람이 하지만, 정작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경찰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은평경찰서 송태호 팀장은 피해자들이 처벌 의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계속 신고를 해서 그 기록이 누적되어야만 차후에 ‘재범의 우려가 있음’을 입증할 수 있고, 그럴 경우에는 가해자 구속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여기서의 ‘기록 누적’이란 지구대에 와서 가해자가 조서를 작성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조서를 꾸미고 입력이 될 때 그 기록이 남을 수 있고 누적된 기록이 많은 가정폭력 가해자는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황정임 박사는 이런 미시적인 정보를 움직이는 네트워크에서 발굴하고 지역사회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동사무소의 사회복지담당자나 학교 교사가 알고 있고, 나아가서는 지역사회 복지관과 상담소, 시장 상인들, 은평구민들 대부분이 알고 있다면 매번 경찰 기록이 없어서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를 적어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누구든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 시작하는 것

박은미 상담원은 가정폭력을 알아챈 누구라도 먼저 개입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움직이는 네트워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특히 학교야말로 가정폭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곳임을 강조했다. 교사는 아이의 집에서 폭력이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사실을 알더라도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는 것.

갈현초등학교 황지영 교사도 같은 문제를 토로했다. 실제로 주변에서 가정폭력이 있는 학생이 있었고 담당 교사가 부모 면담까지 진행했지만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교사는 현행법상 가정폭력 신고 의무자로 되어있지만 아이의 이후 삶을 책임지지 못하면서 부모를 신고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 신고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했다. 교사에게 가정폭력을 알아챘을 때 할 수 있는 지침서가 있다면 현장에서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김지영 주무관은 은평구에서 추진 중인 마을만들기 사업에 가정폭력 문제가 포함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물음을 던졌다. 가정폭력을 멈추는 데는 마을 주민들의 관심이 필요하고, 누구라도 먼저 경찰에 알리고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문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강서구의 한 골목에서는 지역주민이 똘똘 뭉쳐 범죄를 막은 사건이 있었다. 여성이 남성에게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주민이 소리를 지르고, 놀라 도망치는 범인을 동네 청년들이 쫒고, 그 모습을 창문으로 본 동네 주민들이 범인 들으라며 소리치고 또 경찰에 신고를 하고, 순찰 중이던 경찰은 옥상으로 도주하던 범인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수원사건이 일어난 직후라 지역주민들의 안전의식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기획팀’

가정폭력은 이웃의 관심과 지지가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에서 나는 소리를 부부싸움이라며 외면하지 않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찰에 신고하고 피해자 보호에 나설 때 가해자는 자신의 폭력을 ‘부부싸움’이라는 말로 덮지 못할 것이다.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가까운 이웃에 ‘안전의 집’ 이 있는 외국의 사례를 들었다.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근처에 안전의 집 푯말이 있는 집에 가면 당장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긴급 피난처 같은 사례였다. 물론 그 집의 안전을 경찰이 상시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지만, 이웃의 눈과 역할이 그만큼 중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가정폭력 근절을 위해 모인 ‘움직이는 기획팀’은 앞으로 7개월 간 학교, 사회복지담당자, 지구대 등 가정폭력을 최초로 알아채는 사람들을 찾아가 각각의 집단에서 할 수 있는 방책들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렇게 모인 내용을 정리해서 개별적인 역할 지침서를 만드는 한편, 오는 10월 움직이는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합동 토론회를 열어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지역사회네트워크 모델-은평구 모델을 발표할 예정이다. 가정폭력 없는 은평구의 움직이는 네트워크 모델이 대한민국 전역은 물론 세계에 퍼질 그날을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한국여성의전화가 은평시민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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