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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가족 내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기획 기사] 이런 가족도 있습니다! – ‘정상가족’ 규범에 맞서는 세 권의 책

by kwhotline 2019. 6. 4.

[가족 내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기획 기사]


이런 가족도 있습니다

– ‘정상가족규범에 맞서는 세 권의 책

채연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가족이란 뭘까? 한 집에 같이 사는 사람들?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의 사람들? 가족관계증명서에 함께 등록된 사람들? 어떠한 정의를 말하더라도 그 반례가 즉각적으로 튀어나온다. 그 말은, 그만큼 가족을 정의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하나의 단일한 형태로 규정되기 어려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이라고 하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성애 중심의 4인 핵가족이 아닐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정상 가족이데올로기라는 공고한 옹성이 있다. ‘정상가족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정상이라는 용어 자체부터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는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고 간주하는 차별적 개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러한 정상가족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를 전제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상가족이데올로기는 가정 내의 여성뿐 만 아니라 정상가족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없는 성소수자 가족, 한 부모 가족 등을 억압하고 차별해왔다.

 그러나 점차 페미니즘 운동으로 가부장제에 맞서는 시도가 증가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4인 가구가 더 이상 지배적 가족 형태가 아니게 되고 있다. 이와 함께 깨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정상가족이데올로기는 점차 허물어져가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정상가족이라는 옹성을 부수고 있는 책 세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 책은 각기 형식과 구성, 내용이 다 다르지만 책을 덮고 나면 정상 가족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이상하고 무의미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첫 번째는, 김하나와 황선우가 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이다. 이들은 자신의 가족을 W2C4라고 부른다. 여자 둘과 고양이 네 마리. 그리고 서로를 부르는 명칭은 동거인이다. 두 여성이 서로를 만나게 된 계기부터 함께 살아가며 부딪히는 점, 좋은 점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은 가부장제에서 벗어났기에 며느리로서 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좋지만, 주민등록에 가족으로 올라있지 않으니 가족으로서 받을 수 있는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이들과 같이 결혼 제도 혹은 혈연 제도를 벗어나 있지만 함께 생활을 꾸려나가는 이들에 대한 복지 제도와 생활 동반자 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마무리된다.

평생을 약속하며 결혼이라는 단단한 구속으로 서로를 묶는 결정을 내리는 건 물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 개인이 서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다채로운 가족들이 더 튼튼하고 건강해질 때, 그 집합체인 사회에도 행복의 총합이 늘어날 것이다.”

 두 번째 책은 성소수자 인권 단체인 친구사이와 가구넷이 펴낸 <신가족의 탄생>이다. 이 책에는 이성애 중심적인 결혼과 가족 제도에서 벗어나 대안적 가족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열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에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 커플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주택협동조합인 함께주택2- 무지개집가족의 이야기도 실려있어 혈연이 아닌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사실 많은 성소수자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받는 경우(심하면 절연까지)가 많고, 이들은 그런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새로운 가족을 통해 치유하려 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결혼 제도와 정상가족이데올로기 중심으로 짜인 제도 하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레즈비언 부부인 낮잠과 유다 커플은 한국주택공사로부터 신혼부부가 받는 가산점을 받을 수 없고, 우리 사회로부터 여전히 많은 차별적 시선을 경험한다. 결혼을 통해서만 제도권의 서비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기본적 권리를 부여받기 위한 강력한 통로임을 의미하며, 이는 역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큰 배제의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혼하면 으레 주어지는 관계의 이름 부부가 유독 누군가에게는 결코 닿지 못하는 무지개 너머에 있다는 건 비극이다. 병원에서 가족 동의가 필요할 때 대상에서 열외 되며 느끼는 불안감. ‘배우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김희경이 쓴 <이상한 정상가족>으로, 앞선 책들보다는 조금 딱딱한 형식이지만 논의가 가장 직접적이고 깊다. 이 책은 정상 가족 규범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여러 측면에서 드러낸다. 우리 사회의 미혼모’(비혼모)와 입양 문제를 통해 한국의 가족주의가 얼마나 남성 편의적인지, 그 밖의 사람들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출산과 돌봄 문제에 있어 스웨덴 사례를 살펴보고, 생활 동반자 법 등의 논의를 통해 앞으로 사회가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에게는 전통적 가족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더 개인화된 가족정책, 개인이 더 자율적으로 살도록 지원하고 거의 모두가 겪는 공통의 문제는 집단적으로 해결하는 가족 정책이 필요하다. (중략) ‘정상 가족의 딱딱하고 폭력적인 틀로 사람들을 재단하고 아이들을 옥죄는 대신 형태가 어떻든 상관없이 가족이 모든 구성원에게 친밀한 삶의 기지가 되고, 함께하는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늘리는 것이 그렇게 이루기 어려운 소망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러한 개인들의 가족 구성권을 제대로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요하며 가족 구성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다.

 하지만 정상가족은 일종의 판타지이다. 이는 현실에서 절대로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며, ‘정상가족범주에서 배제된 이들뿐만 아니라 그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차별과 폭력을 야기한다. ‘정상가족에 포섭되지 못한 이에게는 비정상’, 혹은 위기라는 이름으로 낙인을 찍고 복지, 주거, 의료 등 여러 제도적 차원에서 차별을 행하며, 한편으로는 정상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상가족 내부의 성차별과 가정폭력 등의 문제를 비가시화한다.


 앞서 살펴본 세 책은 그 형식과 내용이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이러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이를 벗어난 가족도 가족임을, 어쩌면 더욱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가족 형태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정책 개선의 필요성을 촉구한다. , 세 책은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이런 가족도 있다고, 우리에게 더 이상 그런 가족은 필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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