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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월경의 재조명

by kwhotline 2016. 8. 31.

월경의 재조명

 

김채영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마법’이 아니라, 월경

 

인류의 절반은 생애 상당 부분 동안 피를 흘린다. 물론 그 기간이나 규칙성의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지만, 여성들은 평균 십삼 세에서 오십 세까지 자궁점막이 출혈과 함께 배출되는 생리현상을 겪는다. 이 평범한 현상은 ‘그날’도, ‘마법에 걸린 것’도 아닌 ‘월경’이다. 월경은 생리현상 전반을 의미하는 ‘생리’라는 순화된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그날’과 ‘마법에 걸렸다’는 표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왜 우리는 월경이라는 정확한 말을 두고 그날 혹은 마법이라고 해야 할까? 월경과 생리가 그리도 거북한 것일까?

 

월경의 역사

 

지난 7월 인사동에서 생리대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한 공사판 벽면에 생리혈과 붉은 물감이 묻은 생리대와 속옷이 붙고, “임신과 출산은 고귀하지만, 생리는 숨겨야 할 부끄러운 일입니까?”, “나 오늘 넘어져서 손바닥에 피 났어. 나 그거 해. 왜 생리는 생리라고 못하나요?” 등의 문구가 적혔다. 이 퍼포먼스는 큰 관심을 끌며 기사화되었는데, 상당수의 의견이 ‘더럽다, 과격하다, 여자인 나도 더럽게 생각하는 생리대를 왜 붙이느냐’ 등이었다. 생리혈에 대한 반감, 월경의 터부시가 명백히 표면화된 것이었다.

 

출처:m.mt.co.kr
출처:www.womennews.co.kr



 

 

금기로서의 월경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고대 로마 자연학자 플리니는 월경혈을 ‘죽음에 이르는 독극물’이라고 생각하였고, 호주의 일부 선주민 부족은 월경혈이 남자를 죽일 수 있다고 믿었으며, 알래스카의 콜로쉬인들은 초경을 하는 소녀가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일 년 동안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게 하였다. 이런 터부시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생리를 더럽고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과학을 통해 월경이 무엇인지 규명이 된 오늘날에도 인식은 그대로이다.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생리대를 건네받을 때 혹 남들이 볼까 비밀스럽게 행동하고,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사면 점원은 이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는다. 우리는 생리를 숨겨야 하는 수치스러운 일로, 생리혈은 더러운 것으로 여기도록 강요받아 온 것이다.

 

월경은 숨겨야 하는 대상인 동시에 여성을 보다 열등한 성으로 만드는 수단이었다. ‘히스테리’는 '자궁'이라는 뜻의 그리스어(hysteria)에서 유래하였는데, 과거 정신장애가 여성에게 자주 일어나는 증상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는 여성이 기분이 나쁘면 생리 중이라는 편견과 그 맥을 같이하는데, 생리 중인 여성은 비논리적이고 비정상적으로 감정 기복이 있다는 사회적 통념은 오늘날에도 만연하다. 월경전증후군으로 여성의 감정이 진단되면서 월경은 질병으로, 여성의 감정은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월경은 보여서는 안 되는 금기이자 여성을 보다 열등하게 만드는 현상으로 정의되어 왔고, 또한 정의되고 있다.

 

#생리대를붙이자 캠페인

 

지난 5월 저소득층 가정의 여학생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이나 휴지를 사용한다는 소식이 큰 쟁점이 되었다. 생리대를 할 수 없어 일주일 내내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 눈치를 보며 보건실에서 생리대를 받아 써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필수품인 생리대의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6월에는 광주 광산구의회 정례회에서 저소득층 지원 물품에 생리대를 추가하자는 내용의 건의안에 새누리당 박상용 의원이 "위생대, 그러면 대충 다 알아들을 것이다, 본회의장에서 생리대라는 것은 좀 적절치 못한 그런 발언이지 않으냐 그런 생각이 든다"라는 생리대 혐오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7월에는 재난구호 물품에서 생리대가 제외되었는데, “생리대는 활용도가 낮은 데다 활용 연령대도 제한적이다. 제품 선택 등 개인 취향의 문제가 있고 오래 보관할 경우 변질 가능성이 있어 제외했다”라는 것이 그 연유였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생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면서 #생리대를붙이자 캠페인을 촉발하였다. 이 캠페인으로 생리대 가격 인하를 주장하고 생리에 대한 무지함과 혐오를 꼬집는 인사동 생리대 퍼포먼스가 전개되었다.

 

출처:https://twitter.com/g__susan

우리나라의 생리대는 상대적으로 비싸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의하면, 한국 생리대의 개당 가격은 331원으로 일본, 프랑스. 덴마크, 미국, 캐나다 5개국의 평균 가격인 187.6원보다 높다. 또한, 소비자물가지수를 고려해볼 때 생리대 가격이 물가보다 빨리 올라 소비자들이 면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물론 다양한 종류의 생리대가 있고, 구매 경로마다 가격차가 있으므로 정확한 비교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생리대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주장에 인용되는 통계는 이마트의 노브랜드 생리대를 기준으로 하거나, 한국 팬티라이너와 외국 생리대를 비교하는 등의 오류가 있어 신뢰하기 힘들다.

 

또한, 생필품인 생리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인식이 부족하다. 면도기는 필수품이지만 생리대는 기호품이고, ‘생리’가 거북하니 ‘위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발상은 젠더 감수성이 모자란 국가 기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자연스레 사회 일반의 생리에 대한 상식 부재와 혐오에 대한 문제로 퍼졌는데, 생리대 가격 인하 주장이 일자 “생리대는 하루 두 개면 충분하지 않나”, “생리를 참았다가 집에서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와 같은 상식 밖의 의견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생리대를붙이자 캠페인은 생리대 가격 인하와 인식 개선의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와 함께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났다. 저소득층 여학생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 서울시와 성남시의 생리대 지원, ‘생리대 만드는 청년’의 저가 생리대 보급 프로젝트까지 실질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다방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개선이 없다면, 이는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고, 모든 여성이 경제적 부담 없이 생리대를 사용하며, 생리휴가를 쓰면서 필요한 휴식을 취하는 사회는, 월경을 불편하고 거북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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