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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여성과 전쟁, 반복되는 역사①] 국가는 여성의 몸을 어떻게 활용해왔나

by kwhotline 2016. 8. 29.




  역사에는 전쟁이 있었고, 전쟁에는 여성이 있었다. 여성의 몸은 근대의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민족주의와 결합하며 ‘전리품’ 또는 ‘성노예’의 형태로 활용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성노예’나 베트남전쟁의 ‘성노예’, 한국전쟁 이후의 ‘양공주’, 그리고 기지촌의 여성들은 민족주의와 섹슈얼리티의 결합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들이 강제든 아니든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에 분노한 것이다. 가부장제의 관점에서, 여성의 고결함과 정숙은 민족주의적 자부심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여성과 전쟁, 반복되는 역사] 기획기사를 통해 페미니즘과 민족주의, 여성인권과 전시 성폭력에 대해 짚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성과 전쟁, 반복되는 역사①]

국가는 여성의 몸을 어떻게 활용해왔나


지혜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루벤스 - 브리세우스 아킬레우스>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에 집필한 서사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은 여성의 몸이 전쟁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로이 전쟁은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레네를 파리스 왕자가 훔쳐갔다는 명분과 함께 발발한다. 전쟁 10년 차, 아테네 연합군의 수장인 아가멤논과 신이 내린 전사 아킬레우스 사이에는 분쟁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전리품 여인’ 때문이었다. 아킬레우스가 받은 전리품 여인을 아가멤논이 겁탈하였던 것이다. 나는 어릴 적 이 책을 읽으며, 남자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여자들이 전쟁의 명분 또는 전리품으로 환원되어 서술되는 것이 의아했다. 트로이 전쟁이 허구냐 실화냐의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9장에서 말했듯, ‘일어난’ 일을 기술하는 연대기와는 달리 시는 ‘일어날 법한’ 일을 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연대기보다도 훨씬 ‘보편적’인 기록물로 기능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일리아스』에 나타난 여성의 몸이, 전쟁과 역사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이용해왔는지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 느껴졌다.


전시 성폭력은 오래된 전쟁술 중 하나다. 이는 가부장제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가부장 지배하의 여성에게 중요한 덕목은 임신과 출산이다. 이 때문에 여성의 몸은 ‘남성의 씨’를 담는 ‘그릇 또는 토양’처럼 여겨졌다. 이를 전시 성폭력에 빗대 분석해보면, 적국 여성에 대한 강간은 적의 영토에 씨앗을 뿌리고 인종을 청소하는 행위인 셈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의 장수들에게 돌아가던 ‘전리품 여성’은 이러한 심리 전술의 정점에 위치한 상품이었다. 과거 유목민들의 전쟁에서는 타 부족의 여자를 전리품으로 잡아들여 승리한 족장의 부하들에게 나눠주던 풍습이 만연했다. 칭기즈칸 역시 아내가 납치당했다가 임신을 ‘당한’ 상태로 돌아와 괴로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전리품’에 대한 서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넘쳐난다. 우리나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고려 시대에 원나라로 끌려간 ‘공녀’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원나라 사람들이 정말로 성욕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만 고려의 여자들을 데려갔을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원나라 입장에서는 고려 남성들의 ‘씨’를 받아야 할 고려 여성을 정복하는 것이 그 자체로 훌륭한 ‘심리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고려 남성들이 정신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고 원나라에 심리적으로 복속되기 때문이다. 여성을 빼앗긴 것은 영토를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유효한 문제다. 작년 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조직원들을 위한 ‘성폭행 안내서’를 출간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 책은 IS 대원들에게 포로로 붙잡힌 여성을 성폭행할 때 허용되는 사항과 허용되지 않는 사항에 관하여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중 “성폭행으로 여성 포로가 임신했을 경우 유산을 시키기보다는 출산할 때까지 잘 돌봐준다”는 규칙이 있다. 이 대목은 IS가 단순한 성욕 충족을 위해 여성 포로를 성폭행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만약 성폭행의 이유가 그저 성욕 충족일 뿐이라면, 임신한 여성은 ‘성 노리개’로서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살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유엔 연례 보고서는 IS, 보코하람 등 극단주의 무장조직의 성범죄가 단순 성욕 분출 수단이 아닌 분명한 전략적 목적을 지닌 전쟁 도구라는 점을 밝혔다. 극단주의 조직들이 상대 민족이나 국가 여성들에게 저지르는 성폭행과 성노예화, 강제 결혼 등은 자신들의 행위를 과시하고 점령 지역 주민들을 정신적으로 복속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북부 치복에서 수백 명의 소녀가 보코하람에 납치되어 강제 결혼이나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이라크에서 지난 몇 달간 1500여 명이 성 노예로 전락한 사건은 모두 이와 같은 ‘전시 정책’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민족주의는 사람들에게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과 유지에 강한 긍지를 느끼게 한다. 국가가 민족주의를 지탱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국민에게 자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주입하기도 하고, 타국이나 타민족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게끔 여론을 끌어내기도 한다. 이때 흔하게 사용되는 도구 중 하나가 ‘섹슈얼리티’다.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있으며, 통치 전략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가부장적인 곳일수록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가 높다. 민족주의는 바로 이러한 점을 노려 섹슈얼리티와 결합한다.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는 것이 가부장 사회의 관습인 것에 착안한다면, 타민족의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국가나 타민족을 공격하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섹슈얼리티와 민족주의의 결합이 극대화될 경우, 타민족, 다른 국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엄청난 정당성을 갖는다. 그것이 ‘애국’을 위해 수반되는 하나의 과정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섹슈얼리티와 민족주의의 결합이 반드시 타민족, 타국 여성만 노리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시에는 자민족, 자국 여성까지도 가차 없이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한 성적 희생물이 된다. 우리나라의 ‘기지촌’이나 ‘기생 관광’을 떠올려보자. 가부장제가 존재하는 한, 여성의 몸은 주체적 신체이기 이전에 국가와 민족의 소유로 인식된다.


전쟁을 중단하면 문제가 사라질까? 나는 그에 대해 회의적이다. ‘동남아 여성 매매혼’이나 ‘코피노’를 떠올려보자. 단 며칠 만에 심사를 보고 아버지뻘 나이의 한국 사람에게 ‘팔려와’ 성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 맞아 죽은 동남아 신부들을 떠올려보자. 전쟁 상황이 아니더라도 섹슈얼리티와 민족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앞서 열거한 공녀, IS 성폭행, 기지촌, 베트남 전쟁,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의 본질은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국가나 사회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조직적으로 여성의 몸을 활용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에 있다. 전쟁은 단지 그것을 극대화하여 보여주기에 충분했던 시간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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