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여성인권영화제 10회 기념 포럼의 정민아 영화평론가 발제문입니다.


영화의 폭력 이미지: 고통의 카메라, 외설적 카메라


정민아 영화평론가




1. 흥행 영화 키워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영화』 78호에서는 2012년 이후 흥행영화 키워드로 ‘사회성’, ‘애국’, ‘부성애’를 들고 있다(www.kofic.co.kr). 몇 년간 부성애, 사회성, 애국 코드에 덧붙여 복고 코드가 영화시장에서 통하는 키워드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명량>, <국제시장>, <부산행>, <터널>, <암살>, <밀정> 등에서 보듯이, 각각의 키워드는 독립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서로 엮인다. 이러한 영화들의 흥행은 사회 안정성의 위협, 국가 시스템에 대한 의심, 가족 해체의 두려움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이들 영화에서 여성의 자리는 많지 않다. 대개 여성들은 한 평범한 남성이 위기의 순간에 대오각성하고 집단을 위해 헌신하는 영웅으로 재탄생하는 서사를 위해 단순하게 소비되고 만다. 위기에 빠진 아내와 딸이거나, 동료일지라도 보조적 인물로 그려지고, 혹은 약한 희생자이어서 남자 주인공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현재의 한국영화 제작 경향은 이렇듯 한 성별에 일방적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남성 서사 위주로 영화가 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영화산업의 현재가 남성 제작자에 의해 주도되는 이유뿐만 아니라 실은 관객 취향과도 관계가 깊다. 다시 말해, 여성 서사 영화는 흥행을 끌기 어렵고, 액션, 스릴러 장르를 위주로 하는 남성 서사 영화에 더 많은 관객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는 디지털 시대 이후 스펙터클이 강조되는 스케일이 큰 영화의 선호, 남성 스타 위주로의 산업 재편, 경제 위기 이후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 등 몇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필자는 여기에 ‘걸크러시’라는 키워드를 더하고 싶다. ‘여성이 여성에게 반한다’는 의미의 걸크러시는 2015년 이후 여성 영화배우, 랩 가수, TV 연예인을 대상으로 널리 사용되는 대중적인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칼럼니스트인 마리사 히긴스의 경우, 잡지 『xoJane』에서 걸크러시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전개한다. 그녀에 따르면, 한 여성의 다른 여성에 대한 감정에서 보이는 내면의 동성애적 성향을 인정하지 못해서 걸크러시라는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단어는 동성애자들을 심리적으로 더욱 고립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고스트 버스터즈> 스틸컷 사진 출처 : mydaily.co.kr



지난해와 올해 걸크러시를 보여주는 영화들의 등장이 흥미롭다. 지구가 완전히 파괴된 후 여성영웅의 등장을 그린 고강도 여성 액션 블록버스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조타수 역할을 했다. <매드맥스>의 성공 이후 걸크러시 영화들이 줄줄이 시장에서 성공했는데, 여성 첩보 액션 코미디 <스파이>, 루크 스카이워커의 딸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타워즈>, 젠더 역할 뒤집기를 보여준 액션 코미디 <고스트 버스터즈>, 어머니를 마음속의 등불로 삼고 일어서는 여자 성장담 <와일드>, 여성 퀴어영화 <캐롤>, 참정권 투쟁을 그린 시대극 <서프러제트>,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녀와 아씨의 사랑을 그린 <아가씨> 등이 있다.  


20-30대 젊은 여성과 젊은 성소수자 수용자들은 여혐·남혐 논쟁, 온라인 젠더 논쟁을 거치며 페미니즘 리뉴트를 경험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문화의 주류 이데올로기가 가지고 있는 젠더 편향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수용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주체적으로 대중문화 소비 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2. 또 하나의 키워드 ‘성폭력’ 


걸크러시라는 긍정적 키워드와 함께 또 다른 키워드 ‘성폭력’이 최근 부쩍 눈에 띤다. <매드맥스>, <스포트라이트>, <룸>, <내부자들>, <귀향>, <곡성>, <아가씨> 등의 영화에서는 여성 성폭력이나 아동 성폭력이 중요한 영화적 소재로 쓰인다. 걸크러시 현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성폭력 소재 영화들에서 성폭력의 재현은 이전과 달라지고 있는가 하면,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스틸컷 사진 출처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매드맥스>에서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된 지구에 새로운 폭군이 등장하여 생식능력이 있는 젊은 여자들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끊임없이 임신하게 한다.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가톨릭 신부들의 아동 성폭력을 파헤치는 기자들의 활약을 다루는 실화영화이며, <룸>은 7년 동안 감금된 상태에서 성노예로 착취당하다가 필사의 힘으로 탈출한 한 여성의 실화를 다룬다. 이 영화들은 성폭력이 서사의 중심 사건이지만 성폭력 묘사는 거의 배제된다. 성폭력 장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건이 일어난 후 인물들이 이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가 서사의 중심이다. (예: <룸>의 성폭력 장면)   

영화에 이야기가 도입되기 시작하던 초기 시대부터 영화는 “남자와 여자와 총”(D.W. 그리피스)의 이야기였다. 어쩌면 폭력은 영화의 필수 성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르영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100여 동안의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발달과 관객 의식의 변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이 영화의 폭력 묘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면 한국영화로 들어와 보자. 영화의 폭력 이미지 묘사는 동시대 사회의 젠더 감수성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시각 스펙터클이 중요한 요소인 영화는 선정성으로 시장에 즉각적으로 호소하려는 속성이 있어 폭력 이미지를 더 과잉되게 그려내곤 한다. 이러한 영화들은 일명 익스플로테이션(exploitation) 영화라고 불린다.   


한국 장르영화의 성장과 함께 폭력 재현이 과잉되게 남발되고 있는 현재, 폭력 이미지 재현에서 윤리성, 제의성, 방어기제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미디어의 폭력 이미지 묘사는 위험하고, 모방범죄 등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표현을 법률로써 제재해야 한다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이다. 폭력이 도덕적으로 나쁘기 때문에 이미지 재현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쁜 것은 폭력 이미지를 물신화해 포르노그래피식의 쾌락을 얻게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폭력 장면을 예술적으로 그렸다고 지지를 받는 경우, ‘폭력 미학’, ‘헤모글로빈의 시인, ’폭력의 피카소‘ 등과 같은 별칭을 얻곤 하는데, 여기에는 폭력 장면을 보는 철학적 의미가 있다. 영화의 폭력을 이해하는 몇 가지 이론이 있다. 제의론은 영화의 폭력을 인간이 지닌 디오니소스적 에너지가 분출하는 제의로 간주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전쟁과 광기로 터져 나올 폭력 충동이 영화로 인해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적응론은 속도감, 과잉 자극이 특징인 근대 사회에서 영화는 “대중적 정신 이상에 대해 정신적 예방 접종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발터 벤야민,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는 주장과 관련이 있다. 영화의 폭력 이미지는 현실의 폭력 에너지가 위험한 방식으로 성숙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방어기제론은 예로부터 조각난 신체에 매혹된 사람이 자아의 통일성을 위해 타자를 조각내려는 충동이라는 본성을 영화나 시각문화를 통해 정화한다는 이론이다. 


이와 같은 이론은 정치 리더들의 암살과 베트남 전쟁 등 폭력의 시대에 과격해진 할리우드의 스크린 폭력이나, IMF 시기의 조폭영화, 시민에 대한 폭압이 가해진 보수주의 정권기의 스릴러 영화의 번성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폭력영화 마니아 중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다. 폭력 이미지에 쾌감을 느낀다는 것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폭력 이미지 이면에 놓인 정치적 메커니즘이나 사회적, 젠더적 폭력 구조에 눈을 돌려야 하지만 화려한 폭력성은 이를 방해하곤 한다. 주관적 폭력의 직접성으로부터 눈을 돌려 “객관적 구조적 폭력을 응시”(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밀양> 공식 스틸컷

이창동 감독은 <밀양>을 찍은 후 한 대담(《씨네21》, 602호, 2007. 5)에서 “영화가 그렇게 윤리적인 매체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영화가 관객의 영혼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윤리적 화두를 던진다. 공포영화에서 클리셰가 된 장면이 있는데, 연쇄살인마가 여성 희생자를 쫓을 때, 카메라는 여성을 보는 살인마의 시점과 놀란 여성의 시점을 오간다. 관객인 우리는 두 시점을 번갈아 점유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살인마가 여인을 끔찍하게 살해할 때, 완수의 쾌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고통을 느끼는가. 복수의 시점이 균형을 잡아 줄 수 있을까. 무의식에 자리한 파괴적 충동을 살려내는 순간은 아닌가. 여기에서 영화의 폭력에 탐닉하는 폭력성의 포르노그래피라는 문제가 생겨난다. 


파퓰러 페미니즘의 확산과 여성주의를 둘러싼 사회의 인식 변화와 함께 영화계 내부에도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주류영화에서 남성 서사의 장르영화가 많지만 여성 캐릭터 표현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 장면 연출에서 여성관객을 의식하는 점이 보인다. CGV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상반기 여성관객이 61%라고 하는 점(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 78호)에서 볼 때에도 여성관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 <곡성>의 성폭력 묘사 장면) 


2000년대에 나온 조폭영화에서까지 남성의 여성에 대한 강간 장면은 장르 컨벤션이었다. 조폭 사이의 신체적 폭력처럼 여성에 대한 강간도 일반적 폭력 장면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러한 문제들이 많이 시정되고 있는 지금,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에서 나타난다. 여성 중심 서사의 성폭력 묘사 사례를 보자. <귀향>에서의 성폭력 장면이다. 


이 장면은 역사 속 고통스러운 순간을 현재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 꼼꼼하게 연출되었다. 일본군 ‘위안부’가 처한 가장 잔인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꽤 오랫동안 이 장면을 봐야지만 관객이 위안부 피해자의 감정에 이입하고 그들을 애도할 수 있을지 질문할 차례다. 고통스러운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 모두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창작자가 강제한다. 이러한 꼼꼼한 묘사는 성폭력을 스펙터클화하고 피해자를 성적 묘사의 대상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순결을 잃은 소녀’ 서사는 소비적 감상주의로 인해 구조적 폭력을 보기 힘들게 한다. 사악한 일본군의 얼굴과 멍든 조선 처녀의 얼굴의 대비는 폭력 이미지 뒤에 숨은 사회의 구조적 폭력, 즉 군국주의 가부장제 국가가 여성으로 젠더화된 식민지를 집단 강간했다는, 역사적 맥락 및 국가 시스템을 지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여성 피해자의 수난 장면을 꼼꼼하게 재현하는 것을 통해 불행한 타자를 이상화하는 태도는 기만적이다. 이는 자아의 무능력을 은폐하려는 시도이다. 좌파, 우파, 남녀노소 관객을 아우르며 <귀향>은 흥행에서 성공했지만 주관적 폭력으로부터 객관적 구조적 폭력을 응시하도록 하는 영화서사 구조의 결핍으로 인해 영화는 단순하게 소비되고 말았다. 윤리적 착각이라는 면에서 영화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진다. 영화를 보러가는 것이 마치 행동하는 시민이 된 것 같은 착각 말이다. 개인의 죄책감과 피해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상의 인식의 확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영화는 선동적 프로파간다에 그치고 만다. 


3. 젠더 스와프의 가능성     

 

브로맨스 영화의 전성기, 아재 예능의 전성시대다. TV 예능 버라이어티의 멀티 MC 체제에서 성공한 여성 MC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재’, ‘아빠’가 예능의 흥행 키워드가 되었다. 돌보는 아빠, 요리하는 남자, 놀고 꾸미는 아재 사이에 낀 여성은 욕 받이 비호감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여자 연예인은 진짜 사나이가 되어야 하고, 예체능에서는 남자와 함께 몸으로 대결해야 하며, 여자 개그맨은 철부지 남자를 이끄는 가모장이 되어야 한다. 


브로맨스 영화에서 여성은 아픈 아내(<아수라>, <신세계>), 마담(<범죄와의 전쟁>, <타짜>), 희생양(<내부자들>, <아저씨>), 덜 성숙한 동료(<소수의견>, <감기>)이다. 역사는 룸살롱에서 이루어지고, 접대부와의 동영상이 협박의 만능키로 등장한다. 딸은 울고 있고, 아내와의 감정적, 육체적 교류는 거의 없다.   


이미지 출처 : 일간스포츠 - 중앙일보이미지 출처 : 메트로



여기에 소수의 여성 중심 서사 영화가 있었다. <차이나타운>은 갱단 두목을 여자로, 그리고 그의 뒤를 잇는 차세대 리더 역시 여자로 설정했다. 어린 여성 갱은 순결무구한 또래 남자로 인해 비정한 갱스터 세계의 속성을 깨닫게 되는데, 이 영화의 서사구조와 캐릭터는 기존 남성 중심 갱스터 영화에서 성별만 바꿔놓은 것이다. <아가씨>의 경우 레즈비언 무비의 시장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영화이지만, 펨-펨 레즈비언 커플은 충무로 남성 감독의 시선에서 쾌락적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아름다운 레즈비언 커플은 남성 시선에서 볼 때 덜 위협적이어서 수용에 별 문제가 없다. 여성감독이 만든 <비밀은 없다>는 사회의 여혐 현상을 은밀하게 투영하는 대담한 성 정치학 텍스트이지만 관객의 악평에 시달리며 처참한 성적을 남기고 금세 극장가에서 사라졌다. 씁쓸한 결과로 아직 갈 길이 멀게 만 느껴진다.   


일방적으로 하나의 젠더 재현이 휩쓰는 한국영화계 현실에서 다른 재현과 다른 감각을 펼치는 할리우드의 젠더 스와프 현상을 지켜봐 할 것이다. <매드맥스>, <고스트 버스터즈>, <스타워즈> 등 여성 액션 주인공 영화에 이어 ‘엑스맨’을 여성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는 계획은 확실하게 성사되고 있고, 007의 새로운 본드로 여자배우도 후보에 올릴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세계 영화계의 경향이 이러할진대 우리 영화계도 관객의 선택이라는 이유를 들어 브로맨스 영화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다른 재현과 다른 감각과 다른 시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관객의 영리한 관람 행동이 중요하다. 


4. 여성인권영화제 출품작 경향과 그 외






데이트 폭력 문제, 성폭력 이후의 트라우마, 동성애 등을 다룬 단편영화들이 최근 많이 출품되고 있다. 대중 페미니즘의 확산이 그 이유인지, 몇 년 전만해도 왕따 문제, 실업 문제, 사회생활 문제, 가족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많았는데, 조금씩 경행이 변화되고 있는 것이 체감된다.  


폭력 문제, 폭력 이미지는 대중적으로 소비되거나 설득되기 쉬운 문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객관적 구조적 폭력을 응시하지 못할 때의 폭력 이미지는 익스플로테이션이 되고 만다. 사건 그 자체의 비극성에 집착하며 개인의 트라우마와 피해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애도의 행위가 아니며 표면의 전시일 뿐이다. 또한 폭력 이미지 그 자체의 탐닉적 묘사, 혹은 폭력의 순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 영화에서 폭력 이미지는 어떻게 조직되는가의 문제와 관련을 맺어야 한다. 


세상은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곳이다. 폭력은 세상에 늘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 폭력의 작가들이 필요하다. 문제는 쾌락인지 고통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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