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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법 앞에 멈춰선 여성들

by kwhotline 2016. 7. 21.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법 앞에 멈춰선 여성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②]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가정폭력‘처벌법’


장유미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사랑과 희생, 화목함의 상징인 가족. 그러나 한국 가정의 53.8%는 ‘폭력’ 가정. 그만큼 경험으로 익숙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 ‘감히 참견해서는 안 될 가정사’라고 생각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인식. 이처럼 가족과 가정폭력을 둘러싼 이중적인 잣대, 인식의 괴리는 폭력의 본질적인 해결을 어렵게 합니다.


올해로 33년 동안 아내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여성의전화가 다양한 사례와 함께, 가정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보수적인 가족상과 폭력의 연관성, 현 가정폭력 관련 제도의 문제, 가정폭력과 얽혀있는 또 다른 폭력의 실상을 파헤쳐봅니다. 


* 본 기사들은 한국여성의전화 ‘5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캠페인의 일환으로 연속 연재되었습니다.


  2015년 한 해, 대한민국에서는 최소 93명의 ‘아내’들이 가해자 남편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거나 살해당했다(한국여성의전화, 2015년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 통계 분석). 여성들은 가해자에게 수차례 맞고, 흉기에 찔렸으며, 몸에 붙은 불에 화상을 입는 등으로 목숨을 잃거나, 상해를 입었다. 


  가해자가 진술하는 폭력 혹은 살해의 주된 동기는 여성들이 가해자에게 헤어지자고 했을 때, 혹은 싸우다가 ‘홧김에 우발적으로’였다. 홧김에 범죄를 저지른 구체적인 ‘이유’들은 다음과 같았다. 여성들이 ‘이사 오기 전의 노인정과 성당에 계속 다녀서’, ‘함께 술을 마시는 도중 휴대전화만 봐서’, ‘설익은 강낭콩 껍질을 벗겨서’, ‘집에 늦게 들어와서’, ‘타 지역에 가서 함께 살기를 거부해서’,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아서’. 


  ‘아내’들은 지난 한 해, 그렇게 가해자의 폭력을 견디거나, 마침내는 가해자의 폭력 끝에 우리 곁을 떠났다.


  아내폭력의 ‘이유’

  한 가정의 ‘아내’라는 역할은 오랜 역사 속에서 ‘어머니’란 역할과 함께 여성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집에 있어야 ‘자연스러웠다’. 여성들은 아내로서뿐 아니라 ‘어머니’로서 집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보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 구성원들이 안락하게 음식을 먹고 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종일 바빴다. 하지만 여성들의 일은 ‘집에서 놀면서’ 하고 있는 하찮은 일이 되었다. 혹여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될 땐 ‘여자가’ ‘집에서 놀면서’ 뭐하느냔 얘기가 돌아왔다. 


  물론, 여성들이 언제나 집에 있진 않았다. 생계를 위해 여성들은 집 밖에서도 일했다. 그러나 여성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은 집이었다. “애는 어떻게 하고 나왔냐, 얼마나 번다고 그러느냐”라는 얘기는 여성들에게만 돌아왔다. 여성들은 집을 ‘오래’ 떠나 있지 못했다. 


  여자라면 으레 어때야 한다는 메시지는 강력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느끼거나, 그 결과로 어떠한 일이 크게 잘못됐다고 느낄 때, 불안과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것을 ‘이유’로 남편이 폭력을 가한다면,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원인을 돌려야 그 상황을 일단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가하는 폭력은 ‘설익은 강낭콩 껍질을 벗겨서’와 같이 자의적이거나, 혹은 특별한 이유가 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폭력이 행사되는 대상은 ‘아내’였다. 여성들에게 집은 그들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가정 보호’. 법의 목적은 분명했다




  여성들이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가정에서, 아내폭력은 으레 일어나는 일이었다. 1983년 여성의전화가 조사했던 아내구타 실태조사에서 결혼 후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여성의 비율은 42.2%에 달했다. 그럼에도 어떠한 법적 제재도 받지 않았던 아내폭력은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고서야 처벌받을 수 있는 사회적 범죄가 되었다. 하지만 실상 우리 사회가 가진 인식은 아내폭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여성들의 생명권과 인권을 보장하고, 가해 남편을 처벌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 


  외부에서는 개인들이 서로 ‘사적’으로 만났다가도 범죄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가 처벌대상이 되건만, 집이라는 ‘남성의 사적 공간’에서 일어난 폭력은 가부장이 가정 구성원들을 ‘통솔하고’,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 한 행위들로 간주됐다. 남이 보기에 가부장의 폭력은 아내 혹은 아이들이 ‘맞을 만한 짓’을 했기 때문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끼어들 수 없는 ‘남(성)의 가정사’, ‘남(성)의 집안일’이었다. 


  특히 일선에서 아내폭력 사건에 대응하고 피해여성의 생명권을 보장해야 할 경찰의 인식이 그러했다. 2013년 5월 경찰청이 전국 경찰관 8,932명과 가정폭력 담당 수사관 9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정폭력 인식 조사에서,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 안에서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57.9%,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35%에 달했다. 


  이러한 결과는 현행 가정폭력방지법의 성격을 봤을 때, 놀랄 일도 아니다. 가정폭력방지법은 궁극적으로 피해여성의 인권을 보장할 수 없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 제1조 목적조항은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정과 성행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법이 우선으로 하는 목적은 명백했다. 가정폭력은 ‘가정을 파괴하는’ 범죄이며, 회복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은 가정이다. 피해여성의 인권 보장은 부차적인 것이다. 


  여전히 처벌되지 않는 ‘아내폭력’

 


  가정을 회복하여 지키고자 하는 법체계에서 가해자 처벌은 당연히 주 관심사가 아니었고, 실상 이루어지고 있지도 않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2013년 가정폭력 피해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찰 신고 뒤 아무런 법적 조치를 받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8.3%였다. 또한 검사가 가정폭력 사건을 형사법원에 기소하는 비율은 2015년 7월 기준 8.7%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법무부, 2015년 8월). 한편, 재판 청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불기소 처분 비율은 2011년 64.1%, 2012년 62.6%, 2013년 60.4%로 연간 60%를 웃돌고 있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현행 가정폭력처벌특례법의 운용실태 및 입법적 개선방안 연구」, 2014). 이외 사건들은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되어 가정법원에 재판이 청구된다. 


  그러나 실상 가해자의 ‘성행 교정’을 위한 가정보호사건 처분 내용이란 것이 ‘처벌’이랄 것도 없다. 특히 ‘접근행위금지, 친권행사제한, 사회봉사·수강명령, 보호관찰, 감호위탁, 치료위탁, 상담위탁’ 등의 보호처분 내용 중 그나마 피해여성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접근행위금지, 친권행사제한 처분 비율은 2014년 기준 0.6%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불처분은 30%, 상담위탁 처분은 19.2%, 사회봉사명령 처분 9.3%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법원행정처, 2015 사법연감). 가정보호 사건으로 둔갑한 아내폭력 사건은 가정보호와 유지를 최종적인 목표로 하는 당국의 법 집행 과정에서 기껏해야 가해자에게 상담을 받도록 하는 처분이 고작이었다.


  2007년부터는 법원까지 갈 것도 없이 검찰 단계에서 상담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처벌을 면해주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가 등장하면서, 아내폭력 범죄에서 가정유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국가적 대응 방식의 정점을 찍었다.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를 받은 인원의 비율은 2007년 가정폭력사범 대비 1.4%, 기소유예인원 대비 6.2%에서 2014년 9월 기준 가정폭력사범 대비 3.2%, 기소유예인원 대비 29.6%로 훌쩍 증가한 상황이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현행 가정폭력처벌특례법의 운용실태 및 입법적 개선방안 연구」, 2014). 


  이제 가해자들은 법원에 가서 재판을 통해 상담 처분을 받는 수고로움(!) 없이 검찰 단계에서 상담을 받기만 하면 되었다. 더군다나 대검찰청의 2013년 「가정폭력사범 조건부 기소유예 처리지침」을 보면 대상 사건을 ‘사안이 경미하고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하여 가정구성원간 화합과 치유 등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판단되는 사건, 가정폭력행위자의 범행 경위, 전력, 성향 등을 종합하여 가정폭력 행위자에게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으로 모호하게 규정하여 대상 사건의 적합성 여부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무엇보다도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는 아내폭력 사건 대부분이 불기소되거나 상담위탁 처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내폭력이 처벌받는 범죄이기보다는 상담을 받는 일탈 행위 정도로 인식되는 것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범죄행위에 대한 국가적 처벌이 상담을 받는 정도로 끝나는 범죄, 그게 바로 아내폭력이다.


  여성들은 ‘그 곳’에 있다 




  우리 사회는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에 대한 오래된, 그리고 끊임없는 이야기들을 들어 왔다. 여성들에게 폭력을 경험한다는 것은 자신이 상대방과 실제론 동등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는 경험이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볼 때 그 정도가 경미하든 중하든, 폭력은 서로가 가진 권력이 동등하지 않은 관계,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존재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형태다. 아내폭력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일상적으로 스며든 우리 사회의 단면이며,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가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된 일면이다.


  여성들 중 누군가는 ‘그 곳’을 떠날 수 있었거나, 누군가는 ‘그 곳’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다 가해자에 의해 마침내는 목숨을 잃었거나, 혹은 누군가는 가정을 지키려는 사회 앞에 수없이 발길을 뗐다가도 돌리며 ‘그 곳’, 가정에 있다. 가해자의 폭력을 멈춰주지 못하는 국가시스템 앞에 멈춰서 있는 여성들에게 우린 어느 누구도 책임을 논할 수 없다. ‘그 곳’에서 살아남는 몫을 여성에게 돌리지 않으려면, 또한 ‘가정폭력 근절’이 껍데기만 남은 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가정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아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구축해야 한다. 더 이상은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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