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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여성폭력,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by kwhotline 2016. 3. 31.


여성폭력,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 폭력 문제의 사회 구조적 맥락 이해” 강의 열어


도경은_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3월 23일 오전 10시, 한국여성의전화(이하 여전) 교육장에서 여성상담전문교육의 목적으로 여성폭력문제의 사회 구조적 맥락과 그 이해에 대한 강의가 열렸다. 여성학 강사인 문채수연 강사가 교육을 맡았다.


어떤 관점에서 폭력을 바라볼 것인가?


강사는 짧은 영상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다. 같은 그림이라도 어디에 관심을 두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여성폭력문제도 관점이 중요하다. 여성폭력을 개인의 결함에 의한 피해로 인식하면 해결책 역시 개인적인 차원에 그친다. 반면 여성폭력의 피해가 사회 구조적 맥락에서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사건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피해자인 여성은 “폭력피해생존자”가 되고, 그 해결책은 사회적, 구조적, 정치적 차원에서 문화와 인식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논의될 수 있다. 이제 여성 폭력의 사회 구조적 맥락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여성폭력을 가능케 하는 한국의 사회 구조적 맥락은,


한국사회에서 여성폭력의 원인이 되는 사회 구조적 맥락으로서 강사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제시했다. 가부장에 의한 지배체제인 가부장제는 제도이기도 하지만 이데올로기, 즉 신념으로 작동한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남아 있는 가부장제의 유령은 가족제도 내에서도, 사회구조 속에서도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가부장제의 물적 기반으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더욱 강화시킨다. 분단체제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 역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상호작용과 함께 작동한다.



가부장제를 한 장으로 요약한다면. 출처: 텀블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맥락은 어떻게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가?


위의 맥락들은 개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심리적 차원이 얽혀서 하나의 틀, 즉 시스템을 형성한다.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여러 규범과 관습이 상호작용하면서 여성에게 체계적으로 억압을 가하는 기제가 된다. 억압을 폭력이라는 물리적 형태로만 보는 것은 낡은 개념이다. 착취와 주변화를 통해 억압집단에 무력감을 심어줄 뿐 아니라 지배적인 문화로 정상과 비정상성을 구분한다. 지배집단의 문화를 정상, 우월한 것으로, 억압받는 집단의 문화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역사를 뜻하는 단어가 남성적이라는 것에서부터 남성의 언어와 문화, 예술로 여성의 경험이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억압의 기제는, 억압의 행위자와 피해자 모두 그 체계를 인식하기 어렵게 한다.


특히 자본주의는 여성의 생존권을 박탈함으로써 가부장적 권력을 더욱 강화한다. 여성은 임금노동으로부터 배제되고,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과 여성 가계부양자 모델이 안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경제적 자원을 많이 소유한 사람의 권력이 강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의 물리적 의존은 심리적 의존으로 직결된다. 이를 통해 남성의 여성 지배가 쉽게 이루어진다. 남성에게 가족을 부양할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가장으로서의 권력을 쥐여 주는 것이다. 가난한 여성은 폭력 피해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며 강사는 폭력 가정의 예시를 들었다. 폭력 가정의 가장은 여성이 직업을 갖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경제적 종속을 통해 여성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여성의 노동에 대한 동일한 임금과 가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사는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여 여성을 사적인 영역, 즉 가정에만 위치시킨다. 가정에서 여성은 순결, 정조, 돌봄, 양육, 가사노동 등의 성 역할을 강요받는다. 회사와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의 영향력은 발휘하기 어렵다. 가정폭력 방지법을 제정하려던 국회의원에게 제기된 반박 중 하나는 사생활 침해라는 것이었다. 흔히 말하듯, 비바람은 집에 들어갈 수 없지만, 법이나 정책은 가정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가정은 가장의 법에 의해 지배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것은 가장 정치적이다.” 가장 사적인 영역을 통해서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사적 영역은 가장 공적인 영역이 된다.


이러한 논의는 누가 사람인가의 질문과 관련이 있다. “사생활 침해”라는 문제 제기는, 남성만을 개인으로 보는 관점에 의한 것이다. 가정은 개인인 남성만이 존재하는 곳이고 가장의 법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성차별주의, 계급차별주의, 인종주의, 서구 중심주의, 비장애인 중심주의, 이성애주의 등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권력관계의 역동 속에서 인간의 범위가 결정된다. 이러한 범위에서는 백인 서구 중산층 비장애 남성만이 개인으로 간주된다.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정체성은 사람의 범위에서 끊임없이 배제된다. 가정폭력 방지법이 사생활 침해이듯, 가정폭력은 사람을 때린 게 아니라 ‘집’ 사람을 때린 것이고, 히틀러는 유대인을 죽인 것이지 살인을 한 것이 아니게 된다.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폭력은 여전히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성적, 심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폭력이 발생한다. 일상생활에서도 폭력이 끊임없이 자행된다는 것이다. 강간, 성희롱 등의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성적 위협이나 음란 전화와 같은 행위도 폭력이 될 수 있으며, 신부 화장이나 아내 순사와 같은 제도도 여성 폭력이다. 더 나아가 전족, 과도한 다이어트, 성형수술이 강요되는 사회 분위기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국가에 의해 자행되고 묵인되는 군 위안부와 같은 성적 폭력도 있으며, 무력 분쟁 하에서 살상, 강간, 인종청소와 같은 폭력도 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신생아를 안고 있던 여성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성애의 현장이 아니다. 민족을 말살하려는 폭력이 휩쓸고 간 피해생존자들의 모습이다. 특수 상황에 있는 소수 민족, 난민 등에 대한 폭력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의 군대에서 끊임없이 행해지는 문제적 폭력 역시 이러한 특수 상황의 일종이다.


이러한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시선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사건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여성 폭력은 여성의 생존권, 건강권, 성적 인격권 등 인권침해의 문제이다. 여성 폭력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여성 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하다. 더 이상 여성폭력은 일탈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사회 구조적 맥락이 얽혀 여성 폭력이 재생산되고, 여성 폭력이 행해지는 과정에서 그 폭력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가 더욱 공고해진다. 나는 어디에 위치해서, 어떤 입장에서 여성폭력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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