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거기 잘 있나요?
완두|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오르테가는 말한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녀를 존재하게 하는 데 참여하는 것,
그녀가 부재할 수도 있는 세상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이라고.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中
혹시, 아시나요? 우리 한국여성의전화 문을 열기 위해서는 발을 디딜 때마다 무릎이 턱 끝에 닿을 것만 같은 이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합니다. 헐떡거리는 가쁜 숨으로 ‘요즘 것’들의 체력을 몸소 증명하며 오르고 있노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여기를 오를 때 어떤 생각을 할까 말이죠.
매일 아침 이 뻐근함과 마주한 지도 벌써 4개월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완두입니다.
‘여성인권운동’을 한다는 것
사실, 이것은 실로 제겐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혼자 있을 때 가장 평온함을 느끼고, 소수의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한 가지 일에 몰두하길 좋아하고, 말하기 공포증, 무대공포증 등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대부분의 일에 큰 불안을 느낍니다. 이런 제가 ‘기센’ 여자들이 잔뜩 상주한다는 ‘여성단체’에서, 말만 들어도 부담감 폭발하는 ‘활동가’라는 이름의 명함을 판다니요. 이건 저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완두’라는 활동명까지 본인이 직접 지어서는, 우리나라 대표 여성단체 중 하나인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라고 소개하고 다니고 있더랬지 뭡니까?
이렇듯 저는 처음부터 ‘운동’을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게 여성의전화가 알려준 것이 있습니다. 저는 13살 때, 아빠 쪽 집에서 엄마가 며느리라는 이유로,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힘겨웠던 나머지 더 이상 그 집에 가지 않겠다는 편지를 써 부모님 침대 머리맡에 올려놨습니다. 17살 때는 다른 언어를 경험해보고 싶어 수화동아리 활동을 했고, 18살 때는 내 친구에게 여자애가 매일 교복 바지를 입는다며 뒤에서 욕하는 아이의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소심한 복수를 했고, 22살 때 여성학 수업을 통해 성(sexuality)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후로는 줄곧 이에 관련된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일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아빠와 서먹한 관계로 있었고, 수화는 쓸 일이 없어 다 잊어버렸으며, 어깨를 쳤던 아이에겐 곧바로 미안하다 사과해야 했고, ‘돈 안 되는’ 직업에만 매력을 느끼는 콩깍지가 씌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여성의전화는 “잘했다”고 합니다. 내가 느끼고 말하고 행한 그 모든 것들, 내가 살아내고 살아갔던 일상 자체를 의미 있는 운동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욕구와 능력만큼 운동의 모습도 다양할 겁니다. 활동가로서 내가 하고 싶은, 내 속도에 맞는 운동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사람들과 만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은 머리아프지만 설레고 신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든 고민을 쌓아두고 사는 저는 여성의전화 열혈 신입활동가입니다. 그리고 여성폭력피해생존자의 말하기, 전국에 있는 회원들이 보내주시는 회비와 바자회 물품, 회원들과 함께 가는 재판 모니터링과 기자회견, 여성인권영화제를 찾는 관객들, 캠페인 참여자들, 지금 이 시간 본인의 일상을 멋지게 살아내고 또 서로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운 여성인권운동가입니다.
지금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여성의전화에 오기 전 저는 청소년시설에서 게시판상담을 통해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당시 내담자는 저에게 있어 힘이 없는 사람, 도움이나 정보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에서 경험하는 상담은 달랐습니다. 내담자의 용기 있는 말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주변의 자원을 활용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는 힘, 사회 구조적 문제를 발견하고 행동하는 의지와 실천력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이곳에서 본 상담은 우리 경험의 어두운 면을 직면하고 더 나은 삶을 함께 고민하고 가꾸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동기가 되어주는 일이었지요. 내담자와 상담자라는 관계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인생의 전문가로서 서로에게서 여성주의를 배우고, 누리고,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종이에 뿌려진 잉크가 아닌 사람을 통해 배운 것들은 이렇듯 제게 읽기와 쓰기가 아닌 말하고 듣는 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물론 힘든 부분도 많습니다. 상담을 할수록 두려움을 느끼는데,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발견보다 그래서 내가 아는 척 할 여지가 있음을 발견하는 두려움입니다. 나 아닌 이의 사적인 경험과 고유한 정서들을 그의 주변세계와 언어로 살피기 전에 내 세계 안에서 판단하는 것,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길을 찾는 것. 그래서 ‘지금 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을까.’, ‘내가 아는 정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포함하고 또 배제하고 있을까’ 따위의 생각들로 가끔 혼자 흠칫 놀라 숨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사는 법
한국여성의전화는 회원과 활동가,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음을 압니다. 학교 운동장이 여학생들의 놀이터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이제까지 공간을 소유하거나 여성연대를 배운 적 없는 저에게 이곳은 여성이 함께 사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사무실 대청소, 운전, 고장 난 기계를 고치고 무거운 짐을 옮기고 나르는 것 모두 우리의 손으로 합니다. 사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물어보고, 마음이 힘들 때 서투르지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도 최근 일입니다. 저는 이렇게 이곳에서 나와 타인을 돌보는 법을 배우고 내가 누구인지 알기 전에 누구인척 하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물론, 이곳에서의 하루가 매일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집이 먼 탓에 평일에는 아침 일찍 나와 모두가 잠들 무렵 집에 도착하고, 주말에는 집에 콕 박혀 요양을 하거나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처리하는 일이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처럼 반복 되는 요즘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을 나의 속도와 체력에 맞게 유연성 있게 계획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다룰지가 요즘 저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저는 앞서 말한 언덕을 오를 때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오르고 또 올라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뻐근함, 여성들의 현실, 그래도 기어코 오르고 난 뒤 만나는 회원과 동료들의 다정한 눈인사와 그들이 가진 힘과 열정을 보며 ‘그래도 참 살만하다’고, ‘살아봐야겠다’고. 제가 언제까지 이 언덕을 오를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언덕을 오르는 것이 내가 다음에 하고자 하는 일의 이유가 될 것임을 압니다.
당신은 당신이 사는 ‘그 곳’의 언덕을 오를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혹시, 아시나요?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가 존재하는데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요. 앞으로 서로의 부재를 느낄 틈 없도록 각자가 선택하고, 만들고, 발견한 바로 그 곳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으면 좋겠습니다. 여성인권운동은 우리가 있는 그 곳에서 시작되니까요.
‘그곳’ 당신의 공간에서 그대,
거기 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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