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성별간 폭력 방지법”을 살펴보며
신동욱 연구관|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박근혜정부 들어 치안과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지는 정책은 ‘4대 사회악 척결’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청의 유일한 치안정책 관련 연구소인 여기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에서도 지난해부터 ‘4대 사회악 연구센터’를 개소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여 오고 있다. 이런 기회에 나는 가정폭력을 주제로 잡고, 몇 해 전까지 유학생활을 하던 스페인의 가정폭력 대책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유학시절 TV방송을 통해 접하던 가정폭력 관련 뉴스보도나 캠페인을 통해 스페인에서도 가정폭력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이 되고 있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었다. 실제로도 스페인에서는 매년 우리의 가정폭력과 유사한 폭력으로 사망하는 여성이 50명 내외에 이를 정도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최소 123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에 의해 살해된 것(한국여성의전화 조사결과)에 비하면 적은 수치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여하튼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된 스페인의 관련 정책들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며 흥미로운 점과 함께 많은 부러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합쳐놓은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한 스페인의“성별간 폭력방지를 위한 종합보호대책법(la Ley Orgánica 1/2004, de 28 de diciembre, de Medidas de Protección Integral contra la Violencia de Género)”이다. 이 법률은 그 세부적인 내용보다도 우선 제목에서부터 매우 흥미롭다. 편의상 “성별간 폭력”으로 옮겨 놓았지만 법명에 “género, 젠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 사용하는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나 violence of famil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법 시행당시인 2004년에 이러한 “젠더”라는 표현의 사용에 대해 그 모호함과 스페인의 현실(그래도 영미국가 등에 비해 보수적인)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보다도 “가정, domestic”이라는 표현은 가정폭력을 본질적으로 사적인 문제로 극심한 경우에만 제3자가 개입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게 하고, “성별간의 폭력”을 “가정의 문제”로 변질시켜 이를 척결하는데 장애가 되는 하나의 커다란 문화적 선입견을 형성하여 왔다는 주장이 보다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한 해당 법은 성별간 폭력의 당사자를 “배우자, 배우자였던 사람 또는 동거하지 않더라도 이와 유사한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으로 정의하여 법률혼의 부부이외에도 사실혼 관계 및 이와 유사한 관계로 비동거 중인 사람을 포함하여 넓게는 교제 중인 연인까지도 포함시키고 있으며, 성별간 폭력방지법에서 대응코자 하는 폭력의 개념으로 “차별의 표현, 불평등한 상황과 여성에 대한 남성의 힘의 관계”로 표현되는 “성적 자유에 대한 공격, 협박, 강요 또는 임의적 자유박탈을 포함하는 물리적, 심리적인 모든 폭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성별간 폭력이란 “남-여 사이에서 힘의 불균형”을 통해 발생하는 “물리적, 심리적 모든 폭력”으로 가해자를 남성으로, 피해자를 여성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가정구성원이라고 하더라도 아동에 대한 폭력이나, 부모에 대한 폭력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여성의 남성에 대한 폭력 역시 다른 형법규정의 적용을 받을 뿐이다.
이제는 왜 법명에서부터 “젠더”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우리의 가정폭력과 유사한 폭력에 맞서려 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게 된다. 2004년의 스페인 사회는 이 법을 통해서 폭력, 특히 부부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가해자는 전통적으로 남성이며 문명사회에서 최우선 적으로 척결되어야 할 폭력으로 적어도 이러한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여 법명에서부터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최근 매 맞는 남편 등 기존의 가정폭력과는 그 양상이 반대인 경우의 사건들이 가끔 매스컴 등을 통해 전해지고는 있다. 당연히 이러한 남성 피해자도 법과 우리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힘의 불균형을 이용한 수많은 폭력과 그 피해여성들을 생각한다면 10년 전인 2004년의 스페인 입법자들의 전향적인 의지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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