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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43기 여성주의상담 전문교육생들과 함께한 966회 수요시위

by kwhotline 2011. 5. 18.

 지난 수요일, 서있기만 해도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곳에 다녀왔다. 모두 바쁘게  일만 보며 살아가지만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모르고서야 결국 자신의 상처도 모르는 법이다. 20년째 지속되는 시위가 또 있을까? 2008년 FTA반대 촛불시위 또한 아무리 해도 FTA가 체결되고 이렇게 많이 사람들이 시위하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허망했는데, 매주 빠지지 않고 20년을 지속하는데도 수요시위에서는 그런 허망함 보다는 오히려 희망이 있는 듯 했다.


매주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갈색의 건물 굳은 철창 앞에 노란 옷을 입고 앉아계시는 할머니들이 계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머니들은 의연하게 앉아계신다. 11시 반 정도에는 그냥 행인만 있는 것 같던 일본 대사관 앞이 12시가 임박하자 곧 사람들로 붐빈다.


사진. 모여서 율동연습을 시작한 43기 여성주의 상담교육 교육생들

대사관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김홍미리 선생님과 함께 43기 교육생들 몇 분을 만났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다들 오셔서 정신없는 통에 <바위처럼>과 <지금처럼 당당하게> 노래연습을 시작했고, 웬만큼 모인 후에는 다 같이 <바위처럼>의 율동을 연습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할머니들을 태운 차들도 도착하면서 이번 수요시위가 시작되는 듯 보였다.


시작과 함께 사회를 맡으신 분은 43기 교육생이신 강수정 선생님이 맡으셨다. 매 순간 마이크가 있음에도 혼신을 다해 소리를 지르면서 까지 열정적으로 사회를 진행한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는 몇 안 되는 외국 분들을 위해 간단한 영어 통역까지 하시는 센스를 발휘하시고 끝까지 열정적인 진행으로 966회 수요시위를 이끌어 주셨다.


사진. 제 966회 수요시위 할머니들 뒤로 43기 교육생들이 준비한 플랜카드가 보인다.

참석한 30여명의 43기 교육생들 외에도 이번 수요시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시위 시작 전 뒤쪽에서 도시락을 먹던 볍씨학교 학생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시위에 참석했다.


블라인드를 내려버린 붉은 벽돌의 건물 앞에 철창, 그 앞에 경찰들, 그 앞에 출입금지 라인, 그 앞에 할머니들, 그 뒤에 우리가 서있었다. 이런 대치상태가 매주 벌어지는 대사관앞에서 할머니들은, 경찰들은, 대사관 안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한국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에서 경과보고가 이어졌고, 얼마 전 기사에도 났던 일본 지진피해를 지지하는 움직임으로써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송신도 할머니께 성금을 전달한 이야기와 지진은 지진이고 시위는 시위다 라면서 시위를 지속하는 협회의 의지를 드러내주셨다.


사진. <바위처럼> 율동 공연을 하는 43기 교육생들

 

드디어 43기 연수생들의 바위처럼 율동공연이 이어졌다. 다들 할머니들 뒤로만 서있다 삼십 여명의 여성들이 앞으로 나오니 시위에 활기가 돋는 듯 보였다. 이윽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본격적인 율동 공연이 시작됐다. 이 공간, 이 시위 안에서 진행되는 이 율동공연이 어떤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순간만큼은 딱딱한 시위라는 것보다 그 곳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힘찬 몸짓이었다.


이후 간략한 참가자와 단체소개 뒤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자유발언은 참가자 중에 자진 신청하여 발언할 수 있는 기회인데, 43기생 중 3분이 발언을 하셨다.

첫 번째 발표자 조이미진씨는 수요시위를 알고도 뒤늦게야 왔노라며 이야기 하였고 할머니들의 안부와 일본 정부에 분노하는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쓴 편지글을 낭독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김희정씨는 도대체 그 세월을 어떤 마음으로 사셨을까하는 걱정으로 시작하는 편지글을 낭독하셨고, 마지막으로 홍소연씨는 할머니들의 입장에서 내면적으로 성찰하고 분노를 터트리는 편지글을 써서 낭독했다. 그 이후로 볍씨학교 남학생과, 1인 시위를 하시는 남성분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치 그 이야기에 대한 대답인 것처럼 길원옥 할머니의 발언이 있었다.13살 때 공장에서 일도 배우고 돈도 벌게 해준다는 말에 부모님께도 말없이 그냥 쫒아갔던 그 시절. 그 이후로 하루를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말씀이 뼈에 사무친다. 경험해보지 못한들 어떻게 그 고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후 성명서 낭독과 함께 수요시위를 마쳤다. 성명서의 첫 마디는 “진실은 늙어도 죽지는 않습니다.”

라는 짧은 문구였지만 할머니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그를 지지하기위해 천 번에 이르는 시위가 열릴 동안 아무런 대꾸도 없는 그 대사관 앞에서 울린 외마디에는 뼈가 있었다. 시위를 시작하실 때부터 할머니들은 나이에 병마에 계속 돌아가셨다. 하지만 여기에 참가하는 우리가 이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시위를 한다.





사진. 발언해주신 길원옥 할머니

시위가 끝나고 정리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경찰들도 긴장을 푼다. 사람들은 재빨리 떠나지 못한다. 다들 남아서 할머니들 한 분 한분과 인사를 나눈다. 이렇게 오래 지속되어온 시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힘껏 휘날리는 일장기를 바라본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철문을 지키고 서있는 경찰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정리한다. 또 다음 주를 위해.


* 수요시위 참가를 위한 팁 *

본인도 이번 취재를 통해 수요시위에 처음 참가했다. 존재를 알아도 혼자 가기는 뭔가 쑥스럽고 어떻게 하고 가야할지도 모르겠고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분들을 위해 짧은 팁을 소개한다. 복장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대체로 자유로운 편이다. 기사에 쓴 바와 같이 가서 서있기만 해도 참가에 한 몫 하는 셈이 되고, 가능하다면 자유발언을 신청하거나 플랜카드를 만들어 가면 금상첨화!



한국 여성의 전화 기자단 '고갱이' 조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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