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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마초혐오자가 페미니스트로 거듭나는 방법

by kwhotline 2013. 10. 30.

마초혐오자가 페미니스트로 거듭나는 방법



  오랜만에 만난 한 선배와의 대화에서 의외의 얘기를 들었다.

  “너 페미니스트였더라?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페미니스트처럼 보이는 건 어떤 것일까. 그보다 먼저 그 단어가 일컫는 건 무엇일까.


  내가 페미니스트처럼 보이지 않았다면 나는 더 노력해야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더 강하고 빈번하게 불편함에 대해 딴지를 거는 모습을 보여야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너 진짜 페미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공포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른다. 낙인을 찍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를 처음 접하는 과정에서부터 느껴왔던 느낌이다. 공포를 느끼던 친구들과 나는 처음에는 까페에서 학회를 진행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여성주의 도서를 책상에 올려두고 여자애들 셋이서 섹스나 자위에 대해 언성을 높이는 일은 꽤 겁이 나는 일이었다. 우리는 학교 주변의 자주 가던 까페가 아니라 인적이 드문 곳의 구석에서 학회를 하곤 하였다. 우리는 하나가 아닌 셋이 모이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보통의 배타적인 사람들 속에서는 예상만큼 쉽게 용기를 낼 순 없었다.


  피아노 연주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피아니스트와 여성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 페미니스트 사이에는 직업과 취향 등과는 관계없이 모종의 큰 다른 점이 존재한다. 다름 아닌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는 이미 여성과 여성주의에 대한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페미니스트는 특이하고 편집증에 걸린 이상한 소수 집단인 것 마냥 여겨지기도 한다. 심지어 그에 맞는 외모나 기가 센 성격, 까칠한 대화 방식같이 전혀 무관한 것들까지 연관되어진다. 또 나아가,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성희롱과 무관한 일에도 성희롱을 들먹이며 여성 우월을 주장하는 히스테리적인 여성이라고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은 의외로 정말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느꼈던 공포의 정체는 여성주의 혐오에 대한 것이었을까? 밥 그린은 이에 대해 "페미니스트라는 용어에는 그들이 연루되고 싶지 않은 불유쾌한 의미가 함축되어있다. 주류 페미니스트의 신념을 사람들에게 모두 내보인다면 그들은 그 신념에 완전히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하더라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얼른 부인할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결국 그 애매모호한 거부감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여성 운동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아 하며, 심지어 관심을 두고 있는 나와 같은 이조차도 그러한 거부감을 겪게 될 수 있다. 거부감을 갖는 나를 비겁하게 여기고 그런 나에 대한 또 다른 혐오가 줄줄이 이어지기도 한다.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과 예민한 젠더 감수성을 사랑하는 마초 혐오자인 내가 여성주의 혐오에 대항하여 페미니스트에 맞서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 혐오 역시도 사회의 주류 시선이 만들어낸 허상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헛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급진적인 여성 운동가인 벨 훅스의 말을 소개하면서 이와 관련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싶다. 먼저 여성 대부분이 앞장서서 여성 해방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탈피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페미니즘의 왜곡된 의미를 타파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회복시키고 유지시켜야 한다. 이때 여성들은 자칫하면 계급과 인종과 같은 이질성의 장벽에 부딪힐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서로를 소외시키는 현상을 경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이 올바른 연대를 이어나가야 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훌륭한 연대의 주체가 된다. 남성을 적으로 간주하는 태도 역시 경계하며 함께 인정하고 지지해야 한다.


  페미니즘이 정체성이나 생활 방식으로서 과도하게 강조되는 일 역시 문제다. 페미니즘에 대한 고정관념은 나날이 고착되어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페미니스트라는 고정관념화된 정체성과 역할, 행동 방식으로부터 스스로 메여있는 걸 중단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표현보다는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편이 좋다. 언뜻 보기에는 같은 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후자의 표현 방식은 ‘나는~이다.’는 말이 풍기는 일종의 절대주의를 내포하지 않으며, 서양 사회의 모든 지배체제에서 이데올로기 핵심 요소인 양자택일의 이분법적 사고를 하지 않도록 한다. 선택을 하고 페미니즘에 참여하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라는 의미도 내포함으로서 주체를 더욱 능동적이게 만들기도 한다. 페미니즘에 참여했다고 다른 정치적 운동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은 아니며, 결국 페미니즘은 단지 어떤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매일 매일 많은 곳에서 여성 혐오를 경험할 수 있고, 내가 들었던 설명하기 난해한 질문 역시도 얼마든지 앞으로 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또 다시 그런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 때처럼 난처한 표정만 짓고 있지는 않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내가 지지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편안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다. 조금 더 여유가 된다면 그들에게 함께 페미니즘을 지지해보자고 권유해볼 수도 있다. 여성 혐오자로 보였던 사람들도 알고 보면 마초 혐오자인 친구들이 더러 있다. 새로운 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이 결국은 사소해보이면서도 아주 정치적인 행동이 아니던가!


 

한국여성의전화 대학생기자단 3기 신영민

(blizzard2424@nva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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