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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인터뷰: 남초 집단에서 일하는 여성 IT 편

by kwhotline 2019. 12. 11.

<미생> 보다 매운 맛

남초 집단에서 일하는 여성 IT

 


인터뷰어 : 나눔, 중헌, 선영

인터뷰이 : 설록



직군 내에서 여초 집단이라 불리는 곳은 극소수입니다. 널리고 널린 남초 집단에서 일하는 회원 중 특히 남초 집단이라고 불리는 IT업계와 잠수부 업계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여성 회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남초 집단 내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함께 보시죠!



바쁘게 일하는 개발자의 손



Q :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설록 : 저는 금융계의 시스템 운영을 하고 있어요. IT는 제가 입사한 8~9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반적으로 전공이 별로 구애받지 않는 업계인 거 같아요. 비전공자의 IT 참여도가 높은 시대이기도 하고. 문과인 제가 충분히 가능했으니까요. 프로그램 구현을 위한 비즈니스 이해도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Q : 근무하시는 분들 남녀비율은 어떻게 돼요?

설록 : IT 쪽은 상대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에요. 금융권은 되게 씁쓸한 얘기인데 직군에 따라 여성 비율이 달라요.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8~9년 전에 80명을 뽑아놓으면 그중에 여자가 3명이었어요.

       동일임금을 주장할 때 그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게 동일직군 또는 동일한 노동의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부터 차이가 생기다 보니까 평균을 내보면 당연히 여성임금이 형편없을 수밖에 없거든요. 다양하지 못한 직군에 근무하고, 기회도 적게 주어지니까요. 예를 들어 종합직으로 전체 관리를 하고 임원이 될 수 있는 직군은 거의 남성이죠. 영업장, 보험설계사 같이 사람을 만나는 쪽은 거의 다 여자죠. 보험설계사 출신 임원은 없을걸요.

 

 

바쁘게 일하는 페미니스트 일꾼


Q : 그럼 정규직이나 팀장급의 성별 비율은 어떤가요?

설록 : 제가 일하는 곳은 정규직 비율로 봤을 때 성별 비율이 여자가 1이고 남자가 3이었어요. 근데 금융은 80명 중에 여자가 3명이라고 했잖아요. 거기에 비교하면 많지만 여전히 다수는 아니죠. IT 운영은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업무인계가 가능하도록 해놓는 것을 지침으로 삼거든요. 업무 연속성이 보장되다 보니 기혼 또는 유자녀 여성이 비교적 많이 일하는 분야예요.

       그리고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주로 남자를 많이 떠올리잖아요. 꼬질꼬질한 남자 너드 개발자. 근데 그 옆에 분명 똑같이 후드 뒤집어쓴 꼬질꼬질한 여자가 있어요. 언급되지 않을 뿐이죠.

       임원이나 관리직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정규직에서만 놓고 보면 여성이 직급 올라갈 때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저희 업무부장이 우리 회사에서 최초 여성 부장이에요. 운영팀이 100명이면 그중에서 여자 부장이 1명이구요. 전체 계열 합해서 여성부장이 2명인가 3명 있는데 백 명당 한 명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제 상사는 결혼을 안 하신 분이었고 나머지 분은 결혼한 분이에요.

 

 

Q : 여성 리더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되나요?

설록 : 여성 부장인 그분은 회사에서 여성의 대명사라는 상징성을 가지게 되잖아요. 여성 부장 혼자고 그것도 싱글이라는 면에서요. 이를테면 개인적인 결점을 분명 갖고 있을 수 있죠. 그런데 그 점이 비혼 여성의 결점으로 비추어지게 되고 노처녀히스테리로 이름을 붙이게 돼요. 많이 익숙하죠. 저조차도 일하면서 생각을 두 번 하게 되는 거죠. 다른 남자 상사에 대해서는 저 사람이 남자라서 저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상사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리고 예를 들어 퇴사를 여자직원이 했어요. 그럼 저 혼자 생각해요. 왜 또 여자만 퇴사를 하는 걸까. 그 사람이 분명 사정이 있겠지만요. 저희 부서에서 하필이면 여성 3명이 연속으로 나갔는데 저한텐 의미 부여를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냐면 육아휴직 남자가 일단 안 쓰죠. 그러니까 육아휴직 쓰고 퇴사한 남자도 없죠. 퇴사한 여자직원 사연을 들어보니까 본인들은 일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는데 부부 둘 중에 일해야 한다면 당연히 남자가 일하고 여자는 포기를 강요받은 거예요. 여자 선배가 회사 복귀한다고 인사까지 왔었는데 막판에 시댁이랑 결정하는 과정에서 잘 안 됐다고 하더라구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구조를 보면 여자가 많기는 많은데 임원은 없고 부장도 고작 하나 있다 보니 저 혼자 마음이 복잡해지는 거죠. 여자라서 고과를 나쁘게 받은 적도 없지만 사실 길게 보면 여자는 육아를 한다면 2~3년은 손해 보는 거겠죠. 저희 회사 남자 직원 중에 육아휴직 쓴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일하다 잠시 쉬는 일꾼 설정샷


Q : 여성의 개인적인 특성이나 선택이 대표성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거네요.

설록 : 직장을 떠나는 여성 동료를 보면 양가감정이 들어요. 남자 상사들이 흔히 드는 논리 중에 하나가 여자가 퍽 하면 나가서 못 쓰겠다.’라고 하죠. 퇴사하는 직원을 응원을 해줄 수도 있는데 네가 나랑 같이 버티고 연대해서 같이 벽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명예남성화된 여자 선배를 보면 롤 모델이 없다는 게 슬플 때가 있어요. 비혼인 여자부장님을 롤 모델로 삼아야 되나 혹은 저렇게 되지 말아야 되나 끊임없이 고민에 시달려요. 저분이 남자였으면 깊게 생각 안 했을 거 같은데 같은 여성이고, 유일하게 한 명이고 결혼을 안 했으니까 여차하면 저분처럼 될까 안 될까 그 생각을 엄청 지울 수가 없어요. 그분이 보여주는 명예남성적인 측면들이 되게 마음이 아팠다가 저래야 살아남는 거야. 생존전략의 하나로 이해도 했다가 받아들였다가 분노도 했다가 혼자 막 생각이 엄청 많은 거죠.

       동기를 포함한 저희는 그 부분이 싫어도 그런 소수의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만들려면 우리가 계속 살아남아서 수를 늘려주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진짜 이 회사 더럽게 나가고 싶은데, 때려 치고 싶어 죽겠는데 내가 안 나가고 자리에 남아야 후배들도 이 자리를 바라볼 수 있다. 이런 느낌. 제가 일단 목표하는 거는 생존이에요. 많은 여자들의 생존.

 

 

Q : 일하고 계신 업계에 대해 '여자보다는 남자가 가는 곳'이라는 편견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 IT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다른 여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설록 : <히든 피겨스> 영화도 그렇고 테크니컬 한 분야가 여자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군 정보부에서 암호해독 하는 부서도 다 여자였잖아요. 그랬는데 어느 순간 추앙받고 각광받고 중요해지면 여자의 일이 아닌 게 돼버리거든요. 컴퓨터 다루는 일은 원래 여자 일이었어요.

       대표성을 가지는 얼굴은 빌 게이츠, 앨런이지만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 ‘주파수 도약을 발명하여 와이파이, 블루투스, GPS에 영향을 미친 헤디 라머, ‘디버그의 개념을 만든 그레이스 호퍼 등 여성의 얼굴도 있어요.

       제일 확신하는 한 가지는 IT 계열이 수요가 많다는 거죠. 국비로 학원에 다녀서 배우면 자격증을 따는데 세 달 정도 걸리지만, 진입장벽은 낮은 거 같아요. 여자가 주도하는 스타트업 강연도 열리는 거로 알고 있고 IT는 여성이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참여를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회원 인터뷰 <미생> 보다 매운 맛 : 남초 집단에서 일하는 여성 산업잠수사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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