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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죽거나 죽이거나, 그 후 : 가정폭력 가해자 사망사건 정당방위지원팀 원민경 회원 인터뷰 2편

by kwhotline 2019. 8. 9.

죽거나 죽이거나, 그 후

: 가정폭력 가해자 사망사건 정당방위지원팀 원민경 회원 인터뷰 2편

 

인터뷰어 : 박수현, 박선영, 박중헌

인터뷰이 : 원민경

 

가정폭력의 끝은 죽거나 죽여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폭력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거나, 가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인권과 정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가정폭력을 사적인 일로 치부하는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가정폭력 가해자 사망사건 정당방위지원팀 담당 변호사이자, 한국여성의전화 이사 및 여성평화를위한변호사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원민경 회원을 인터뷰하였습니다.


회원 인터뷰 진행중인 회원 인터뷰단과 원민경 회원


Q : 최근 기사 중 7년간 가정폭력을 당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은 2심에서 8년을 선고받았고, 반대로 가정폭력을 행해온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사건의 경우 가해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정당방위를 떠나서 이러한 양형 차이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원민경 :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CCTV로 증거물이 있지 않으면 재판부가 폭행 치사, 상해 치사로 형을 선고하는 편이고, 사람을 죽일 의도 없이 때렸는데 갑자기 사망했다고 판단하면 집행유예가 나오기도 해요. 형사 유죄판결 내림에 있어서는 오래전부터 해온 살인 예고보다는 그날 당시 상황이 고려되는 편이에요. 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려 온 마지막 순간, 오늘 어쩌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에 가정폭력 가해자가 잠을 자거나 고개를 숙이고 등을 돌리거나 하는 등으로 직접적인 폭력을 행할 수 없을 때 방어행위에 나아가게 되죠. 그러나 가해자는 오랫동안 부인이나 여자 친구를 폭행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일상적이었다는 이유로 상해치사가 선고되는 모순이 있어요.

 

Q : 20187월 최근까지도 가정폭력 피해자의 가해자 살인사건은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가정폭력 이외에 정당방위로 판결된 유의미한 재판 결과가 있었을까요?

원민경 : 며칠 전 정당방위 판결을 하나 받았어요. 현행법상 정당방위가 잘 인정이 안 되는데요. 폭행을 당하던 여성분이 목을 졸리고 겨우 빠져나와 경찰에 신고했는데 남성도 쌍방폭행이라고 주장을 한 거죠. 오히려 남자 쪽에 증인이 있었고 CCTV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너무 힘들어하셨어요. 정식재판을 청구한 이 사건에서 남성의 증언 중 모순이 있었고 여성분이 방어행위를 할 당시의 피해 사실을 눈물을 흘리면서도 침착하게 잘 증언하셨어요. 피해자가 침착하게 잘 증언하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초기부터 공감과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여성의전화 지부 상담소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선고유예라도 되면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해소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정당방위를 인정받았어요.

 

다양한 폭력 피해 사건을 법원에서 재판할 때 보면 판사가 경청하고 공감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어요. 원하지 않는 판결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조정절차에서 재판부가 피해자에게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때로는 변호사의 공감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피의자 개인에게는 국가의 일부로 느껴지는 재판부가 공감을 직접 이야기한다는 것이 또 다른 힘이 되죠.

 

회원 인터뷰에 참여하고 있는 원민경 회원


Q : 그렇다면 재판의 결과는 판사 개인마다 다른 걸까요?

원민경 : 제도와 법은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것이지만 그 제도와 법을 적용하는 것은 개개인의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피해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의무적으로 여성폭력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대법원 성희롱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젠더감수성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잖아요. 저는 그 판결을 가정폭력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피해자의 다양한 연구 사례는 물론이고 피해자가 처한 상황, 어떤 경우와 어떤 맥락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지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 앞으로도 가정폭력 피해자의 가해자 살인사건 등 정당방위가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어려워 보이는데, 재판부가 변할 수 있을까요?

원민경 : 정당방위 등 피해자를 위한 변호를 오래 해왔지만 계속 유죄만 나오다 보니 의지가 많이 꺾이게 돼요. 법원에 근무하는 대학 동기에게 가정폭력 상황을 재판부가 공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물어보니 법원도 사건과 법원에 제출된 기록을 통해서 공부한다고 말해 주더라구요. 그래서 저희 변호사들이 여러 기록과 판례를 가지고 판사를 설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사건을 조사하는 처음부터 검찰이 피의자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진술을 받을 수도 있고요. 그때는 조금 다른 방향의 질문이 던져질 수 있겠죠.

 

회원 인터뷰 진행중인 회원 인터뷰단과 원민경 회원


Q : 마지막으로 기소율도 낮고, 열악한 상황에서 가정폭력 등 사건으로 고민하고 있을 피해자에게 한마디 해주시겠어요?

원민경 : 저는 가해자가 형사 처벌을 제대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한 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해자로부터의 보호처분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행해온 폭력의 그늘에서 걸어 나와 우리 손을 잡는 것. 그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 진행 전, 가정폭력 정당방위 사건으로 단 한 번도 무죄가 나온 적이 없다고 하여 인터뷰를 진행할 때 가슴 답답한 이야기들만 접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며 조금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을 자책하는 피해자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은 많은 사람의 공감과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칠흑 같은 길이라도 그 길 어디에는 횃불을 흔들며 서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삶을 살아내는 모든 분을 존경합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 너를 위해 여기 있다!”라고 힘차게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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