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인터뷰:
‘56년만의 미투’, 세상에 알린 오연서 회원 인터뷰
작성 | 회원인터뷰단 아라
인터뷰 | 회원인터뷰단 아라
강제로 키스하려는 사람의 혀를 깨물면 내 잘못일까? 언제까지, 어느 부위까지 폭행을 당해야 정당방위로 인정될까?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인 1964년 5월 6일 저녁 경남 김해(이하 '부산'으로 사건 발생 장소 지칭)의 한 마을. 피해자는 18살이었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친구들을 따라오던 가해자 노 씨는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길을 물어본 후 갑자기 피해자를 길바닥에 쓰러뜨린 뒤 입을 맞추고 성폭행을 시도했습니다. 피해자는 계속 도망가려고 하다가 노 씨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오자 혀를 깨물며 저항했습니다. 이때 노 씨의 혀가 잘렸습니다. 이후 가해자 노 씨는 친구들 10여 명과 함께 피해자의 집에 불법 침입해 부엌에 있는 칼을 들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두 달 이상 계속된 조사에서 검사는 “가해자랑 결혼하면 간단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등 강압적인 수사를 하면서 피해자를 협박했습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혀를 절단한 행위가 정당방위였다고 계속 주장했지만, 결국 재판부는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판결문에는 “가해자 노 씨가 대담하게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는 데 (피해자 최 씨가) 어느 정도의 보탬은 되었다는 도의적 책임이 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6개월 동안 구속된 채 재판을 받았고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판결에 피해자는 56년이 지난 후에라도 정당방위 인정을 받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56년 전 부산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6일 한국여성의전화 소모임인 ‘회원인터뷰단’은 ‘56년 만의 미투’,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사건의 피해자를 취재한 오연서 회원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연서 회원은 한겨레신문에 2018년 입사해 사건 팀에서 활동 중인데요. 이날 함께 나눈 얘기들을 공유해 드릴게요.
온라인 회의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오연서 회원(기자)
■ 56년 동안 바뀌지 않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질문: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 사건의 취재를 맡은 계기가 궁금해요.
지난 5월, 오랫동안 한국여성의전화 회원이었던 팀장 선배에게서 이 얘기를 처음 듣게 됐어요. 조금 더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선배가 한국여성의전화를 소개해 줬죠. 한국여성의전화에선 선생님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선생님은 56년 전 사건을 잊지 않았죠. 공부를 향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고 나중엔 대학에 들어갔어요. 나중에 선생님은 미투 뉴스들을 접했고, 결국은 56년 전 사건을 재심 청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선생님의 용기에 응답하려면, 저 역시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질문: 이 사건을 취재하고 관련 기사를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직접 만난 선생님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지난 일을 얘기해 주셨어요. 그러나 선생님 인생에선 이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56년 전 사건이긴 하지만 아직 종결되지 않은 사건이에요.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정의를 실현할 방향으로 가려면, 재심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채 쓰여있던 판결문을 다시 쓸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꼭 기사에 담고 싶었어요.
선생님은 56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이 의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지금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선생님에겐 이 사건은 종결되지 않은 채로 남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는데 집중했어요.
질문: 부산에서 직접 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지금껏 기자 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기자로 일하면서 가장 많은 반응을 끌어낸 기사였어요. 정말 많은 기자 선배와 동료들이 이처럼 한마음으로 응원해 준 기사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첫 기사가 나간 뒤엔 선생님이 너무나도 큰 관심을 받아 방송 인터뷰에 시달렸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에 귀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기사였는데요. 본의 아니게 고통스러움을 드린 건 아닐까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첫 인터뷰 땐 너무 떨렸죠. 또 뵙기 어려울 거 같아서 그날 하지 못했던 말을 편지로 써서 전달하기도 했었어요.
질문: 이 사건에서 꼭 알리고 싶던 것은 뭐였죠?
선생님의 재심 청구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판결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현재 사법부가 내리는 판결도 마찬가지예요. 요즘도 판결문을 보면,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여성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판결들이 많거든요. 이 사건을 통해 가해자 중심의 판결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귀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질문: 2018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한 뒤에 ‘버닝썬 사건’,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을 취재했죠. 여성의 인권에 관심을 둔 계기는 무엇인가요?
기자 준비할 때도, (한겨레신문에) 입사할 때도 특정 사안이나 분야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무엇을 취재하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있었죠. 그런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추상적인 꿈은 있었어요.
2018년도 입사하고 지금껏 사회부에만 있었는데요. 버닝썬, N번방… 일하면서 마주한 사건 사고 가운데 여성이나 젠더 이슈가 없었던 적이 없었어요. N번방은 전형적인 성범죄 사건이었어요. 버닝썬은 클럽 폭행 사건으로 시작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결국 ‘불법 촬영’이라는 고질적인 범죄가 있었죠. 그런 것을 보며 사회부 기자로서 젠더 이슈에 관한 감각을 공부하고 나만의 가치관을 세울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 어떤 여성의 몸도 화폐처럼 교환될 순 없다
질문: 한국여성의전화에 가입한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한국여성의전화를 알고 있었고, 기자가 되고 나선 취재하면서 인사도 드리곤 했었는데요. 부끄럽게도 가입은 늦었어요. 선생님 인터뷰를 하면서 올해 가입했거든요. 기자로서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관심을 갖고 더욱 공부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질문: 성폭력 재심 청구 말고도 성폭력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일들이 많잖아요. 이런 시선은 왜 계속 지속되는지, 현장을 취재하며 느낀 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N번방 사건에서 이슈가 되었던 숫자는 회원 ‘26만 명’이었어요. 일부 남성들은 “거기에 26만 명이 있느냐?”라고 하거나, “말이 안 된다.”고 했어요. 정말 26만 명이냐고 제게도 묻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러나 회원 수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그곳에 100명이 있었든 1,000명이 있었든 그들에게 범죄의식은 전혀 없었거든요. N번방 회원들은 범죄를 보고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어요. 신고한 사람도 없었죠.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미 우리 사회에선 어떤 여성은 벗어도 되고, 어떤 여성의 몸은 화폐처럼 교환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예요.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은 과거부터 지금 2020년까지도 계속 이어져왔잖아요. 이것이야말로 여성 범죄를 계속 일으키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피해자들은 나서서 피해 사실을 고백하길 주저해요. 피해를 구제해달라고 신고하는 것도 주저하게 되니까 사건은 해결되지 않아요. N번방이든 무엇이든, 엄벌주의로 사법주의가 제대로 판결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지만요. 결국은 우리 고정관념을 바꿔야만 범죄는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 여성을 향한 폭력, 여성 혐오 없는 세상은 올까요? 이런 사건들이 화제가 되고 난 뒤에도 피해 여성의 삶이 회복되려면 일상에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아마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와 회원들이 가장 잘 아실 거예요. 운동을 개척해나가고 있으니까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나 여성 혐오 발언에 관해 그 자리에서 “이것은 아니”라고 지적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우리가 감시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잖아요. 저는 성범죄 재판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 방청 가시는 분들이 존경스러워요. 재판 방청 같은 활동은 실제로 재판부엔 압박이 될 수 있어요. 국민 법 감정에서 멀어진 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활동을 하는 분에게 언론은 마이크를 쥐여주어야 한다고, 저도 다짐하게 됩니다.
질문: 지난 4월 <에스콰이어>에 쓰신 기사를 봤어요. 이렇게 말씀하셨죠.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기사가 나가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회, 여전히 활보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더욱 조롱하는 가해자들, 기사를 통해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에 새로 참여한 사람들의 존재, 보도 이후에도 나에게 ‘대화 좀 하자’며 위풍당당하게 텔레그램으로 말을 걸어온 박사 조 씨의 행동이 나를 힘들게 했다.”
바뀌는 것 같은 게 없거나, 변하지 않는 가해자를 볼 때마다 힘든 마음이 들 때도, 아침에 일어나 지금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우선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취재하다 보면 생각보다도 사회에서 반응이 없고 변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오히려 기사 때문에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준 건 아닌가 싶을 만큼 변하는 게 없을 땐 무력감을 느껴요.
그럼에도 무력감에 지는 것은 오히려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잖아요. 비록 제가 기사 하나를 쓴다고 해서 당장 무엇이 변하진 않겠지만, 차곡차곡 쌓이면 결국 바뀌게 될 거예요. 당장 변화는 없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읽을 수 있는 기사들을 더 많이 써서 관심과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도 하면서 그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질문: 나중에 60살이 된다면,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세요?
이 질문은 너무 어려웠어요(웃음). 기자와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기자란 직함을 갖고 일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한국여성의전화 회원일 것 같아요.
기자로 활동하는 동안엔,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쁜 시간이 될 듯해요. 60살 이후엔 제가 직접 여성들을 찾아가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인터뷰: ‘56년만의 미투’,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사건의 변호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수정 회원
https://hotline25.tistory.com/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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