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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우리는 함께할 때 더 강하다 - 2017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만들기

by kwhotline 2018. 1. 4.


우리는 함께할 때 더 강하다


2017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만들기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윤선혜



 11월 16일, 매서운 바깥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2017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만들기: 여성주의 미디어 워크숍 1차’가 진행된 한국여성의전화 2층 교육실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지역주민들과 함께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고민을 나누고자 시작된 지역사회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2011년에 그 첫발을 뗐다. 본래 한국여성의전화가 위치한 은평구 지역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번 워크숍에는 은평구 주민뿐 아니라 서울의 여러 지역에서 온 여성들이 함께했다. 한국여성의전화 폭력 예방 강사인 장미숙, 홍혜선, 윤희근, 최경숙 강사는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같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다”며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이끌었다.





우리가 겪어온 집단 최면, 영화 <걸파워>


 참가자들은 여성주의 미디어에 관한 토론에 앞서 제7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인 <걸파워>를 감상했다. 1970년대 여성운동에서 탄생한 단어인 ‘걸 파워(girl power)’는 여성이 희생자 혹은 약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었다. 영화는 ‘걸 파워’라는 단어가 미디어, 시장 논리와 만나며 어떻게 변질되어왔는지를 조명한다.


 바비 인형은 ‘말괄량이 카레이서’가 되어서도 딱 붙는 옷을 입고 분홍색 레이싱카를 탄다. 광고 속 빈틈없이 아름다운 여성 모델은 우리에게 “아름다워지려면 이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름다움은 곧 여성의 힘(girl power)이 되었다. 미디어는 왜곡된 ‘걸 파워’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등장시켰고, 미디어에 노출된 대중은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이를 내면화했다. 여성은 남성이 원하는 아름다움을 목표로 자신을 가꾸고 검열한다. 남성은 여성을 재단하는 동시에 자신을 ‘남성성’ 안에 가둔다. 사람들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 줄 알고 예뻐지려고 하거나 예쁜 여자를 쫓았다.


 참가자들은 영화 <걸파워>를 보며 느낀 복잡한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아주 어린 아이들마저도 전형적인 ‘미’를 내면화한 모습에 분노하고, 자신마저도 이러한 미디어에 종속되어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겪은 성차별 사례들을 터놓으며 답답해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얘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에게 <걸파워>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자, 우리가 겪어온 집단 최면이고, 걸파워(girl power)를 소유한 맨파워(man power)를 향한 날 선 비판이었다. 한 참가자는 “성 상품화는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고들 하지만, 상품은 구매자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애초에 사람을 상품으로 보는 자본주의의 문제”라며 문제의 본질을 짚었다.

 



여성의 눈으로 신문 읽기


 영화 <걸파워>를 보며 분노를 가득 충전한 참가자들을 위한 다음 순서는 실제 신문이나 잡지, 정부에서 발행한 안내․홍보 책자를 읽으며 그 안에 숨겨진 여성 혐오를 찾아내는 활동이었다. 먼저 참가자들은 방송심의규정 제30조 양성평등에 관한 항목, 인권위원회와 기자협회가 제정한 성범죄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기사 작성 및 보도 주의사항을 확인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양성평등)

① 방송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한다.

② 방송은 특정 성(性)을 부정적, 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방송은 성차별적인 표현을 하거나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① 잘못된 통념 벗어나기

② 피해자 보호 우선하기

③ 선정적, 자극적 지양하기

④ 신중하게 보도하기

⑤ 성폭력 예방 및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도 관심가지기



“실제로 존재하는 규정인지” 질문할 정도로 참가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다들 숱하게 접해온 성차별적이고 자극적인 뉴스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더라도 기자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유명무실한 규정들이다. 


 다시 한번 차오르는 분노와 함께 참가자들은 세 조로 나뉘었다. 참가자들의 눈은 쉼 없이 자료들을 읽어나갔고, 가위와 풀을 든 양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입으로는 ‘이 표현은 왜 여성 혐오인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은 예시를 붙이도록 한 전지 세 장이 꽉 들어찼다. 조 이름을 적을 자리조차 남지 않았고 “더는 붙일 자리가 없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여성 혐오적 표현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참가자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는 ‘독박골F(페미)언니’, ‘화났조’, ‘기분이별로조’라는 조 이름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경숙 강사는 “조 이름만으로도 오늘 워크숍이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며 웃었다. 


 참가자들이 찾아낸 예시로는 돌봄 노동, 요리 등에 여성 이미지를 사용해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드러낸 그림부터 내용과 무관하게 헐벗은 여성 모델 사진을 넣은 광고까지 다양했다. 의류 광고에서 남성 모델은 검은색을, 여성 모델은 밝고 화려한 색을 입는 점, 다이어트 전후 사진에서 여성과 남성의 몸을 바라보는 구도의 차이 등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예시도 꼼꼼하게 다뤘다. 긍정적인 예시로는 여성 전문가의 인터뷰를 실은 기사들을 꼽았다. 







 모든 활동을 마친 교육장 안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활기찼다. 한 참가자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걸파워> 영화와 함께 우울하게 시작했지만 웃으며 끝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같은 시선으로 화내고, 웃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공통된 소감이었다. ‘프로불편러’ 혹은 ‘너무 예민한 애’ 취급을 받으며 “자발적 왕따”까지 자처해야 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참가자들은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 듯하다.


 우리에게는 여성주의를 말하고, 자신이 겪은 부당한 차별을 참지 않고 드러내고, 서로를 위로할 공간이 너무도 필요하다. “내 눈에만 보이는 불편함”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얻고 더 나아갈 힘을 얻는다. 지역 사회 내에 여성주의 네트워크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함께할 때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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