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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여성 폭력에 맞서는 자기방어훈련

by kwhotline 2017. 12. 18.


여성 폭력에 맞서는 자기방어훈련



한국여성의전화기자단 지원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폭력,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이가 있을까. 겁을 먹는 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으슥한 골목이나 혼자 걷는 밤길에 대해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궁극적으론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사라지도록 해야 하지만, 일상적인 공포를 해소하고 위험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여성들은 현관에 잠금장치를 추가하고, 밤에 탄 택시의 번호를 외우기도 한다. 호신용품만큼이나 호신술을 익히는 것도 종종 추천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호신술’은 여성들에게 유용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까?


 지난 7월 21일 1시, 파주 홍원연수원에서 진행 중인 가정폭력 피해 10대 여성 리더십 캠프의 5일 차 프로그램으로 <성폭력 문화에 맞서는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 강의가 열렸다. 강의는 ‘한국형 여성 호신술’로 알려진 ASAP(Anti Sexual Assault Program)의 권민정, 김기태 강사의 진행으로, 설명뿐만 아니라 시범과 참여자들의 체험 및 토의로 구성되었다.





호신술은 ‘승패’의 영역이 아니다


 강의는 캠프 참여자들과 강사가 동그랗게 둘러앉아 자기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호신술에 대해 알고 겪은 바는 저마다 달랐지만, 대부분 ‘실제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워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호신술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화려하고 복잡한 무술을 생각하지만, 그걸 보고 ‘위험한 상황에서 나도 저렇게 해볼 수 있겠다’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무기력한 기분에 대해 권민정 강사는 “몸을 움직여본 경험이 별로 없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하다”며, “내 몸이 갖는 장점은 무엇이고, 위급한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호신술과 관련한 통념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여성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위협적인 상황’을 상상하거나 그에 대해 대응한다고 할 때, 흔히 ‘어차피 여성보다 힘이 센 남성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강사는 호신술이 누군가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이긴다’는 개념이 아님을 설명했다. 이기고 지는 일은 수많은 제약이 있는 환경에서, 비슷한 체급의 사람들이 시합할 경우에나 가능한 판정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현실의 위급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가장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것이다. 단순히 ‘힘과 체격’의 차이로 모든 결과를 예단할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갖는 유리한 수단과 주변 요소들을 활용하는 연습이 중요한 것이다.



‘나’에서 시작하는 자기방어 훈련


 기본적인 설명이 끝난 뒤, 단계별로 구체적인 대응 방식과 원리를 배울 수 있었다. 첫 번째 훈련은 ‘소리 지르면서 달리기’였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재빠르게 도망치는 동시에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는 것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매우 기초적인 행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참여자들은 다리를 무릎 높이까지 번갈아들어 올리면서 제자리에서 뛰고, 강사가 신호를 주면 제자리 뛰기를 유지한 채로 가능한 한 크게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해봤다. 결과는 어땠을까? 참가자들은 소리 지르면서 달리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달리니까 소리가 안 나오거나, 소리를 내다 보니 어느새 달리기는 멈춰있었다. 


 다음으로, 소리 지르는 일에 집중하는 훈련이 이어졌다. 옆 사람에게만 들리는 매우 작은 숨소리에서 시작해, 내가 여태껏 내본 적 없는 정도의 큰 소리까지 단계적으로 내보는 훈련이었다. 앞선 훈련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소리가 큰지 작은지, 혹은 스스로 낼 수 있는 소리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소리, 하지 않는 행동은 몸에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선 내가 원하는 대로 활용하기가 더욱 어렵다. 자기방어를 위한 호신술 첫 단계는 이처럼 나의 몸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내가 가진 힘을 가장 강하게 쓰는 법 : 밀기, 당기기, 비켜 돌기, 주저앉기


 소리내기와 기본적인 손동작을 배운 후에 ASAP 호신술의 ‘메인 콘텐츠’ 네 가지를 알아보았다. 여기서부터는 나를 위협하는 상대와 거리가 가깝거나 신체적 접촉이 발생하는 경우, 가해자의 공격을 무력화하고 나를 방어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권민정 강사는 설명에 앞서 상대적으로 몸집이 더 크고 다부진 체격의 김기태 강사를 효과적으로 밀어내고 공격을 차단하는 시범을 보였다. 내가 가진 힘을 가장 크게 쓸 방법과 자세를 연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의를 환기할 수 있었다.  


 ‘4대 원리 운동’은 밀기, 당기기, 비켜 돌기, 주저앉기였다. 운동마다 기본적인 자세와 원리를 설명한 후, 이에 한두 가지 요소와 팁을 추가해 기술을 더욱 분명하게 익힐 수 있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운동인 밀기의 경우 먼저 ‘가슴 밀기’라는 기본자세를 통해 상대의 힘에 밀리지 않고 버티는 것으로 시작했고, 여기에 ‘걸어나가기’, ‘양팔 밀고 버티기’, ‘지나가기’ 등의 추가 동작을 배웠다. 구체적인 자세를 세세하게 외우는 것만큼 중요한 점은 원리를 이해하고 내가 직접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참여자들이 서로 짝을 지어 연습하고 자세를 고민하면서, 단순히 힘과 체구의 차이가 아니라 자세와 힘을 쓰는 방식에 따라 충분히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호신술, 오늘의 안전을 위한 또 하나의 선택지


 끝으로 강사는 배운 것을 활용해 짧은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며 강의 내용을 정리했고, 참여자들의 소감을 들어봤다. 참여자들은 비록 다섯 시간 정도의 집중 수업이었지만, 유용한 기술을 배우면서 자신감을 느끼게 됐고, 앞으로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의지를 표하기도 했다. 한편 상대적으로 범죄에 더욱 노출된다는 이유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까지 해둬야 한다는 점이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도 공감을 샀다. 


 강사는 서른을 넘긴 후에 운동을 배우면서 겪은 생각의 변화를 말하며, “체구와 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자신 있게 호신술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당연하게도, 호신술을 사용하게 되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써보지 않은 나의 몸을 만나면서, 내가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더 많은 걸 해보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수업을 정리했다. 물론 여성들이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호신술 외에도 다양한 변화가 필요할 것이고, 궁극적으론 호신술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이를 돕는 자기방어 호신술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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