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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2016 신입회원만남의날_F-day

by kwhotline 2017. 1. 10.

우리는 어떤 자장(磁場)을 그리게 될까?

한국여성의전화 김부정은 회원

 


첫 번째 신입회원만남의 날 F-day에 참가하시는 회원 모습

 

 

 12월 21일, 첫 번째 회원모임이 있었다. 비가 정말 많이 오던 날이었다. 김홍미리 선생님의 강의로 모임을 시작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김홍미리 선생님은 페미니즘을 살아있게 하는 건 “승리가 아니라 영향력”이라고 했고, 뭔가 멋있는 말 같아서 적어두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회원 선생님들과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김홍미리 선생님이 “페미니즘은 인식론이자 실천운동”이라고 했던 말을 듣고 머리가 와장창 깨지는 것 같았다. 그 전까지는 페미니즘을 인식론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제주지방경찰청에서 주차장에서 일어나는 여성대상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 스스로가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의 카드뉴스를 올린 것을 보고 항의댓글을 달았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아는 것과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는 ‘말하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어서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일기를 적다 보니 내 이야기는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는 김홍미리 선생님의 영향으로 항의 댓글을 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시작했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다는 건 어떤 자장磁場 안에 속하게 되는 일 같다. 들었던 말, 읽었던 책, 다른 선생님들과 나눴던 대화들이 자장을 이루고 계속 나를 끌어당긴다. 나를 말하게 하고,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나는 이런 생각까지 해본다. 내가 항의댓글을 달았던 제주지방경찰청은 며칠 뒤 카드뉴스를 삭제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는데 카드뉴스를 삭제한 건 어떤 힘이 그들을 끌어당겨서가 아닐까? 그렇담 내가 그들을 잠시 어떤 힘의 자장 속으로 끌어당겼던 건 아닐까? 페미니즘을 살아있게 하는 건 승리가 아니라 영향력이라고 말할 때, 나는 초등학교 시절 과학 교과서에서 봤던 철가루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장을 따라 바쁘게 움직이던 철가루들. 어떤 철가루들은 곡선을 그리며 휘기도 하고, 어떤 철가루들은 위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움직이던 철가루들이 또 하나의 자장을 이루고, 또 그 자장을 따라 다른 철가루들이 움직이고, 또 그렇게 …. 나는 철가루들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그림들이 무한하게 이어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페미니즘을 말한다는 건 ‘나’라는 철가루에서 시작되는 무한한 자장을 그려보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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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입회원만남의 날에 참가하시는 회원 모습

 

 

 12월 28일, 두 번째 회원모임이 있었다. 강남역 살인사건, 낙태죄 폐지 운동 등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모임을 시작했다. 이번 모임에서는 내가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됐던 순간에 대해 적고, 각자가 돌아가면서 댓글을 달아주는 워크샵을 진행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됐던 순간? 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는 평소 집에서 ‘여성’인 엄마와 나, 명절날 친척집에서는 여기에 큰엄마와 이모들까지만 일해야 했던, 그래서 일하는 내내 불만이었던 경험을 적었다. 다른 회원 분들의 이야기를 보고서야 나는 워크샵의 주제를 이해했다. 회원 분들의 이야기 속에는 남성들과 일상적으로 맺는 관계에서의 이야기가 많았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에 노출되고, 또 그 폭력을 용인했던 이야기. 남성들과 있는 자리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말들, 여성을 비하는 말들을 들어야 했던 이야기. 한 선생님이 쓰신 글 중에는 이런 게 있었다. “그때 난 내 몸이 ‘여성’의 것임을 알았다.” 나는 이 문장이 너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몸은 언제나 ‘나’의 몸이 아니라 ‘여성’의 몸으로 환원된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에게는 어떤 순간들이 있었지? 남자 선배들이 자꾸만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또 술에 취해 스킨십을 해왔다. 남자 동기들이 “화장 쫌 하고 다녀라”라고 내 얼굴에 극성맞은 소리를 해댔다. 주변의 남자들이 나의 마른 몸을 두고 “남자가 좋아하겠냐”, “애는 낳을 수 있겠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댔다. 술 취한 아저씨들이 밤에 달리기를 하러 가는 내 몸을 계속 쳐다봤다. 그렇담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지? 남자 선배들이 나를 귀여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다리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털이 없는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이런 순간들을, 이런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불쾌한 일 정도로 넘겼고, 자주 잊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내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그 순간들이, 그 느낌들이 자꾸 나를 작게 만들고, 우습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도 정작 내 경험들은 읽어보려 하지 않았다. 이제 나를, 나의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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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신입회원만남의 날에 참가하시는 회원 모습

 

 

 1월 4일, 마지막 회원모임이 있었다. 선생님들과 새해 인사를 건넸다. 이번 모임에서는 차별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들을 고민해 보았다.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내가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어디 가서 이런 말 하지 마”처럼 상대방이 지금 얼마나 촌스러운지를 알려주는 말부터 “넌 성차별주의자야?”, “그럼 넌 왜 화장 안 해?”, “제가 남자 좋아할 것처럼 보여요?” 같이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며 허를 찌르는 말까지. 듣는 것만으로도 꼭 내가 그 말들을 내뱉은 것처럼 통쾌했다. 평소 같았으면 부풀고, 또 부풀어 올라 잠들기 전까지, 아니 잠에 깨서도 내 방 안에 가득 차 나를 짓눌렀을 여성혐오의 말들이 순식간에 바람 빠진 쪼그라든 풍선이 되었다.

 

 나는 내 친구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하고 나서부터, 친구들이 말을 걸어왔다. 나, 이런 일이 있었어. 나, 이런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내 친구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필요했구나. 다들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구나.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고, 여전히 그렇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하는 친구들과 만날 때면 하고 싶은 말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넘친다. 우리는 도대체 그 말들을 어디에 그렇게 담아두고 살아가는 걸까? 우리에게 말은 얼마나 간절한 것일까? 얼마 전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가 잠깐 한국에 들어와 만났다. 친구는 내게 자신이 회사에서 겪은 이상한 일,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은 일을 말했다. 나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화를 냈다. 이번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문득 그 시간을 떠올렸다. 친구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는데. 그날 친구랑 ‘우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도 고민해 볼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제 친구들과 만나면 담아두었던 말을 나누는 걸 넘어서, 새로운 말들을 많이 고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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