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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우리'들의 '말하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by kwhotline 2016.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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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늦은 7시에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기념하는 집담회가 열렸다. 한국여성의전화와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이 함께 주최한 이번 집담회는, 젠더폭력에 대한 ‘말하기’의 쟁점과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다. 피해당사자/연구자/법조인/지원자/페미니스트 위치를 오가는 6인의 여성들과 함께한 뜨거운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직 더 많은 ‘말하기’가 필요하다!

 

집담회는 최희진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말하기’는 대개 ‘폭로’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젠더폭력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일상에 만연해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지치지 않는 말하기 덕분에 현재의 제도와 인식이 마련될 수 있었다. 말하기를 어렵게 하는 가해자들의 역고소가 있어왔지만, 젠더폭력 관련 법·정책 마련과 데이트폭력 이슈의 대두 등은 결국 말하기의 결과였다. 이렇듯 말하기가 더 많은 말하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험에 대한 더 많은 ‘말하기’가 필요하다고 최희진은 강조했다.

 


 

생존자 지평선과 김재희 변호사의 발언에서 젠더폭력 말하기의 어려움과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었다. 생존자 지평선은 성폭력 사건 후 수사과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수사 과정에서는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로 인해 ‘말하기’의 장벽이 높다. 가해자들과 지인들의 거짓말, 그리고 수사관들과 법관들의 젠더규범 역시 ‘말하기’를 어렵게 한다. 어렵고 긴 법정싸움도 벅차지만, 피해자들은 그 속에서 2차 가해까지 견뎌야 한다. 김재희 변호사에 따르면, 법적 판결은 해석의 문제인데, 그 관점은 주로 법관 및 수사관들의 관점이다. 이들에 의해 피해 여성들의 전형성이 규정되고, 그들의 목소리는 ‘사소한’ 것으로 축소된다. 하지만 ‘전형적인’ 피해자는 없으며,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전혀 사소하지 않다고 김재희는 말했다.

 

허민숙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도 '말하기'의 어려움과 필요성을 동시에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강력한 ‘젠더규범’은 여성과 젠더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 성폭력 무고에 대한 신화 등을 통해 여성들의 '말하기'를 어렵게 한다. 그러나 허민숙은 공고한 젠더규범은 남성들의 두려움의 반증이라고 지적하며, 여성연대와, 연대를 통한 ‘함께’ 말하기가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후 셰도우 핀즈의 Y와 동국대학교 철학과 학생회 이소진의 이야기에서도 이어졌다. Y는 가해자의 보복성 고소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들을 공유했다. 보복성 고소는 말하기를 어렵게 하는 주범이다. 하지만, Y의 발언을 통해 이기는 경험의 공유가 더 많은 말하기와 변화로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소진은 학내 젠더폭력 사건을 대응과정을 공유하며, 성폭력 사건 이후 반성폭력 자치규약 마련, 성폭력 사건에 대한 회칙 개정, 여성주의 소모임 창설 등의 변화들은 앞으로의 변화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말하기’들

 

여는 이야기가 끝난 후 종합토론이 시작되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싸워온 6명의 이야기는 많은 질문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사내 및 학내 성폭력 등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말해지지 않은 젠더폭력이 얼마나 많은지를 증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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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교수의 성폭력 및 데이트 폭력에 대해 공론화하려고 준비 중인 참가자는 학 내에서는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는 교수가 가해자여서 더욱 공론화가 어렵다고 했다.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총학생회 역시 남성중심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연대할 단체가 거의 없다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말하기 이후 피해자가 짊어져야 할 짐도 그리 녹록치 않다. 특히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 사건일 경우, 관계 단절에 의해 피해자가 견뎌야 하는 불이익이 상당하다. 학 내 및 직장 내 성폭력이 사건발생 직후 말해지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말하기 이후 피해자에게 가해질 수 있는 위협도 또 다른 어려움이다. 한 참가자는 지인이 피해사실을 어렵게 말해 가해자가 중징계를 받게 되었는데, 보복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실제적인 위협이 없으면 보호받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말했다. 더불어, 주변사람들의 반응 역시 ‘말하기’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학 내 성폭력 사건 공론화 이후 사람들이 해당 사건을 단순히 가십거리로만 소비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말하기 후 명예훼손, 모욕, 무고 등의 역고소/기소를 비롯한 법적 공방의 과정도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허민숙 연구활동가는 피해자의 고소취하나 성폭력 무혐의 결과를 무고라는 논리로 피해자를 이른바 “꽃뱀”으로 간주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성폭력 무혐의라는 결과는 수사기관이 증거확보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피해자가 진술을 철회하는 것에는 수사관들의 고정관념, 경찰의 부정적인 언질, 법적 절차의 부담감, 주위사람들이 받는 피해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며, 이를 두고 ‘성폭력 무고가 문제다’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식’한 것이라며 일격했다.

 

 

“여기, 우리가 있으니, 시간을 갖고 함께 갑시다.”

 

말하기를 둘러싼 위협과 난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그 과정 역시 새로운 ‘말하기’의 시작이었다. 참여자들은 “분명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여기, 연대자들이 있으니 차분하게 변화시키자”, “권력관계에서 지지 말자”, “초조하고 불안한 것은 가해자들이지, 피해자가 아니다”, “우리의 말하기는 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옳음은 인정받게 되어 있다”는 말들로 서로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용기를 북돋웠다. “말하기가 더 많은 말하기를 만든다”는 이야기처럼, 집담회를 통한 경험의 공유는 ‘말하기’를 가로막는 성별권력을 공략할 전략을 세우는 기회가 되었다. 또, 여성들의 연대를 확인하는 기회이자, 그것을 통해 맞서 싸울 용기를 얻는 장이 되었다.

 

함께 말하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강하다. 더 많은 ‘우리’의 ‘말하기’와 승리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에 들릴 수 있도록 싸워나가야 할 것이다.

 

 

경은_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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