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 법제화, 나와 세상을 받아들일 용기

다큐멘터리 <사회학자와 곰돌이>


최호연 페미디아


감독(오른쪽)과 통화하는 사회학자 이엔 테리(왼쪽) / 사회학자와 곰돌이(SOCIOLOGIST AND POOH, 2015)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현명한 결론을 내릴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당연히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갓 스무 살이 된 2년 전의 난 "동성 결혼 법제화까지는 지지하지만, 동성 부부의 자녀 입양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 정리가 안 됐어" 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어쩐지 남성 양육자와 여성 양육자의 돌봄을 골고루 받아야만 아이가 건강하게 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굽히기 싫었고, 동성 부부의 자녀 입양에마저 동의하는 '너무 멀리 나간 사람'으로 보이기 싫다는 이유 모를 마음도 있었다. 약자의 인권이나 정치적 존재로서의 내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본 적 없었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한 흑역사다. 비슷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아마 나 말고도 많겠지. 


이러한 우리를 위로하는 듯, 사회학자 <이렌 테리>는 영화의 막바지에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은 자기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걸 싫어해. 그건 본인이 과거에는 틀렸고 지금은 맞는다는 걸 받아들이는 꼴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생각의 변화는 '틀림에서 옳음으로의 과정'이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언제나 '틀린'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어.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의 이면을 말하다 <사회학자와 곰돌이>


<사회학자와 곰돌이>는 2012년 9월부터 2013년 5월까지, 프랑스에서 진행된 동성혼 법제화와 관련된 논의의 진행에 대한 영화다. 감독은 사회학자 이렌 테리와의 대화를 통해 지금껏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실은 얼마만큼의 투쟁과 변화를 거치며 만들어졌는지, 의심의 여지 없이 무언가가 '당연하다'는 믿음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틀어막혀 왔는지를 보여준다. 


고용주의 아이를 갖게 되어 더럽다는 소리를 들으며 주인집에서 쫓겨난 이렌의 증조할머니, 아빠 없는 아이라는 불명예를 씻어내고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결혼을 택한 이렌의 할머니, 2차 세계대전 후 연인과 결혼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간 이렌의 어머니, 그리고 결혼 제도 자체에는 회의적이었지만 파리로 발령을 받기 위해 연인과 시청에서 간략하게 결혼식을 올린 이렌 본인. 네 세대를 거치며 결혼 제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요소들도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동성 간의 결혼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하는 시대가 왔다.


"성소수자들은 왜 하필 지금에서야 결혼할 권리를 요구하나요?"라는 감독의 질문에 이렌은 답한다. 오래전 성소수자들은 자기의 성적 지향을 숨기고 이성과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서 겉보기에 '정상'으로 여겨지는 삶을 살아냈다고. 결혼 제도밖에서 배우자 몰래 동성 애인을 만나는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다 베이비 붐 세대의 성소수자들이 이성 배우자와 가정을 만드는 이중생활을 택하길 거부하고 벽장 속에서 빠져나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식을 기르며 가정을 이루고 싶어 하는 성소수자들도 여전히 있었다고. 여자와 남자가 만나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편적인 모델로 내세우는 이성애 중심적 사회는 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성소수자들을 침묵시켜 왔다. 그 안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지켜내고 주장해온 동성애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고, 이제야 비로소 대중 다수의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동성혼 법제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에 필요한 건 동성애자가 아니라 아기들이다" "엄마와 아빠가 있는 가정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등의 구호를 내걸고 시위를 한다. 성소수자들을 존중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거라며,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보편적 본보기로 여겨질 순 없다고 말하면서 본인은 호모포비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미 동성 커플에 의해 길러지고 있는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건 맞지만, 소수의 그들을 위해 법 전체를 갈아엎을 필요는 없다고, 가정이 튼튼하지 못하면 사회도 튼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들과 동성 부부의 입양에 쉽게 찬성할 수 없다고 말하던 2년 전의 나는 대체 뭘 지켜내고 싶었던 걸까. 누구를 위한 주장이었을까. 몇 년 후, 몇십 년 후 우리는 그때 지켜내고 싶어 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어떤 생각을 할까. 부끄러움을 느낄까, 아니면 결국에는 지켜내지 못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아쉬워할까. 




혹자는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꾸리겠다는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사회적 정상성의 구조에 순응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정상적인 본보기로 여겨지는 삶을 누구는 마음 편히 누리지만 다른 누구는 손쉽게 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차별의 증거인데, 이미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사회 모든 정상성의 구조에 맞서 싸우기를 요구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동성혼 법제화가 동성애자 이외의 다른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 정상성을 재생산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두 명이 아니라 세 명 네 명 다섯 명의 사람들이 부부의 연을 맺고 싶어 한다면? 양육자와 피양육자들의 조합이 아닌, 다른 형태의 관계로 가족을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에 따르는 무게를 나누어 짊어져야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그건 세상에서 온전한 1인분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상성의 모델을 거부하고 시위하는 이들만의 몫일까. 


결국, 2013년 봄, 프랑스 의회에서 찬성표 331개와 반대표 225개를 얻고 동성혼이 법제화된다. 이 이후로도 특정 집단에 붙는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조금이라도 지우고자 노력하려는 목소리는 계속 나올 것이다. 무언가가 '당연하다' 혹은 '옳다'는 지금 나의 믿음이 사실은 누군가를 억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깨달음을 받아들일 용기를 우리는 갖고 있는가.





* 여성주의 정보생산자조합 페미디아는, 여성과 여성주의, 여성운동에 관련된 외신을 번역하고, 국내/외 연구를 소개하며, 여성주의적 시선의 비평을 싣는 온라인 여성주의 매체입니다. 최호연은 페미디아 연구소개팀에서 편집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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