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한국 사회의 워보이들에게

by kwhotline 2016. 3. 2.

한국 사회의 워보이들에게


신필규|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리뷰를 쓰기로 결정한 뒤, 나는 내가 난관에 봉착했음을 깨달았다. 이 멋진 영화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분노의 도로가 페미니즘영화가 아니라는 논쟁이 발발한 탓에, 이미 여러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좋은 이야기들을 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독자로서는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지만, 쓰는 사람으로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지 모른다는 사실은 맥이 빠지는 일이었다. 이 사족과 같은 이야기를 서두에 첨부하는 것은, 이 글이 임모탄과 워보이들 그리고 맥스를 중심에 놓은 글이기 때문이다. 분노의 도로는 의심할 여지없이 퓨리오사와 브리더들, 그리고 부발리니족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때문에, 나는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고, 남성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글을 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차적인 이야기라고해서 결코 무의미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영화의 그나마 유의미한 세 남성 캐릭터(임모탄과 맥스, 그리고 워보이들)의 차이를 분석하는 것이, 근래에 발생한 흥미로운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인터넷, 특히 메르스 갤러리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분노하고, 이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크게 표출되었다. 자신들의 언행에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남성들에게, 이 분노의 목소리는 낯선 현상이었는데, 오죽하면 이런 (분노하는) 글을 쓰다니, 당신들이 여성일 수 없다라는 반응까지 나왔을까. 물론 부정적인 반응이 다수이긴 하지만, ‘이런 말들을 들어왔다니, 당신들의 분노에 공감한다는 성찰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이며, ‘남성들이 보여야 할 가장 정의로운 반응은 무엇일까.


 

가부장적 지배체제의 화신 - 임모탄


영화의 초반, 임모탄은 워보이들과 퓨리오사, 그리고 시타델의 주민들에게 연설을 늘어놓는다. 그는 이 척박한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원할 자는 자신뿐임을 강조한다. 그 다음 그는 사막화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물을 제공한다. 하지만 물은 주민들이 임모탄의 말에 주목하게 할 만큼만, 사람들이 그를 숭배해야만 쓸 수 있을 만큼만 제공된다. 이 때 임모탄의 가장 측근에서 그를 보조하는 인물들은, 그와 혈육으로 연결된 아들들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임모탄의 아이를 낳았던 브리더들이 마치 수유하는 기계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 도입부의 묘사는, 극단적인 가부장적 통제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여성사학자 거다 러너에 따르면, 지배계급의 형성은 단지 자원을 축적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계급이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기 위해서는, 지배체제를 영속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이들은 여성의 신체를 통제한다. 지배계급 각각이 여성의 신체를 교환하고(근친을 막기 위해), 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해 적자 이외에는 다른 아이를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를 통해 가부장적 족보를 탄탄하게 만들어, 권력을 상속하는 것이 지배계급 유지의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임모탄 캐릭터를 가부장적 지배체제의 화신이라고 한다 해도,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는 자원(물과 기름)을 축적한 캐릭터다. 그리고 이 자원을 한정적으로 배분하며 시타델의 주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또한 그는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자신의 아들들을 배치함으로서 지배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체제를 영속화하기 위해 여성들을 탈취해 가두어두고, 브리더라는 의미 그대로 아이를 낳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여성을 마치 물건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워보이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시스템, 한 사람의 신체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은 자연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낳을 수밖에 없다. 또한 여성이 지정된 위치를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할 때, 이에 대한 반발도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성 혐오를 수행해온 사람들, 반 여성혐오의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사람들은 임모탄과 같은 존재들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가부장적 통제를 통해 수혜를 입는 계층은 한정적이다. 즉 성별 분업을 완벽히 수행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가지는 주체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가부장제는 분연한 노동을 통해 도달해야할 이상에 불과하다. 이미 부양을 위해 노동시장에 나와 있는 많은 수의 기혼여성들이 이를 증명한다. 분업이 완벽하다면 이들이 여벌의 부양노동을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 가부장제를 신봉하고, 성별에 따른 역할이 있다고 믿으며, 이에 기반한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하는 이유는 하나다. 가부장제가 자신들이 처한 현실과는 무관해도, 이것이 지배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임모탄이 아니며 될 수도 없다. 이들은 워보이들에 불과하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명징하게 반영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구태여 그것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영화 내내, 임모탄이 외치는 구호는 단 하나다. 내 소유물들은 어디 있냐는 것이다.(그는 자신이 이미 소유한 권리를 주장하면 끝이다) 반면에, 그 소유물들(브리더)에게 체제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주체는, 그녀들과 대면한 워보이 캐릭터인 눅스다. 그는 임모탄의 체제가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항해 스플렌디드는, 임모탄이 그와 브리더들을 총알받이와 아이 낳는 기계로 사용했다고 반박한다.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에 따랐을 뿐, 자신은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눅스의 말은, 한국 사회의 워보이들이 공감하는 주장일 것이다. 스플렌디드는 여기에 통쾌한 일갈을 날린다. ‘그럼 세상을 망친 게 누구지?’


 

워보이들이 진정 해야 할 일들


사실 이 영화의 제목에 걸맞게 미친상태인 캐릭터들은 임모탄과 워보이들, 맥스가 유일할 것이다. 임모탄은 권력에 미쳐있으며, 워보이들은 그의 지배에 미쳐있고 맥스는 분노와 생존에 대한 욕구로 미쳐있다.(이에 비하면 퓨리오사와 브리더들, 부발리니족은 분노할지언정 미쳐있진 않다. 이들은 우리는 소유물이 아니라 인간이다라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요구를 던진다) 사실 임모탄이야 그렇다쳐도, 총알받이 신세인 워보이들이나 피 주머니 신세인 맥스의 처지는 오십 보 백 보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영화 내내 극명하게 다른 행보를 보일까.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맥스가 시타델 출신이 아닌 외부인이라는 점이다. 똑같이 도구화된 처지, 종속된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인인 맥스는 거리를 두고 이 시스템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 때문에 임모탄의 허황된 약속은 맥스에겐 먹히지 않는다. 또한, 맥스에겐 체제 내부의 사람이 가진 차별이나 편견이 없다. 그래서 그는 퓨리오사나 브리더들, 부발리니족과 동료가 되는 것이 가능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듣는 것이 가능하고, 때문에 그 주장이 정당하다면 함께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 맥스는 그들에게 진솔한 조언을 건네며, 조력자로서 임모탄의 체제를 무너뜨리기위해 함께 싸움에 나선다.


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거동을 하는 임모탄처럼, 그로 상징되는 체제도 이미 낡았다. 때문에 주인공들이 다시 시타델로 돌아왔을 때, 워보이들도 순순히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통념이 제공하는 틀은 매우 안온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라면 우리는 계속 워보이나 브리더, 혹은 피 주머니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스스로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 편견을 걷고 사회를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 때에,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요구를 하는 이들이 보일 것이다. 한국 사회의 워보이들에게 건네고픈 조언은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군소리 말고 그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줘라. 그것이 당신들의 일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