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 ③] 윤필정씨 정당방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마주하며



윤필정씨 정당방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마주하며

 

유미|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지난 20139,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던 한 여성이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 사건이 오랜 세월 의 가정폭력 피해로 인해 발생한 정당방위 사건이라 판단하고, 법무법인 ()원과 함께 공익소송으로 위 사건의 당사자인 윤필정씨(가명)를 지원했다. 상담회원과 변호사, 로스쿨 학생들이 참여한 정당방위사건지원팀은 1심에서 대법원 선고 재판에 이르기까지 본 사건의 핵심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정당방위 사건임을 입증하고자 노력했다. 거리 서명 운동과 함께 다음 아고라와 뉴스펀딩 사이트에서도 서명 운동을 벌여 총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윤필정씨 사건의 정당방위 인정을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약 1년 반이란 시간이 흐른 올해 2, 대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윤필정씨는 최종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남편이 사건 발생 3일 전 윤필정씨의 목을 노끈으로 조르고 목에 식칼을 들이대고, 사건 발생일 오전 망치로 윤필정씨의 머리통을 부수어버리겠다고 위협한 행위에 대해 재판부는 남편이 윤필정씨를 괴롭히기 위한것이지 실제로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또 윤필정씨가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할지라도 마음만 먹으면도망칠 수 있었다고 하며 이 사건이 남편의 가정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정당방위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작년 5월과 10월에 각각 있었던 1, 2심 판결내용과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윤필정씨의 몸은 20년 넘게 시달려온 폭력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굳어지고 위축됐을 것이다. 윤필정씨에게는 가정이라는 공간이 연일 아무도 모르게 고문당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곳과도 같았을 것이다. 한국사회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가해자 살인 사건 재판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왜 도망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이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고, 실제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정폭력방지법과 제도가 마련돼 있다 하더라도, 그 법과 제도를 집행하는 사람들이 가정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겪는 공포와 오래도록 폭력을 견뎌야 했던 맥락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가 가정폭력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반대로 목숨을 지키기 위해 가해자를 사망하게 하는 불행한 사건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윤필정씨의 자녀 수지(가명)는 가정폭력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무거운 비밀이라고 했다. 비록 윤필정씨 사건은 정당방위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한국여성의전화는 그 무거운 비밀을 가진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분노하고, 피해생존자들을 지지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윤필정씨 사건 지원에 함께했던 법무법인 유()과 본회 정당방위사건지원팀, 그리고 서명에 함께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201410월 발생하여 현재까지 지원하고 있는 가정폭력피해자 정희정씨(가명) 정당방위 사건에도 관심과 지지로 힘을 실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윤필정씨의 딸, 수지에게서 온 편지

 

안녕하세요. 소장님^^ 수지입니다. 메일 확인 잘 했습니다. 오지 않을 것 같고 멀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오네요. 아무것도 모르고 막막했던 20139월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이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1심 첫 번째 공판에서, 선고를 내려줄 것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어렸던 제가 견딜 수 있었던 건 진심으로 안아주고 도와주시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선고 날을 1.2심 두 번 겪어보고 저도 많이 단단해졌는지, 대법원 기각판결에 대해서는 마음이 괜찮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참 울컥하는게... 15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 슬퍼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고생 많이 해주신 감사한 모든 분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무거운 비밀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어렵게 말하고, 남의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방송 그것이 알고싶다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촬영도 하고, 숨 막히는 법정에서 증인을 서고, 엄마를 마주하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버거울 때 건네주셨던 티슈, 1심 선고 날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던 다 같이 먹은 북부지법 앞 칼국수, 부족한 문장력에 밤새 고민해서 썼던 탄원서들,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큰 용기를 받았던 아고라 서명운동, 혼자 끙끙 힘들었던 동생과의 생계를 도와준 모금운동, 인내를 배우게 된 2심 재판과정...수많은 일들이 떠오르고 내 옆에 정말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구나..다시 한 번 깊게 느낍니다.

 

지금은 미뤄두었던 제 삶을 찾아 평범하게 회사에서 열심히 적응하고 일하며 지내고 있는데, 수지로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매사에 더욱 감사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리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많이 보고 싶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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