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 ②] 무고죄 무죄 판결에 부쳐
‘합리적 의심’? 피해자 사라진 법정
2015년 2월 무고죄 무죄 판결에 부쳐
완두|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왜 그 시간에 거길 지나갔습니까?”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묻지 않는다.
“많이 배운 사람이 어떻게 강도를 당할 수 있습니까?” 강도 피해자에겐 묻지 않는다.
“가만히 있었으니 당신도 동의한 거 아닙니까?” 학교폭력 피해자에겐 묻지 않는다.
“사랑하는 관계입니까?” 성폭력 피해자에겐 묻는다.
불의의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가당치도 않은 이 질문을,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합리적 의심' 이라는 명목으로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질문한다.
2013년 12월 말, B씨는 지인에 의한 강제추행으로 상해를 입고 가해자를 고소했다. 하지만 수사과정 중 검사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허위사실로 고소하였다며 무고로 기소하였다. 유독 성폭력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피해 내용을 벗어나 ‘피해 자격’을 묻는 일은, 이번 무고 기소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검사는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간과하고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를 과도하게 적용하고, 가해자와 친분관계에 있는 주변인들의 진술에 근거하여, 어렵게 성폭력 고소를 결심했던 B씨를 무고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세웠다. 이후 B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성폭력피해자라면 당연히 ‘이러해야 한다’는 기존의 편견을 답습한 강압적인 질문과 피해사실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2015년 2월 12일, 의정부지방법원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피고인의 일관된 진술과 이에 대비되는 증인들의 엇갈린 진술, 피고인의 죄를 증명하기 어려운 점 등을 거론하며,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이 있는 검사가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B씨에게 무고죄 무죄를 선고하였다.
여성가족부 2013년 전국성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피해를 경험한 조사대상자 중 단 1.1%만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많은 경우 피해자들은 가해자와의 관계, 평소 행실, 과거 이력 등 피해 당시 상황과 무관한 일로 끊임없이 비난과 의심을 받고, 무고의 피의자로 몰려 유죄판결을 받기도 한다.
법조계 내 고착된 성에 대한 이중 잣대와 남성 중심적 해석의 폐해가 또 한 번 드러난 이번 사건을 통해 검찰은 성폭력 범죄로부터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을 통감하며 자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함께 질문해 봐야 할 것이다.
사회적 범죄인 성폭력 피해를 보는 ‘합리적 의심’은 누구를 위한 기준인지,
성폭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는지,
성폭력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이며, 이 중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지 않겠다."는 99%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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