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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솔직함이라는 요령 가수 오지은 인터뷰

by kwhotline 2016. 2. 25.

솔직함이라는 요령

가수 오지은 인터뷰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그냥,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타인의 기분을 생각하고, 평등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들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사회가 '페미니스트'라 한다면

전 페미니스트인 거죠."



 

가수 오지은의 노래는 난해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지은이 쓰는 가사와 멜로디는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진실일 뿐이다. 오직 청자의 불온한 의도가 그녀의 노래를 이해하기 힘들게 한다. ‘여자 싱어송라이터’, ‘홍대 마녀’, ‘인디 가수에 대한 선입견을 그대로 투영하는 순간, 오지은의 노래는 위협이 된다.

 

모든 종류의 편견과 차별에 반대합니다 고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heaventomorrow)

 

지난 212, 오지은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고백했다. 그녀의 행보에서 새삼스럽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문득 이유가 궁금해졌다. 반갑기도 했다.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33일 상수역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Q. 다른 인터뷰에서는 페미니스트란 타이틀을 가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신 적도 있는데, 이번에 이렇게 선언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오지은 조용히 있으려 했어요. 경계하던 일이거든요. 한국에서는 뮤지션이 정치적인의견을 내는 것 자체에 경기를 일으키는 분위기도 있고. 내가 음악을 듣는 일에 너의 정치적 견해가 방해가 되니까 조용히 있어라, 하는 이유로요. 조용히 지낼수록 환상을 갖고 전설 취급을 해요. 신해철씨가 100분 토론에 출연했을 때, 저조차도 가만히 있으면 멋있을텐데 왜 저렇게 틱틱댈까, 다 손해일 텐데마침표 삭제라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그 분처럼 용감한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고 나서 제가 좀 바뀌었나 봐요. 무슨 말을 듣든, 옳은 일을 한다는 건 되게 멋있는 일이구나. 그 일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요.

 

근데 저는 제가 페미니스트다, 하고 생각하며 산 적이 없는 이유는 그래요. 그냥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나는 페미니스트여서가 아니고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다 말이 안 되는 것들이에요. 그냥,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타인의 기분을 생각하고, 평등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들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사회가 페미니스트라 한다면 전 페미니스트인 거죠. 그 수많은 이상한 일에는 여성의 권익도 당연히 있을 텐데, 그것은 인종이 될 수도 있고. 뭐 다 아는 얘기지만, 그랬네요.

 

Q. 경계하신다고 하셨지만, 말씀은 제대로 페미니스트이신데요? (웃음)

 

오지은 저는 그게 겁났어요. 주변에 페미니스트가 많은데, 제가 놀랐던 건 뭐냐면. 그냥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지하철을 타다가도 깨달을 수 있는 거고. 세상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건데. 이걸 학문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네가 페미니즘에 대해 뭘 아느냐고, 공부하라고 하면 그 때부턴 할 말이 없어지거든요. 공부라는 건 그렇잖아요. 그것도 공부 제대로 했냐, 하면 또 할 말 없는 거고. 오히려 그래서 저는 합리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대학원은 안 가봤지만, 대학원생들은 거의 여잔데 교수는 다 남자라든지. 그럼 뭔가 있다는 거거든요. 그 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게 있지 않나 해요.

 

Q. 그러게요. 그런데 합리적으로 사는 게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오지은 그렇죠. 맞아요. 그러다보니 저는 ‘(비합리적인) 세상에 내성이 없는 것 같아요. 직장 생활을 잠깐 체험해 본 것도 잡지 쪽이라, 여자들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미스 오! 커피 타 와!”는 없는 거죠.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네요. 일을 혼자 하니까요. 첫 번째 앨범도 사실 혼자 제작한 이유가, 첫 앨범은 사람들이 충고를 많이 해주고 이래야 하잖아요. 근데, 사실 여자 뮤지션 프레임이 덧씌워질까봐 무서워서 혼자 했어요. 제 앨범을 제작하는 사람에게 여자 뮤지션이라면 이런 식으로 해야 돼하는 게 있을까봐. 좀 더 나긋나긋한 걸 요구한다든지. 예를 들면, ‘라는 노래에 널 갈아 먹고 싶어란 가사가 있는데, 여자가 이런 가사는 좀 그렇지 않아? 한다든지. 그리고 또 앨범을 내고 나니까, ‘여성의 힘으로 혼자 앨범을 제작하고 프로듀스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니, 음악하는데 남녀가 어딨나, 싶기도 하고. 항상 의아했던 것 같아요.

 

Q. 그러게요. ‘여자 뮤지션에는 그런 게 붙네요.

 

오지은 그러고 보니 제가 프레임에서 빠져나가려는 노력을 많이 했네요. 혼자 기타를 치면서 음악을 하던 시절에, 묘하게 인기가 많은 거예요. 머리가 길고, 긴 치마를 입고, 혼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니까 덮어놓고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2집부터는 연주는 밴드가 하게 하고 혼자 서서 불렀어요. “오지은씨는 혼자 기타 치며 노래하는 여성 포크 싱어송라이터잖아요?”하는 물음에, “아니거든요! 연주는 밴드가 할 거거든요!”하고. 안 그랬으면 더 쉬웠을 수도 있어요. 왜냐면, 편하잖아요. 알기 쉽잖아요. 그런데 오지은은 그런 뮤지션이구나, 하는 것에 대해 계속 도리질 쳐왔던 것 같아요. 거칠고 우울한 음악 한다는 인식에는, <오지은과 늑대들>이라는 작업을 하고. 뭔가 계속 프레임에서 도망쳐서. 되게 헛똑똑이처럼 살아 온 세월이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Q. 그 프레임을 깨기 위한 어떤 도전이 있었을까요?

 

오지은 이렇게 잘 사는 걸 그냥 보여주는 게, 깨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깬다기보다, 그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느는 게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깨지면 좋죠! 근데 이건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싸워서 이기는 방법은 절대 없어요. 오히려 저를 싫어하게 되죠. 그래도 그 사람들과 척지는 게 아니라 바꾸고 싶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여야 한다고 할까. ‘1, 2년 지나서 생각해보니 괜찮았던 것 같다,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여유를 주는 일이랄까요.

 

오지은의 팬층은 여성들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공연장을 찾은 남성들도 여자친구 따라 와 멀뚱히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다른 평론가가 분석하듯, 오지은의 노래 가사가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데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Q. 여성 팬들이 많으시잖아요? 왜 이렇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걸까요?

 

오지은 제가 머리까지 잘라서. 더욱 잘생김을 획득했어요. (웃음) 그냥 옆집 사는 언니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 말씀 해주시는 덴 여러 이유가 있겠죠. 소위 계집애처럼굴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Q. 말씀하신대로, 여태 해 온 다양한 시도에 대해 공감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현재 오지은을 좋아하는 2-30대 여성들이요.

 

오지은 너무 다행이죠, 그럼. 소위 말하는 고민 없이, 큰 어려움이나 고난 없이 컸지만 여전히 뭔가 답답하고. 남성인 동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들이 날 여자로만 보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있으니까, ‘내 야들야들한 구석을 절대 드러내면 안 돼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보면 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강하게 살려고 노력하다 어쩔 수 없이 약해질 때 내 노래를 써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아요. ! 그런 여성들이 새벽 세시에 몰래 듣는 게 제 음악이라는 설이 있어요. (웃음) 처음에는 제 속이 답답해서 했던 음악인데, 이제는 글쓰기도 그렇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앞으로도 보람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Q. 그러게요. ‘페미니스트하면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면 정말 다양한 색깔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다만 어떤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게끔 훈련되어 그런 것 같아요. 그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까지가 참 힘들고요. 그런데 오지은씨는 홍대 마녀라는 별명처럼 거칠고 아픈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발랄하거나 다정한 노래를 쓰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볼 때 3집까지의 앨범은 도무지, 하나의 궤적으로는 해석되지 않네요.

 

오지은 그렇죠. 그러니까 음악적인 면에서는 잘못한 게 맞는데. 명백한 건 이 노래를 통해 어두운 밤을 도움 받았던 사람이, 저 노래를 듣고 다른 도움을 받는 거죠. 인생에 쓴 녹차가 도움이 될 때가 있고, 단 마키아토가 도움이 될 때가 있잖아요. 쓴 녹차만 진열해 놓는 게 멋있는 거 알아요. 그런데 제 인생에는 다정한 위로도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내 노래를 듣는 분들에게 어디까지를 주고 싶냐는 생각을 했을 때, 거기까지 주고 싶었던 거예요. 남녀를 가리고 싶진 않지만 그걸 여자 분들이 더 많이 이해해 주시기는 했어요.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하시면서,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께 추천하시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요?

 

오지은 우울한 것도 괜찮나요? 그렇다면 제가 제일 상태가 안 좋을 때 썼던, 2진공의 밤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여기에 자빠트리면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화자인 제가 여자다보니까 남자들이 짚고 넘어갔었어요. 원래 있는 단언데, . 누가 자빠트리면 누구는 자빠지는 거지, 그랬네요. 하여간 너무 우울해서, 세상이 진공처럼 느껴졌을 때 썼던 노래예요.

 


오지은은 현재 책을 집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대부분이 우울하고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괜찮아진 이후에야 풀어놓는데, 그녀는 이후가 아닌 과정이 궁금했다고 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 할 정도로 힘들 때, 다른 이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집필 중인 책에는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는지에 대한 솔루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자신이 겪었던 아픔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괜찮아지고 나면 별 다고 할 수 있대도, 지금의 나에겐 여전히 별 일인 날에 대한 오지은의 신간을 기다리면서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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