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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서평『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은수연, 출판사 이매진, 2012)

by kwhotline 2014. 8. 14.

 

    ⓒ한국여성의전화 / 대학생 기자단 4기 손상민

 

가장 싫었던 시간에 흘린 눈물.
가장 싫었던 장소에서 흘린 눈물.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수치심을 느껴야하는 것은 가해자다


                                                        대학생 기자단 4기 김하영(hayoungkim9307@gmail.com)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수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였다. 친구는 교양수업의 과제를 위해 읽었다가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내게 내용을 소개해줬다. 그리고 충격적인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신의 피해 경험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인 기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속에서 느낀 바를 그대로 적어놓았는데 그게 거침이 없어서 신기했다는 게 이유다.


친구 말대로였다. '수연'은 거침없었다. 속으로이긴 했지만 아버지가 하는 헛소리에 대해 비웃기도 하고 욕함으로써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집에서 탈출하고 나서는 사이코드라마 모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막말을 하기도 하고 공감 가지 않는 책을 쓴 저자에게 따지러 찾아가기도 한다. 아마 이런 면을 신기하다고 느낀 것 같다.


아버지에게 오랜 기간 성폭력을 당했다면 연약하고 의기소침한 사람일 거라고 보통은 생각한다. 그러나 수연은 약하기만 한 순한 양이 아니다. 책 속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감정에서는 분노와 짜증이 많이 읽힌다. 대부분은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지만 외면하는 여관주인 등 부조리한 주변 환경에 대한 것이기도 했고 무사태평해 보이는 타인에 대한 불만도 존재했다. 이 모든 것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에 저자는 거침없다. 숨겨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때 글 속에다 자신의 고통을 노출하는 것, 그 경험을 되살리는 것에 저자는 괴로움을 느끼고 글쓰기에 회의를 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기록해 불특정다수에게 이야기를 알리게 되었다.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건 가해자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서만 알고 사라질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났다.

 

아마 수연이 몇 번씩 언급한 것처럼 자기 사정만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을 상처준 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수연은 반성하고 있다. 자기에게만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들을 무시했던 시기를 돌아보면서 곁에 있어줬던 친구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거듭 표현한다. 이유가 뭐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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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현실, 그리고 상처를 서서히 극복해나가는 과정

 

대학생 기자단 4기 남정희(db4185@hanmail.net)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덮고 싶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고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았기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현실이라는 사실에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란 수필의 부제는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일기’다. 필명으로 은수연을 사용하는 저자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9년간 친부에게 학대와 성폭력을 당했다. 이 수필에는 힘겹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친부의 성폭행과 학대를 받던 날들에 관한 내용과 그 지옥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차례의 탈출 시도와 그 후 마음의 상처를 서서히 극복해나가며 자립해나가는 과정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친아버지에게 성폭력과 학대를 당하는 동안 무너질 대로 무너진 가족들은 힘없는 한 소녀를 구하기보다 엄마는 딸을 탓했고 그녀의 오빠들은 현실을 외면했다. 저자는 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낙태 시술이라는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다.

 

“엄마한테는 너 심장이 약해서 병원에 검사 다녀온다고 했으니까 허튼소리 하지 마. 그런데 나는 속으로 너무 걱정했다. 네가 아이 안 지우고 낳는다고 할까 봐. 고마워. 지금은 지운다고 해줘서. 나중에 어른 되면 그때 내 아이 가지면 되지. 외국에 나가서 내 아이 낳아서 살고 있으면 되지. 내가 한국에서 왔다 갔다 할게.”
너무 소름이 끼쳐서 지워지지 않는 대목이다. 낙태 수술을 받은 후 친부가 저자에게 한 말이다. 어떻게 친부가 딸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수차례의 탈출 시도 끝에 그녀는 드디어 대학교 1학년 지옥보다 더한 곳에서 탈출 한다. 그리고 사회에 들어오지만,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은 그녀를 쉽게 놔 주지 못한다.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야 할 사람이 친부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기억들과 힘없이 당했다는 죄책감, 수치스러움이 그녀를 괴롭힌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끔찍한 그 사람을 화내고 미워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대신 그 에너지를 자신을 더 밝게 하는 데 쓰자고.

 

저자가 겪은 내용이 생생하게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과거 그 현장에 들어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힘들었고 눈물이 났다. 저자 은수연은 이제 사회에서 평범한 여성으로 회사도 다니고 사람들도 만나며 살아가고 있다. 성범죄, 특히 친족 성범죄 같은 경우는 그 범죄가 밖으로 드러나기 힘들고 법적 처벌로 이어지기도 힘들다. 저자는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어딘가에서 혼자 힘겹게 울고 있을 수많은 수연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어떠한 고통도 희망과 용기로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전해주기 위해 힘들게 펜을 들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들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불편했던 건 단순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현실에 대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읽는 동안 또 다른 수연을 알아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발생할까 봐, 발견하고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할까 봐 등이 이유로 양심이 무거웠기 때문에 더 불편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분명한 건 친족 성범죄를 비롯한 모든 성범죄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그들이 저자 은수연 씨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 그들의 눈물이 빛을 받아 반짝 일 수 있도록 말이다. 그 아픔을 모두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저자를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행복하게 지내라고 따스하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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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지옥이다

 

대학생 기자단 4기 정수연(totoker20@naver.com)    

 

‘집’하면 따뜻한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누군가에게 집은 살아있는 지옥이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렇다. 작가 은수연(가명)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서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당한 9년간의 성폭력과 생존 수기를 풀어놓는다.

 

은수연의 친아버지는 그녀를 9년 동안 성폭행했다. “외국에 나가서 내 아이 낳아서 살면 되지”라고 말하며 수능 전 날 딸을 호텔에서 구타하는 아버지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으로부터 극심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딸의 고통을 모른척했다. 그녀의 오빠와 동생들은 아버지의 폭력이 두려워 그녀를 외면했다. 온갖 산전수전 끝에 한국성폭력상담소 쉼터에 입소한 그녀는 살아남았고, 가해자는 징역 7년을 살았다.

 

피해자답지 않은 피해자의 일기

사람들이 그리는 성폭력 피해자의 모습은 ‘강간당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정신질환을 앓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그런 나약한 모습이다. 그러나 은수연은 수많은 밤을 고통 속에 보내면서도 살아남았고, 자신의 친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으며 자신의 경험을 당당하게 말한다. 물론 그 과정 역시 생존의 기록이었다. 그녀가 친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할 때, 가족들이 먹고 살아야 하니 아버지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도 말했다. 많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것을 ‘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자신의 죄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수 있게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기

우리는 교통사고 피해자를 탓하지 않는다.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는 다르다. ‘네가 치마를 짧게 입어서 그렇지’ ‘왜 저항하지 않았니?’ 가해자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마치 성폭행을 유도했다는 식의 말을 한다. 그러나 은수연의 경험은 도통 그녀를 탓하기 어렵게끔 한다. 친아버지로부터 9년간의 성폭행과 폭행을 당했고 낙태까지 한다.
그녀의 경험은 참으로 완전무결해 그녀를 비난할 여지조차 남겨놓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친구, 남편에 의해 가해진 폭력과 성폭력은 비난의 시선이 가해자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가정폭력도 마찬가지다. ‘네가 (가해자의) 그런 행동을 유도했겠지’라며 어떻게든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았는지 꼬집는다.
은수연의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성폭력피해생존자의 시선으로 성폭력을 바라볼 수 있게 한 책이다. 앞으로 성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더 넓고 크게 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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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등불을 스스로 켜고 그 시간을 걸어 나왔을 때

대학생 기자단 4기 홍지수(rabbit_ate_c@naver.com)

 

책을 읽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2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몇 개의 글자들로 바뀌어 그 자리에 박힌 듯이 있었다. 이 짧은 책을 채우기 위해 모든 기억을 되짚고 다듬어 글자로 옮기는 데 필요했을 모든 시간에 경의를 표한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것을 보고 생각하고 깨닫는다. 같은 것을 보고도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모두가 다른 삶을 산다. 그래서 수연씨의 경험이 내게 어떠했다고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수연씨의 일 중 어떤 것들은 나에게도 있었을 생각이고, 어떤 것은 내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그리고 그녀의 시간들이 내가 모두 알고 이해하기에 벅찬 시간들이라서. 


희망 없이 잿더미처럼 사그라져 가는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깝고, 그들이 처한 혹독한 현실에 암담하지만 감동이나 격정이 치받아 오지는 않는다. 내가 끝없어 보이는 시간들에 한숨을 쉬고 있거나 견디고 있는 시간이 힘들다고 생각할 때 그 시간에 불을 켜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등불을 스스로 켜고 그 시간을 걸어 나왔을 때, 모든 희망이 살아나고 내 옆에 누군가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을 수 있었던 그녀의 강인한 힘과,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로서 살아가기로 한 결정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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