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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여성주의스터디모임 후기]적확한 언어로 내면을 풀어낸다면 나는 더 괜찮아질 수 있을까?

by kwhotline 2022. 5. 26.

매달 저녁 7시 30분에 책 읽는 페미니스트들이 모이는 여성주의 스터디 모임.

 

4월 <명랑한 은둔자>를 함께 읽었습니다.

모임에서는 코로나 시대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회원님의 후기를 통해 함께 살펴보아요.

 

 

적확한 언어로 내면을 풀어낸다면 나는 더 괜찮아질 수 있을까?

-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쓰는 독서 모임 후기

 

회원 우미소

 

가까운 지인 중에 짜증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는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짜증난다고 하고, 남편이 자신을 무시해도 짜증난다고 했다. 누군가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되물었을 때 그는 휙 돌아보며 짜증나니까 그만 물어보라고 했다. 하도 그 말을 자주 들어서 생각해 보았는데, ‘짜증난다.’라는 함축어는 그저 감정적 회피의 비명일 뿐, 그의 감정을 제대로 설명해 주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자신의 감정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가장 속이 병든 사람이다. 짜증난다는 그의 말 뒤에 사실은 어떤 마음이 있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지금 어떤 기분입니까?” 라는 문항에 가끔 당황할 때가 있다. 나는 그저 스스로 평소에 편안하다고 생각할 뿐, 내 감정에 더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때가 많은데, 많은 사람들도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을 의외로 어려워하고, 전문가들은 이것이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찾아낸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내뱉을 때 우리는 해소를 경험하게 된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는 그의 세심하고 날카로운 통찰로 고백한 해소의 작업물이다. 어쩌면 스스로를 위한 작업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의 바로 다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선물과 같은 통찰이다.

 

작가의 훌륭한 통찰 과정을 하나 소개하자면, <모녀의 관계가 주는 가르침>에서 그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기억해 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끔 당신이 어머니와 통화할 때 어머니가 했던 말을 또 하거나, 잔소리하거나, 하나 마나 한 말을 하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때가 있지 않은가? ... 나는 그런 일들이 그립다.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알 년 반이 좀 넘었다. 그런데 내가 놀라는 점은, 애도하는 과정에 자꾸 떠오르는 일들이 좋았던 일들이라기보다는 다소 부정적인 일들이라는 것이다.(p146).... 다른 여자들이 자기 어머니를 헐뜯는 걸 수시로 듣게 되는데-“, 내가 우리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그러면 나는 좀 울적해진다... 내가 어머니 때문에 미칠 뻔한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랬던 순간을 생각할 때 유난히 어머니가 그립다. 짐작하기로 나는 그 얽히고설킨 관계, 많은 모녀가 겪는 그 관계가 그리운 모양이다. (p147)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풀어 헤치고 낱낱이 짚어 보며 의문이 가는 지점에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어머니와의 경험을 소상히 기억하며 그 때의 감정도 기록한다. 그리고 놀라운 지점은 그 이후에 벌어진다.

 

...어머니가 외부적인 문제들로 투덜거렸던 것은 자신에게 더 깊은 불안을 안기는 문제들을-자신의 건강을, 변함없는 슬픔을, 두려움과 회환을-투덜거리기에는, 특히 딸에게 투덜거리기에는, 너무 내밀하고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서였음을 안다. 어느 정도는 나도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그 밑에 깔린 불안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 반응으로 불쑥 짜증과 죄책감을 느끼곤 했던 것은, 아마 어머니의 괴로움을 직면한 나 자신이 무능하고 혼란스럽게 여겨져서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불안에 괜히 내가 불편한 것,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고 느끼지만 방법을 모르는 데 대한 답답함, 어머니의 불안이 가라앉고 모든 것이 저절로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아마도 유아적인) 마음. (p148~149)

 

그 때의 강한 감정의 실마리를 아주 신중하게 따라간 작가는 상황을 약간 멀리서 바라보며 자신과 어머니의 감정반응들을 응시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강하게 그리워 한다.

 

...어머니의 두려움, 내 두려움, 상대의 두려움에 말없이 얽히고 설킨 방식으로 반응했던 우리 둘. 그리너 불과 5분의 통화에도 수 많은 감정들이 일어날 만했다. 그리고 내가 그리운 것은 아마도 그 것이다. 그 관계의 그 깊이, 그 관계가 끌어냈던 그 강한 감정들이다.(p149)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 말로 표현 못하던 그 묘한 죄책감, 엄마에 대한 답답함들의 이면에 담긴 모녀만의 특별한 작용과 반작용, 투사와 감정전이들을 짚어보는 단락들에서 감탄이 터졌다. 이렇게 예리한 통찰이라니, 아름답기까지 했다.

 

우리는 각자의 고통과 기쁨을 거쳐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겪고 있는 것을, 마음속에 담겨있는 것을 다 소화해 내서 삶의 기쁨을 얻기란 어렵다. 우리의 고통을 적확한 언어로 옮길 수만 있다면 그 고통은 희석될 수 있을까. 우리의 마음의 의문들을 더 파악한다면 조금은 더 여유를 얻을 수 있을까. 모르긴 하지만 그것을 직시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 상태를 회피하다가 덮어둔 감정이 한 번씩 괴물처럼 튀어나오는 건 더 곤란하고 아픈 일이다.

끔찍하고 수치스러워서 잊고 싶지만 다시 꺼내서 짚어야 잘 넘길 수 있는 일이 있다. (물론 황홀하고 아름다운 기억도 좋다.) 그 일에 어떤 언어를 붙이면 좋을지 끄적여보려고 한다. 혹시 아나, 우리의 기록이 또 다음 시대의 귀감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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