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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후기] 언니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언니가 죽었다> 5월 페미니스트 무비먼트

by kwhotline 2022. 5. 25.

어느새 봄과 초여름 사이를 오가고 있는 5월, 페미니즘 영화를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페미니스트 무비먼트가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20대 여성의 삶과 죽음을 다룬 영화 <언니가 죽었다>를 함께 보고 이야기했는데요, 영화의 장면들을 사회의 다양한 측면과 연결해보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회원님이 작성해주신 후기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볼까요?

 

※본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언니가 죽었다' 스틸컷 (출처: 퍼플레이)

박시현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영화를 보기 전, 사전 배경지식을 검색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니가 죽었다>는 제목을 접하고는 어떤 상징적인 내용일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진짜 죽은 거였었다.

 

언니가 인생의 롤모델이었던, 언니의 모든 것을 동경하고 따라(?)하고 싶어 했던 동생이 죽은 언니의 모습과 실제 생활을 따라가며 자신이 생각했던 언니와 실제 언니의 모습이 많이 달랐음을 깨닫고, 거기서 오는 방황과 삶의 고뇌를 이해하며 끝이 나는 서사였다.

 

언니는 동생에게 어려서부터 영웅이었고 그래서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싶었던 존재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골에서 상경해 비빌 곳 하나 없고, 아주 힘없고, 무기력하고, 사회에서 어떤 것도 될 수 없는 작은 존재일 뿐이었으며, 거기에서 오는 절망감 혹은 무기력증 등을 겪고 있는 가장 취약한 계층인 20대 여성의 삶을 보여 준다.

 

영화는 왜 언니가 약을 먹고 있었는지, 왜 죽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그저 동생의 시선으로 추측만 할 뿐. 그리고 동생의 시선을 통해 20대 젊은 여성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삶(역할)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그것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과 폭식증으로 나타나며 언니의 삶을 힘들게 한다. 또한, 언니가 아나운서 합격을 위해 다니던 학원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 속 대화체를 통해 성 산업이 돈이 필요한 여대생에게 파고들어 있음을,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되는지를 돌려서 말한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든 생각... 동생은 언니의 죽음에 슬프지 않아서 울지 않았던 걸까? 죽음을 인정할 수 없을 때 누군가는 울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꼭 울음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울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모두가 자살이라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가 된 이후에야 놓아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동생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언니의 삶을 이해하고 언니의 머리를 어루만져 줌으로써 언니를 비로소 보내는 의식을 완성한다.

 

영화를 보며 동생의 시선으로 언니의 일기를 읽고 언니가 만났던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식욕억제제와 신경안정제를 같이 복용했을 때 위험하다는 지식을 몰랐기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언니의 죽음은... 이 사회가 20대 젊은 여성에게 요구하는 삶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흔히들, 요즘 청년 세대는 상실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단군 이래 가장 많은 공부를 하고 있고, 열정 페이로 불리는 무임금 노동까지 하며 최고의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그래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막막하고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특히, 배경도 없고 부모 찬스도 쓸 수 없는 20대 젊은 여성은 그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삶의 압박이 더 집중되어 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에게 신경안정제는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안식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취약 계층들이,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게끔, 우리 사회는 촘촘한 안전장치를 만들어놨었는지, 만들 시도는 해봤는지 물어보고 싶다. 죽음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한 사람의 죽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하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적 시스템의 문제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선진국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선진국인지, 그 안의 구성원들은 갈수록 병들어 가는데 경제만 잘 굴러가면 문제가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언니의 죽음을 따라가며 개인을 통해 사회 문제를 들여다본 것처럼 우리는 이제 인식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한 사람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그리고 그 목숨은 개인의 목숨이 아니라 사회의 목숨이라는 인식. 자살률이 높아지면 사회의 수명 또한 줄어든다는 인식.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사회구조의 문제라는 인식. 이런 인식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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