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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 후기

by kwhotline 2022. 4. 19.

3년 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외쳤던 우리는 '낙태죄'가 폐지된 지 1년이 지난 2022410, 또다시 보신각에 모였습니다.

 

 

'낙태죄'가 비범죄화 상태가 된 만큼, 정부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할 수 있는 보건의료 체계와 정보 제공, 상담 체계를 구축하고, 유산유도제 승인, 건강보험 적용 등 관련 조치들을 마련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을 넘어 성· 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을 제정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정부, 보건복지부, 식약처, 국회 등 이 조치들을 책임지고 이행했어야 할 기관들은 손을 놓고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전히 임신중지는 병원 측이 부르는 비용대로 지불해야 하고 유산유도제는 비공식적인 유통 경로를 통해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유산유도제를 즉각 도입할 것,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것,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를 포괄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이 더 이상 없는 세상, 낙태죄 폐지 그 너머의 세상을 향하기 위한 발언이 이어졌는데요. 한국여성의전화 박예림 활동가는 가해자가 전혀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피임을 거부하고 원치 않는 임신이 되었을 때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는 피해자들의 현실을 알리며, 폭행·협박을 수반하는 강간에 의한 임신일 때에만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비 지원이 가능한 현재의 법과 제도의 모순을 짚었습니다. 여성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여성들이 임신을 중지하고자 선택할 때 안전하게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것을 요구하며, 사회구성원 모두가 아이를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모두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으로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을 외쳤습니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 낙태죄 폐지 그 너머의 세상을 향해 -

- 박예림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2016년 검은 시위 이후 6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다시 이곳, 보신각에 모였습니다. 2019년 4월 11일, 1953년 낙태죄가 형법상 제정된 지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는 여성의 몸을 도구로 삼는 국가의 폭력과 침묵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온 모든 여성,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그리고 1년, 대안 입법이 통과되지 않은 채 낙태죄는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낙태죄 폐지 이후, 우리는 모두가 안전하게 임신 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여성의 몸이 폭력과 차별을 겪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낙태죄’ 가 사라진 이후에도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침묵한 채 낙태죄가 폐지된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외면했을 뿐입니다. 실제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국회에 발의된 법안 대부분은 임신, 출산에 관한 사회 구조적 차별과 제약을 없애고 여성의 건강과 삶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임신 중지에 대한 법적 규제를 유지하고 완화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되었지만, 피해자들의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전혀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피임을 거부하고 원치 않는 임신이 되었을 때 그 책임을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모두 떠넘겨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여전히 어떻게 할지 몰라 상담을 요청하지만, 실질적으로 지원할 방법이 없는 현실입니다. 현재의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는 폭행·협박을 수반하는 ‘강간’에 의한 임신일 때에만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비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의료체계에서도 임신 중지에 대한 관점과 원칙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피해자들은 안전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남성 보호자(친부 등)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병원을 찾아 헤매거나, 상담실로 직접 전화해 편견 없이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을 개인적으로 문의하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몸은 통제의 대상이 아닌 여성 자신의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국가는 여성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여성들이 임신을 중지하고자 선택할 때 안전하게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에 따라 부르는 게 값인 수술비를 걱정하는 여성들이 없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임신중지 관련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의료진의 편견과 낙인 없이 임신중지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위해 혼자 고민하여 헤매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들으십시오. 눈을 제대로 뜨고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성평등의 관점에서 살피십시오. 이제라도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 권리 보장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과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낙태죄 폐지 이후 1년, 우리는 여성의 판단을 의심하고, 훼손하고, 판단하는 세상에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가 이루어지는 사회, 유산유도제 즉각 도입 등 임신 중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보장되는 사회, 다양한 임신과 출산의 경험이 존중될 수 있도록 성평등 교육체계를 갖춘 사회, 성평등추진체계 실현을 통해 여성을 향한 폭력과 차별에 즉각 대응하는 컨트롤 타워가 존재하는 사회.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 것입니다. 더는 성과 재생산권리 보장을 가로막는 폭력과 강압, 차별을 두고 보지 않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아이를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모두를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으로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발언이 끝난 후 다 함께 광화문 일대를 행진하며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는 선언문 낭독과 함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선언문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

 

지난해 2021년 1월, 낙태죄는 공식적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힘으로 일궈낸 낙태죄 폐지 1주년을 기념하고, 앞으로의 과제들로 나아가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 우리는 처벌받지 않을 당연한 권리에서 그치지 않고, 안전한 임신중지가 모두에게 문턱없이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요구하고 이뤄나갈 것이다. 우리의 구체적인 요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산유도제 즉각 도입하라!
유산유도제를 통한 임신중지는 특별한 부작용 우려 없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유산유도제는 해외에서는 1988년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70여개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3월 8일 새롭게 발표한 임신중지 가이드라인에서 각국이 완전한 비범죄화를 통해 모든 사람이 유산유도제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도록 해야함을 강조하는 한편, 12주 이내 임신중지의 경우에는 의사의 관리감독 없이 안전한 약물적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적극 권고하며 유산유도제의 안전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들은 아직 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유산유도제 신속승인을 약속했던 식약처는 아직도 허가를 미루고 있다. 때문에 지금도 온라인으로 구입한 성분미상의 의약품을 복용한 뒤 부작용을 겪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의료진 또한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요구한다. 유산유도제 도입을 더이상 미루지 말라. 식약처는 유산유도제를 즉각 허가하라.

둘째,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하라!
‘낙태죄’가 존속할 때까지 임신중지 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경우는 모자보건법상의 매우 제한적인 허용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 뿐이었고, 이는 전체 임신중지 중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형법 ‘낙태죄’의 법적 실효가 사라진만큼 이 조항과 연동되었던 모자보건법상 제한적 적용 조건도 바뀌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변화된 법적 조건에 맞추어 보장 체계를 마련하지 않아 아직까지 대부분의 경우 온전히 개인이 부담하고 있으며, 그 비용마저 의료기관별로 매우 상이하여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요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지 의료비 때문에 임신중지 자체는 물론 임신중지 전후의 생활에 곤란을 겪는다.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은 파트너나 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대출이나 현금서비스 등에 손을 뻗게 되면서 사회경제적 위험에 노출된다. 또 비용 마련에 소요된 시간 때문에 임신중지가 늦춰져 의학적 문제를 겪기도 한다. 비범죄화로는 충분하지 않다. 돈 때문에 임신중지 권리에 접근하지 못하는 여성이 없도록, 모든 임신중지 의료서비스는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를 포괄적으로 보장하라!
우리는 임신중지 혹은 출산에 수반되는 권리와 건강의 문제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요구한다. 일부 언론은 아직도 임신중지를 일부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의 결정인 것처럼 다루고 있지만, 현실에서 임신중지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고민해서 결정하는 인생의 경로이다. 임신중지란 한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고, 임신중지를 하거나 출산을 하고, 살아가면서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대다수의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재생산의 일대기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장애를 이유로 의료기관에서 차별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임신중지에 내가 아닌 타인의 동의를 요구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임신중지 후에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오랜기간 아프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임신했을 때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혀 제공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어려움들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님을 선언한다. 임신중지는 물론 재생산 권리 전체는 기본적 권리로 보호되어야 한다. 

최근 뉴질랜드, 콜롬비아, 칠레, 베넹,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구시대적인 임신중지 처벌법을 걷어내고 접근성을 확대해 나가려는 개혁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산부인과학회 또한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과 접근성 제한이 건강과 안전을 침해한다고 보고 각국에 임신중지의 전면 비범죄화를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임신중지를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우리가 한국에서 이뤄낸 성과 또한 마찬가지다. 임신중지로 처벌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위해 이어온 우리의 투쟁은 세계의 여성들과 함께한 투쟁이다.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우리는 비범죄화를 넘어 임신중지가 모두에게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제공될 때까지, 우리의 권리가 온전히 실현될 때까지 세계의 여성들과 함께 투쟁할 것이다.

 


 

유산유도제 즉각승인! 안전한 의료체계 보장하라!

인신중지 건강보험적용! 사회적 안전망 보장하라!

낙태죄 완전 비범죄화! 국회는 대안입법 마련하라!

 

성과 재생산권리 보장, 지금 당장!

우리는 낙태죄 폐지 이전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발언문 전문 보기] https://bit.ly/3DWce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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