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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2021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후기

by kwhotline 2021. 12. 20.

 

※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은 2021년 9월 1일 부터 11월 2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수료식은 온오프 병행으로 당일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여 수료식을 마무리하였습니다. 

 

2021 성폭력전문상담원과정 후기 1

 

2021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수료생 김승현

 

내가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사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들은 여름이 되면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외가에 갔다. 일손을 도와 밭일을 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니 밥은 할 줄 아나?”

아니요. 모르는데요.”

우리 엄마가 내 편을 거들며 엄마, 애가 나이도 어린데 무슨 벌써 밥을 해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밥도 할 줄 모르면 시집도 못 간다, 가기 전에 다 배우고 가야 한다고 얘기하셨고 당시 내 나이는 고작 14살이었다.

 

20살이 되었을 때는 대학에 들어갔고 남자친구도 생겼다. 나는 불편한 게 싫어서 대부분 티셔츠와 청바지만 입고 다녔다.

너는 왜 치마 안 입어?”

난 이게 편하고 좋은데 왜?”

넌 조금만 꾸며도 예쁘겠는데.”

 

속된 표현이지만 여성으로서 살면서 어이가 털린다.’라는 표현이 걸맞다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불편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지만 어떤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명확하게 끄집어내지 못했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들을 바로 잡고 이야기할 수 있게 용기를 준 교육이 이번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교육이 불가한 상황이라 ZOOM으로 70여명의 선생님들을 만났다. 강의 시간에는 종종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소회의실에서 서로의 관점과 배경들을 이야기하면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교육을 들으면서 아뿔사!’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굉장히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는 공부이고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앞으로도 공부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한 강사분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어려운 것은 쉽게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려운 것이면 어렵게 이해하셔도 돼요

이 말씀이 계속 공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이라 느낀다.

 

가을의 끝자락과 함께 교육도 끝났다. 마지막으로 수잔 발라동의 <푸른 방>이라는 그림을 함께 나누고 싶다. 해당 그림은 남성적 응시(male gaze)가 아닌 여성 화가로서 여성의 몸에 대한 솔직한 묘사가 돋보이는 자화상이다. 수잔 발라동은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자마 차림으로 담배를 입에 문 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준다.

수잔 발라동 <푸른 방>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우리의 동료들이 건방지고 되바라진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대단한 여성이라는 것을 느끼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2021 성폭력전문상담원과정 후기 2

 

2021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수료생 나혜정

 

마음은 산으로 들고 내달리는데 꾹 눌러 참고 벼르고 벼르던 한국여성의 전화에서 시행하는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접수 받는 날 아침!

열시부터 창이 열린다고 하였지만 혹여 못 받게 될까하여 9시부터 창을 열어놓고 기다렸는데 그거 아시려나요?

 

할 것 많은 세상에 더디 시작했으니 마음은 바쁘고 졸업 전 되도록이면 다 이수하려고 욕심을 내었고 무엇보다 학교 교수님께서 추천하셔서 믿고 받고 싶었던 터였기에 그 어떤 교육보다 열정이 많았었는데 제 눈빛 초롱초롱 했을까요?

 

학과 수업에 여성, 젠더, 사회라는 과목을 들었었지만 뭔지 2프로 목이 말랐었거든요.

더군다나 줌으로 들을 수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요?

여성의 전화는 1983년에 설립되었다니 그 역사를 모른 채 여성으로 살아왔던 긴 여정이 참으로 부끄럽게도 여성주의에 눈을 참 늦게 떴지요. 사회적인 통념들을 저 또한 갖고 있었고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던 거지요. 알콩스런 선물까지 알차게 챙겨 보내신 꾸러미를 푸는 순간 역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구나 싶은 믿음이 두꺼운 책을 보니 강렬하게 생겼습니다.

 

첫 수업에 가졌던 OT는 너무 인상 깊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 원조라고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폭력이 없는 세상에서 모든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활동 그래 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치니 그 두꺼운 책을 공부하는 시간 내내 흥미롭고 또, 가슴 벅참과 동시에 얼마나 먹먹했었던지 아실까요?

 

그래요!

전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그저 불평등하다고 느꼈지만 한 번도 목소리 높여 나의 인권을 찾고자 노력하지 못하고 참 바보처럼 살아왔지요

나 하나 참으면 되지?

모두가 그리 살지 않는가?

사소한 것에 혈압 오를 필요 뭐있어?

나 하나 큰소리 내봤자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을 텐데 했던 걸 깊이 후회 합니다.

 

그리하여선 절대 안 되기에 난, 사회적인 통념에 사로잡힌 나를 버리고 온전한 나로 서보기로 합니다. 100시간의 교육을 받는 동안 그 얼마나 분통터진 일이 많았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

전 늘 화장대 앞에 성폭력전문상담원 책을 두고 펼쳐 봅니다.

 

일과 사랑도 균형이 맞아야 그 가치가 상승하듯이 이상적 자아를 찾고, 또 그리해야 나 자신의 가치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여성들의 가치가 마땅한 대우를 받는다는 걸 알기에 이제는 주변의 여성들도 남이 아닌 동지로 느껴집니다.

너무 많은 내용에서 닫혀있던 해마가 들썩였지만 그 무엇보다 상담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잊히지 않는 문구가 있습니다.

 

"사례가 아닌 ,사람으로 이해해야 한다." 입니다.

 

사회의 통념상 남성에 비해 여성을 종속적 지위에 앉혀두고 자행되기도 하고 또는 묵인 되는 사회에서 이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고…….

 

아래 시는 사회의 통념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소신있게 자신을 알리는 생존자분들을 생각하며 써봤습니다. 모두를 응원합니다

 

겨울에도 아픈 봄 / 나혜정

 

 

한 해의 가시가 드러난

바람 시린 겨울

 

늙은 어미의 젖가슴을 비집고

영산홍 꽃대가 쑥 올라온다

 

이 혹한에

저 여린 꽃이라니

세상을 일깨우려 발돋움 하기엔

아직은 너무 약한

 

차마, 피우지 못한 철없는 꿈이

온몸을 움츠리고

시퍼렇게 떨고 있다

 

발칙한 도발에

찬 서리가 눈꼬리를 치켜뜨고

삿대질하고

 

자연의 이치는 언제나 정답을 요구한다

 

작은 힘으로

세상의 오답은 바뀔 수 있을까

 

팻말을 든 여자가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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