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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후기] 연애/데이트, 나의 속도가 제일 중요해

by kwhotline 2019. 12. 12.

연애/데이트, 나의 속도가 제일 중요해

-10대 데이트폭력 토크쇼 <노답 연애, 이제 그만!> 후기-


  지난 5일 오후 4, 망원동의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10대 데이트폭력 토크쇼 <노답 연애, 이제 그만!>이 열렸습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날씨를 뚫고 토크쇼가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참여자들이 교육장에 들어섰습니다. 열기와 기대로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토크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이아리 데이트폭력 경험담 <다 이아리> 작가와 닷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활동가가 함께했습니다.


  




매일, 매순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데이트폭력을 당하고 있는 건가? 라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데이트폭력을 어떻게 판단하고 알 수 있을까요?”

 


  처음 토크쇼 참가 신청을 받았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이런 것도 데이트폭력인가요?”였습니다. 이아리 작가님은 본인의 피해 경험과 피해 당시 데이트폭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잘 해주다가 점점 폭력적으로 행동했다, 주변 사람들과 연락하지 못하도록 해서 나를 외딴 섬으로 만들었다, “연인 관계에서 당연한 거다라는 말로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제로 시도했다는 아리님의 이야기는 복합적, 통합적으로 나타나는 데이트폭력의 특성과 행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해자의 통제에 대해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닷님은 상담 과정에서 내담자들이 성적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연인, 부부 관계이면 당연히 스킨십을 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인해 성적 폭력을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점을 짚어주었습니다. 또한, 데이트폭력과 같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매일, 매 순간 발생하는 게 아니라 폭력이 있었다가도 다시 화해하고, 또 다시 폭력이 발생하는 주기가 반복되어 더욱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데이트폭력의 특성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리님은 네 탓이다”, “널 사랑해서 하는 거다라는 가해자의 말이나, 폭력적인 모습을 로맨틱하게 미화하는 미디어도 데이트폭력을 심각한 폭력으로 인지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 연인 간의 사랑싸움?”

 

  토크쇼에서는 데이트폭력을 둘러싼 편견과 통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 내가 알고 있던 데이트폭력에 대해 OX 퀴즈를 통해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랑싸움이니 둘이 잘 해결해야 한다?”, “헤어지지 못하는 피해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피해자가 반응을 달리하면 상대도 변할 것이다?”, “폭력이 조금 있더라도 연애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질문에 참여자들은 모두 X를 정답으로 들었습니다.



  아리님은 나를 어떻게 볼까 무서워서”, “말하면 내 탓을 할까봐”, “바보 같이 왜 참아라고 할까봐주변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웠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닷님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사소하게 생각하거나, 피해자는 의기소침해 있어야 한다든가, 가해자를 계속 만나는 피해자도 문제라는 고정관념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가해자가 정신이상, 사이코패스,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 알콜 등 때문에 폭력을 행사한다는 고정관념 역시 데이트폭력이 성별권력구조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가리고 폭력을 심화시킨다고 아리님과 닷님이 덧붙여주었습니다.

 

  “웹툰 <다 이아리>를 그리면서 주변 사람들과 독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데이트폭력 피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페미니즘 이슈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런 분위기라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는 아리님의 말은, 데이트폭력 해결을 위해 그에 대한 고정관념이 변화되어야 함을 시사했습니다. 아리님은 피해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 가장 필요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닷님은 이에 공감하며,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가해자의 말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계적인 중립은 폭력에 대한 고정관념, 가해자의 언어를 방치하는 것과도 같고, 피해자가 위축되지 않고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공감과 지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노답 연애, 이제 그만!”

 

  이어서 노답연애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과 대응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 이아리>에서도 아리님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겪었던 문제들이 잘 드러났었는데요, 아리님은 신고하기까지도 이 정도로 신고해도 되는 걸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고, 신고한 후에도 경찰로부터 인생에 빨간줄 쳐지는 건데 가해자가 (소리지르며 화내는 건) 당연한 거다라는 말을 듣는 등 힘든 상황이 많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가해자가 집에 찾아와 위협해서 경찰에 신고해도 직접적으로 때린 게 아니어서그냥 돌려보내는 상황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닷님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경찰들의 인식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이 발생한다고 덧붙여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에 신고를 하면 기록이 남고, 신고 기록이 누적되는 것도 향후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문제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함께 대응 방법을 고민하고 공유하며 바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닷님은 강조했습니다.


  주변인들의 피해를 알게 됐을 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도 나누었습니다. 참가자들은 피해를 입었을 때 내 의지대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게 좋았다”, “무조건적으로 피해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보다는,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다라는 의견을 말해주었습니다. 아리님은 그냥 생각나서 연락했다며 나를 찾아주는 친구들,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지지해주는 게 좋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닷님도 이에 공감하며 폭력 피해 이후 삶의 방향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정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존중이란?”

 

  마지막으로 참가자들과 데이트폭력과 서로 존중하는 관계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나누어보았습니다. “서로 존중하는 느낌을 주고 받으며 만나는 방법”, “나를 사랑하며 연애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습니다. 닷님은 명료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존중이란 무엇인지, 나에게 관계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를 돌보고 다른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경험을 오롯이 나의 것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닷님은 덧붙였습니다. 아리님은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내 의견을 잘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나를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과 내가 겪은 피해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경험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러한 고민들을 마음 속에 품고, 존중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도록 <권리장전>을 읽으며 토크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모든 고민과 경험을 나누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애/데이트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여성의전화가 이어가는 데이트폭력 운동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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