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기획 기사]
가정폭력: 왜 피해자는 항상 의심받는가
채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어버이날, 어린이날 등 5월엔 가족의 화목을 기원하는 가정의 달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낸 ‘2018년 가정폭력행위자 상담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가해자의 대부분은 남성이었지만 여성 가해자도 늘어나고 있는 양상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수적증가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과거 폭력의 피해자였던 여성이 남성의 폭력을 참거나 묵인하는 등 더 이상 소극적인 대처를 하기 보다는 같이 맞대응을 하거나 반격을 하는 과정에서 공격적인 폭력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가정폭력행위자가 324명 중 ‘남편에 의한 아내폭력(193명)’ 59.6%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는 시선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TED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 왜 가정폭력 피해자는 떠나지 않았을까]에서 레슬리는 자신의 남성 동반자로부터 겪은 가정폭력 경험을 말하면서 가정폭력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한다. 첫 번째: 가해자는 피해자가 그 관계에서의 주도권을 갖는 것처럼 환상을 만들면서 신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매우 높은 호감과 신뢰감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 피해자의 모든 사회적 관계로부터 격리시킨다는 것이다. 이때 가해자는 피해자로 하여금 본인와의 관계에 대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 번째: 폭력을 이용해 협박하며 피해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들이 피해자 스스로 가해자의 육체적·정신적·경제적 덫에 스스로 들어가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피해 경험의 맥락을 모두 무시한 채 ‘그녀는 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까’라고 물어보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자신이 겪은 것들이 ‘폭력’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학대받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을 매우 강인한 여성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문제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 뿐이며, 오직 자신만이 이 남성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전했다. 결론적으로 가정폭력피해자들 대다수는 가해자들의 교묘한 심리기법으로 자신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영상에서 레슬리는 자신이 이 비정상적인 사랑이야기를 끝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침묵을 깼기’때문이라고 말한다. 비로소 자신의 경험을 친구들이나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이 문제를 끝낼 수 있었다고 말하며, 청중들에게 자신이 지금도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침묵을 깨고 있는 것처럼 폭력의 초기 지점을 인식하고 양심적으로 개입하고 목소리내어 피해자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며 당부한다.
우리는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중 가장 흔하고도 가장 위험한 발언은 바로 “왜 그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다. 이 말을 하는 순간 대중들은 엄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폭력 사건에서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사건을 피하지 못했던 피해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피해자에 대한 자격까지 운운하며 의심하기까지 도달하는 2차 가해가 발생된다.
책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에서 저자 정희진은 가정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왜곡되 의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남성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자기 경험을 바로 볼 수 있는 렌즈가 주어지지 않는다. 남성의 언어가 여성의 삶을 장악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기 경험을 믿지 못한다. …(중략)… 경험, 몸, 인식의 분리 속에서 우리는 생각할 능력을 상실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피해자가 왜 이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피해자의 행실에 집중하기보다는 가해자의 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권력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고발 목소리로 이어졌던 미투운동을 시작으로 ‘교회 목사가 여성 교도들을 성폭행한 사건’,‘데이트 중 남성파트너가 여성파트너를 성폭행했던 사건’ 등등 ‘성폭력’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그 중에서 공통적으로 동시에 알려졌던 키워드는 바로 ‘가스라이팅(gas lighting)’이다.
가스라이팅은 1983년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비롯되었다. 이 연극에서 남편은 자신의 부인을 미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가스로 켜지는 집 안의 등을 일부러 어둡게 한 후, 부인의 등이 어두워진 것 같다고 하면 “그렇지 않다, 네가 잘못 본거다”고 부인하는 식으로, 부인의 현실인지능력을 계속해서 의심하며 결국 그녀가 자기 스스로의 판단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이처럼 가스라이팅은 피해자로 하여금 자기 본연의 감정, 본능, 온전한 사리분별능력 등을 의심하게 하는 극잔젇인 효력을 겆고 있는 감정적 학대로서, 학대가해자는 이를 통해 권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 이후로 피해자는 이러한 학대관계에서 떠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폭력의 근원은 소유와 통제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가정은 사회가 관여할 수 없는 개인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어왔다. 때문에, 사회나 공적인 영역에서 폐쇄적인 공간일 수밖에 없었던 가정은 ‘이해와 배려의 영역’, 혹은 ‘화목의 상징’으로만 포장하면서 그 안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폭력은 감춰지고 오랜 시간 여성의 문제로 치부되며 은폐되어왔다. 우리는 이제 피해자에게 그만 질문해야 할 때이다. 대신 사회와 가해자에게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말해야 한다. 피해자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의심하는 것이냐고. 국가는 왜 가정폭력을 가정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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