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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가족 내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기획 기사] 싸우는 역사가 담겨있는, 여성수첩

by kwhotline 2019. 7. 6.

[가족 내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기획 기사]


싸우는 역사가 담겨있는, 여성수첩


정재인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1985, 여성학 스터디 그룹이었던 젊은 여성모임에서 여성수첩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여성 이슈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전달함과 동시에 여성운동에서 기억할 만한 주요 기념일, 여성폭력과 관련한 필수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여성수첩은 이후로 계속 발간되었습니다. 2019년 여성수첩에는 2018 미투 운동의 뜨거운 역사를 담은 여러 일러스트가 담겼습니다.

 

여성수첩에 담겨있는 주요 기념일은 여성폭력에 저항하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일정을 표시하면서 문득 더 알고 싶어진 여성수첩 속 기념일 중 5월에는 가정폭력과 관련된 기념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5월은 가정폭력이 없는 평화의 달이어야 하지만, 가정폭력을 폭력이라 부르기 위해 여성들이 싸우던 날은 5월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승리한 해는 모두 다르지만, 날짜 순서대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2004820, 아내강제추행죄 인정 첫 판결

1970년 대법원은 부부사이에 발생한 강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34년이 지난 2004, 부부 사이에서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재판부에서는 부부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소된 피의자에 대해 징역 2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 보도된 기사를 보면, 1970년에 이미 대법원에서 부부 사이에 발생한 성폭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강제추행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당시 판결을 내린 형사합의 22부는 “1970년에 판결된 내용에 대해 30여년이 지난 만큼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판결로 인해 부부사이에 일어나는 강간 역시 죄로 인정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후 9년이 지난 2013516, 부부 사이의 강제적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200096, 여성노인의 인권과 재산권 문제를 던진 이oo 이혼소송 대법원 승소

1998911, 서울가정법원은 이oo씨가 남편을 상대로 낸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 이혼소송을 기각했습니다. 이때 당시 재판부는 해로하라라는 말을 했는데, ‘부부가 한평생 같이 살며 함께 늙다라는 뜻으로 이씨가 결혼생활 내내 겪던 가정폭력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가부장적인 남편이 결혼생활 내내 경제권을 박탈했고, 1997년에는 일방적으로 재산을 고려대에 기부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의 재산권과 더불어 부부의 재산이 부부공동의 소유라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한국여성의전화와 상담을 진행한 이oo씨는 19998월 고등법원에서 승소하고, 마침내 200096일 대법원에서 승소했습니다. 이 일은 여성노인의 인권문제와 재산권에 대해 논의가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황혼이혼이라는 단어가 사회에 처음 등장하여, 보다 많은 여성노인이 권리를 찾기 위해 이혼을 선택하는 등 황혼이혼이 이전보다 크게 늘어나게 된 발단이 되었습니다.

 

1983 105, 한국 최초의 아내구타 실태조사 발표

1983년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한국최초로 아내구타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습니다. 당시 서울지역에 거주하던 708명의 기혼 여성을 상대로 폭력을 경험한지 조사한 결과, 42.2퍼센트의 여성이 맞은 적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사실은 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왔고, 가정폭력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실태조사를 통해 아내구타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정폭력 중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아내구타라는 용어는, 신체적 공격 그 이상으로 다른 사람을 예속시키고, 지배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구타(battering)을 사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폭력이 신체적인 폭력 그 이상임을 사회에 환기시킬 수 있습니다.

 

1997 1213,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19971213,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1997년도에 제정된 법률을 위해 한국여성의전화와 많은 활동가들은 1994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4UN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를 맞아 한국여성의전화는 같은 해 56일부터 13일까지 가정폭력 추방주간으로 설정하였고, 가정폭력방지법추진 전국연대를 결성했습니다. 이후 1995년 관련 법안을 준비하고, 1125일부터 거리서명을 시작했습니다. 19964월 열린 총선을 맞아 당대표를 만나면서 가정폭력 관련 법안이 공약에 들어가도록 애썼으며 같은 해 8월에는 22개의 사회단체가 참여한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추진 범국민운동본부가 탄생했습니다. 85,505명의 서명을 받았음에도 무관심한 국회에 대해 많은 전문가와 운동가들은 제정 촉구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19971117일과 18일에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대한 법률이 통과되었고, 1213일 특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여성수첩에 표시된 기념일은 일년 중 단 하루에 불과하지만, 이 날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여성운동가들은 몇 년 동안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018년 한 해 뜨겁게 외치던 미투 운동도 몇 년 후의 여성수첩에 하루의 기념일로 기록되어, 여성인권을 위해 싸우는 역사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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