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이였으니 집행유예?]
지난해 8월, 새벽 길거리에서 데이트 관계의 여성을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최근 술을 이유로 감경을 배제하는 판례경향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가해자가 술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우발적 범행인 점과 범행 뒤 응급조치를 하는 등 피해회복에 노력한 점”을 들어 6년 형을 선고했다. 이어 항소심이 진행됐고, 대전고법 청주재판부 형사1부(김성수 부장판사)는 다른 증거나 쟁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보았을 때 진심으로 사랑한 사이였음을 알 수 있고, 지속적인 폭행이 아닌 우발적 사건이라 재범 위험성이 작아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피고인에게 사회로 돌아가 학업을 이어갈 기회를 주겠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끔찍한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참담한 인식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자메시지를 보고 “진심으로 사랑한 사이”였다고 확언하는가 하면, 그의 말마따나 “진심으로 사랑한” 여성을 길거리에서 구타해 사망케 한 것을 “술에 취해 저지를 수 있는 우발적인 범행”으로 판단했다. 관계를 고려했을 때 가중처벌해도 모자랄 판에 가해자의 학업중단에 대한 염려까지 하며 집행유예를 선고하다니, 도대체 제정신인가. 재판부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일반의 상식”에 근거해 판단한 “사랑”이라 함은 그러한 것인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재판부와 사랑을 이유로 폭력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데이트폭력 가해자와 무엇이 다른가? “사랑”이라는 감정과 “폭력”은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하고, 이를 연결시키는 것은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 최소 한 해 180명이 넘는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서 살해되거나 살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이 알려지고,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관련법 제정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폭력으로 점철된 관계를 “사랑하는 사이”로 낭만화하며 다른 범죄자와 달리 처벌을 면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금까지 데이트폭력에 대한 처벌은 법이 없어서 처벌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사법부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엄연히 폭력, 살인 등을 처벌하는 형법이 있고, 형법에는 죄목에 준하는 형량도 규정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에 대한 공감과 연민으로 가득 차 그들을 대변하는 판결을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본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검찰은 대법원 상고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돌이킬 수 없지만, 존엄한 생명과 인권을 앗아간 것에 대해 늦게나마 책임을 다하는 사법부가 되기를 바란다.
* 관련 기사 https://news.v.daum.net/v/20190704151524336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화요일 ‘화요논평’ 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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