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대법원에서 용화여고 스쿨미투 판결문이 나왔습니다. <여성의 전화>에서는 회원들과 대법원 선고를 지켜보고, 기자회견을 함께하는 연대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이후에는 <노원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의 전 집행위원장인 최경숙님과의 대담을 통해 지지와 응원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용화여고 스쿨미투 연대활동 후기>
2021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교육생 연빈
연대활동 신청서를 보내기 전, 짧은 망설임이 있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아침 내내 기절해있는 올빼미형 인간에게 집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대법원에 아침 일찍 도착하는 일은 역시 쉽게 느껴지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정말 가고 싶었다. 용화여고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용기와 연대의 힘으로 만들어낸 멋진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 안에서 전달받은 크고 단단한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다시 돌려주고 싶었다. 마침내 말할 수 있게 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여성들’에게 창문미투가 화답했듯 “with you” 라고 말하고 싶었다.
법원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법정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재판 방청 연대를 종종 다니지만, 대법원 판결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3년이라는 긴 싸움의 여정을 생각하면 이제 끝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었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긴장도 됐다. 초조한 마음은 대법원 앞에서 기다리는 다른 회원들을 만나자 조금 가라앉았다.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센지 새삼 느꼈다.
대법원에서는 “피고의 상고를 기각한다.”와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말을 오가며 판결을 진행했다. 자리에 앉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우리가 기다린 판결이 나왔다. “피고의 상고를 기각합니다.” 드디어 가해 교사의 유죄가 완전히 확정되었다. 안도감과 벅찬 감정이 잔뜩 밀려들었고, 문득 단정하고 간결한 판결문과 마음사이의 괴리를 느껴졌다. 법적 절차들과는 상관없이 피고의 잘못을 언급하고, 이 사건들을 오랫동안 방치한 사회의 문제적 태도를 짚어주는 판결문을 듣고 싶었다. 다행히 이 바람은 기자회견을 통해 채워졌다.
곧장 법정을 나와 기자회견장인 대법원 정문으로 향했다. 기자회견 장소에는 이미 취재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과보고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이 싸움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피해가 발생한지 10년, 싸움을 시작한지는 3년. 피고에게 잘못이 있으며,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듣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동안 온힘을 다해 증언하며, 잘못된 비방과 우려의 시선을 뚫고 살아 낸 분들의 하루하루는 내내 엄청난 싸움이었을 거다. 그 용기가 우리 사회를 성장시키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과 함께 더 긴밀하게 연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채감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 노원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한국여성의 전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단체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간의 지난한 싸움에 대한 소회와 스쿨미투 당사자들에 대한 지지와 응원의 마음들이 담겨있었다. 이어진 현장 발언에서는 함께 연대활동에 참여한 신민주 회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동료의 발언을 지켜보며 괜히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은 “스쿨 미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구호였다. 홀가분하게 박수를 치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너무 멀었다. 용화여고 스쿨미투는 미디어의 조명을 꾸준히 받아 상대적으로 잘 알려졌지만, 여전히 전국적으로 스쿨미투가 진행되고 있다. 그 중에는 주변의 관심과 지지가 적어 싸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도 많다고 했다. 어쩌면 스쿨 미투는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발언을 지켜보며 가만히 이 싸움에 꾸준히 결합해나가겠다고 다짐을 했다.
자리를 옮겨 진행된 <노원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의 전 집행위원장 최경숙님과의 대담에서는 그간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용화여고 스쿨미투의 진행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실제로 고발되지 않은 많은 사건들이 있다는 것을 들으며 가해자를 고발하고 증언하는 과정의 어려움 등을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스쿨미투가 있은 뒤, 지역사회에서 심각성을 인지하고 시민들이 싸움을 지원해나간 모습이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해왔다. 일상 속의 공동체들이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서로 주의 깊게 살피며 함께 돌보는 사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떻게 이런 움직임이 가능했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평소 세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꾸어가려고 노력하는 개인들, 그리고 그 개인들을 조직해낼 수 있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함께 분노와 지지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적었는데, 오랜만에 연대의 자리를 만나 충만한 하루였다. 서로의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는 사적인 이야기를 거쳐 정치적 메시지를 건져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과정이 자리에 있던 우리를 조금쯤 더 가까운 동료로 만들어주는 듯 했다. 최경숙 님께서는 운동의 과정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고민들을 나누어주시며, 회원들이 이어나갈 앞으로의 활동을 독려했다. 자리에 있는 우리들도 언젠가 각자의 현장을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니 설레고, 힘이 났다. 지지의 마음을 전하러 갔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운을 잔뜩 받아 돌아온 연대활동이었다. 다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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