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자 <한겨레>에 실린 한 칼럼에 사과문이 게재된 후 원문이 삭제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해당 칼럼에 실린 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대로 무지와 폭력이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마땅히 사과하고 삭제되었어야 할 일이지만 사실 애초에 세상에 나오지 않았어야 할 것이겠지요. 여전히 이런 글이 세상에 고개를 디밀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를 가중시킨 후 삭제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여성폭력 문제에 대해 우리는 그것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며, 이것이 가해자의 입으로 명명된 ‘여자가 고분고분하지 못해 일어난 일’, ‘아내를 마땅히 훈육하는 일’, ‘가장의 기분이 상하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여성폭력’, ‘인간이라면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될 일’,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기대어 일어난 일’이라 이름 붙여 왔습니다. 누군가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인 양, 오히려 피해자가 자초한 일인 양 사소하게 생각하는 기울어진 사회에 저항하여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우리가 함께 이 글에 분노했던 것은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세상의 게으름에 화가 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피해 여성에게는 “정서적 폭력”, ‘불편한 게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가해 남성에게는 “욕”, “손찌검”, ‘자신을 존중받지 못해 분노를 터뜨린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 기울어진 시선에 대하여, 사과문에까지 자신을 ‘철없는 아들’로 위치 지으며 남성의 무지에는 관대하고자 하는 게으름에 분노합니다. 더불어 오랜 시간 동안 가정폭력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한 당사자의 노력을 폄하하는 시선에 대하여, 우리는 분노합니다.
게으름과 무지를 세상에 뱉어놓을 수 있는 권력, 그럼에도 지면을 가질 수 있는 권력이 아직도 힘이 셉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정의 유지에 초점을 둔 가정폭력방지법이 20년이 넘도록 개정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원문이 삭제된 것처럼, 많은 분들이 그 칼럼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신 것처럼 우리는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그러한 권력들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이들이 세상에 고개를 디밀지 못하도록 함께 싸워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국 사회가 가정폭력에 져야 할 ‘진짜 책무’가 무엇인지, 올바른 좌표를 찾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20년 11월 11일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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